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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안경환 학장
서울대 법대 안경환 학장 ⓒ 김윤섭
안경환 학장이 아니었다면 목발까지 짚고 인터뷰를 하러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로 중무장한 나와 얘기를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의 첫 마디는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 계단이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겠군요.”

그렇지만 목발을 짚고 비장애인인 그의 걸음걸이를 따라잡기란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앞서가는 그가 내심 서운했는데 저 만치서 안 학장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대학을 ‘젊고 활기찬’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그곳의 주인공은 항상 건강하고 장애 없는 신체를 가진 학생들이다. 그러다 보니 소수자인 장애 학생들은 캠퍼스 안에서 완벽한 교육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학교측은 언제나 예산과 재정 형편을 들어 난색을 표시해 왔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서울대 법대가 시각장애인 신입생을 선발한 일은 가히 상큼하고 가슴 뿌듯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옳은 방향으로 가는 사회란 이런 게 아닌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안경환 교수, 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어느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는 딱 잘라서 말한다. 혹시라도 자신이 이 문제의 중심에 서서 그런 공치사를 받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는 모든 이의 합의로 이루어진 결정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그는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 법대에서나 학교의 각종 위원회, 학교 밖에서 그가 관계하는 여러 위원회, 예를 들어 인사위원회나 법무정책위원회 같이 자신이 ‘위원장’의 권한을 갖고 있는 자리 어디에서든 사안을 표결에 부치는 일이 없다. 토의의 과정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걸리는 만큼 그대로 간다.

“민주주의의 원칙인 표결이 담판승부는 될지언정 결국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거든요. 공동체의 삶에서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끝까지 토의를 해서 결론에 이르지요. 그 과정에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게 또한 민주주의 아닙니까. 표결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서울대 법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혁신적인 처방을 내놓고 있다’고 하는 데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대 법대 03학번인 만학도 손위용씨는 지체장애인이다.
서울대 법대 03학번인 만학도 손위용씨는 지체장애인이다. ⓒ 김윤섭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나 연민보다 장애인 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전체를 위해서 더 낫다는 것이지요. 공동체의 삶을 생각해 보세요.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실제로 보고 느끼는 것과 막연히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모르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장애를 가진 학우가 겪는 어려움을 실감할 때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될 때 전체를 위한 힘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동안 서울대 법대에서 내린 결정들은 줄곧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대 법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교수들이 강단에 서게 된 것이나 비법대 출신, 혹은 자연과학자가 법대 교수로 자리잡은 일이나 모두 ‘뜻밖의’ 일이었다. 분명 잠자는 이들의 의식을 ‘깨치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의식 변화를 주도하면서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는 데 머뭇거림이 없다. 한 예로 교육연구재단 설립을 들 수 있다. 그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 무엇보다 재정이 든든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난 10년간 서울대 법대에 기부한 이들은 모두 11명. 그는 지난해 한 해 동안 그 인원을 거의 10배로 늘렸다.

학장 임기는 2년. 그는 이제 한 학기를 남겨 놓고 있다. 그 많은 일들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벅찬 과제였을 듯한데 숨찬 표정도 아니다. 마치 시간표대로 진행해 나가고 있다는 듯 침착하다.

그는 법대 학장직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재수(?)를 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낙선하지 않으려고 표를 모으는 노력도 했다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세상에 대한 빗장을 풀기 위해서였지요. 우리 대학에서 풀면 많은 게 풀리겠다 싶어서, 그리고 학장이 되어야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서울대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굳건한 빗장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서울대 폐지론마저 나오는 현실에서 나름대로 내부의 고민을 담아 낸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생각해야 했다.

젊은 날의 그도 어떤 이들처럼 법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법의 길을 피해서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다. 봉제공장도 다녀 보고, 대기업의 전도유망한 ‘젊은 과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일했지요. 제가 회사 다닐 때 출장 간 나라가 아마 80개국은 넘을 겁니다. 국제선 비행기 탄 횟수가 1000번이 넘을 거예요.”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수업을 준비중인 안경환 학장.
수업을 준비중인 안경환 학장. ⓒ 김윤섭
그러던 어느 날, 나이 서른셋에 그는 다시 책보따리를 꾸려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즉, 자신의 ‘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법을 세상에 보여 주고 그것으로 할 일을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더불어 그는 이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질문을 던져 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요즘 이렇게 말한다.

“그가 늘 말했던 것이 드디어 구체화되고 있다.”

안 학장의 ‘법’은 다른 법과 좀 많이 다르다. 거대하지 않고 추상적이지 않다. 만져질 것처럼 아주 구체적이고 쉽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다.

“세상 전체 문제에 대해서, 같이 사는 지혜의 원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법학자들과 대중의 거리가 멀어요. 다른 나라에도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나라가 특히 심한 편입니다. 또 법률가를 지성인이라고 여기지도 않지요. 법률가 지성인이 많이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그가 처음으로 법대에 ‘법과 문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안 학장은 문학을 통해 법을 지식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하고, 영화를 통해 법을 대중 가까이 자리잡게 해 왔다.

이 분야에 관한 한 그의 실력은 문학평론가, 영화평론가라 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 모든 노력은 법과 대중의 소통이 절실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학장실 문을 항상 열어 두고 있는 것도 법을 권위나 힘, 닿을 수 없는 소원한 존재로 여기지 말아 달라는 의사 표시인 것이다.

안 학장은 서울 출생이긴 하지만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그의 집안은 교수나 선생 말고는 다르게 살아갈 방도가 없다고 믿는 선비 가문이다. 하지만 현대사의 질곡을 헤치고 나오느라 그의 청춘도 만만치 않은 고통을 겪었다. 공부보다는 근처 농잠 학교에나 다니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집안 어른의 호령 때문에 총명한 소년은 암울한 시기를 삭이면서 보내야만 했다.

이제 한 세대가 가버린 지난날의 가족사를 새삼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가 한때 법으로 무장한 사람이 되고 싶어했을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 그는 완전히 자유롭게 법을 안고 있다.

사람과 법이 서로 손잡게 하고 싶은 그는, 법의 정원에서 등을 굽히고 일하는 정원사다. 때로 키를 넘는 나뭇가지는 가지치기를 하고 꺼진 땅은 흙으로 돋워 올린다. 자갈을 골라내고 부드러운 잔디로 깐 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안 학장이 직접 쓴 조영래 변호사의 평전도 법률가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가 만들어 내는 길, 그 길로 사람들이 걸어갈 것이다. 목발을 짚고 가거나, 휠체어를 타고 가거나, 혹은 마음이 기울어진 사람도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법의 옆에 서 있으니 법이 한없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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