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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고개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당시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의 묘 앞에 누군가가 국화꽃을 바쳤다
미아리고개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당시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의 묘 앞에 누군가가 국화꽃을 바쳤다 ⓒ 석희열
44년 전 4월의 그날-한여름처럼 양광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광화문과 세종로 종로 일대를 노도와 같이 휩쓸던 젊은 함성들. "사악과 불의에 항거하여 압제의 사슬을 끊고 분노의 불길을 터뜨린" 민족사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민주의 횃불 4월혁명.

무심한 세월은 흘러 그날로부터 40여년이 지났건만 혁명의 상흔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때 치우지 못한 혁명의 찌꺼기들은 수십년 동안 그대로 쌓이고 쌓여 더욱 기승을 부리며 온갖 질병과 해악을 이 땅에 뿌리고 있다.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무능한 정치권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옥죄는 굴레로 작동하고 있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던 그날의 함성으로 우리는 단번에 절망의 질곡에서 희망의 기슭으로 올라섰지만 새벽을 틈타 한강을 건넌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장해제 당했다. 실패한 혁명이 다음에 결과할 반동의 역사를 한 치만 내다보았던들 4월혁명은 그때 그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을….

265명의 민주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 수유리 4·19 민주성역에는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참배객이 줄을 이었다
265명의 민주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 수유리 4·19 민주성역에는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참배객이 줄을 이었다 ⓒ 석희열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의 '진달래')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고 진달래 피는 그 언덕으로 4월영령들의 무덤 앞에 이날도 삼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등 시민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수유리 4·19 묘역에서는 19일 정오 전국민중연대 주최로 '4월혁명 44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정오 전국민중연대 주최로 4·19 묘역에서 열린 4·19혁명 44주년 기념식
이날 정오 전국민중연대 주최로 4·19 묘역에서 열린 4·19혁명 44주년 기념식 ⓒ 석희열
이 자리에서 나창순 범민련 의장은 "위대한 4·19혁명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정의와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임을 일깨워 주었다"고 4월영령들을 위로한 뒤 "4월혁명의 진정한 의미는 6·15공동선언을 실현하여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우리 민족끼리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추도사를 통해 "많은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민주영령들 앞에서 진보정당의 작은 승리를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면서 "4월혁명은 절대로 미완으로 끝나서는 안되며, 2012년 집권을 통해 반드시 미완성의 4월혁명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전국민중연대는 선언문을 통해 "친미수구세력들은 꺼져가는 잔명을 보존하기 위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왜군 장교로 5·16쿠데타를 일으켜 4·19를 압살한 독재자의 딸을 앞세워 정권을 찬탈하려 하고 있다"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수구세력들의 이같은 기도에 맞서 4월혁명 정신을 지켜내고 이 땅에 진보정치의 지평을 활짝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민주노동당은 4월영령들에게 4월총선 승리 보고대회를 가졌다
이날 오후 민주노동당은 4월영령들에게 4월총선 승리 보고대회를 가졌다 ⓒ 석희열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안개비에 자욱히 젖은 4·19 묘역에는 이날 참배객들의 발길이 하루종일 이어졌다. 1960년 4월 19일 신설동 네거리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의 총탄에 쓰러진 곽종한(19·당시 중앙대 휴학생)씨의 친형 곽종식(70)씨는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젊은 주검들이 아스팔트 위에 꽃잎처럼 나뒹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늘이 우는가. 265명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 수유리 4·19 묘역에는 먼저 가신 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듯 이날 아침부터 가랑 가랑비가 소리없이 내렸다. 시인 박목월은 언젠가 4월영령들을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추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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