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인도는 불타 석가모니와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크리슈나무르티로 채워져 있다. 이분들은 하나같이 내 자신의 인간 성장의 길에 적잖은 영향을 끼쳐준 스승들이다. 불타 석가모니는 지혜와 자비의 교훈을 통해 20대 중반에 내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게 한 어른이고, 마하트마 간디는 종교의 본질과 진리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주었으며, 소유의 관념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쳐준 영혼의 스승이다. 그리고 크리슈나무티는 현대의 우리들이 직면한 문제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삶의 지혜와 잔잔한 기쁨을 누리도록 이끌어준 고마운 스승이다"
<무소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자 법정 스님이 밝힌 것처럼 인도는 단순한 관광지 이외에 다른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인도에 대한 끊임없는 마음의 동경과 물질의 풍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을 진정으로 채우기 위해 법정 스님이 이 길을 떠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인 1991년에 출간된 <인도기행 : 삶과 죽음의 언저리>를 개정하여 올해 다시 펴낸 것이다. 1989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싯다르타의 행적을 좇아 인도의 4대 성지 룸비니와 부다가야, 녹야원, 쿠시나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인도 여행 기록을 적은 법정 스님의 유일무이한 기행 산문집이기도 하다.
긴급 구호 활동에 필요한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인의 삶에 도전한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버스로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며 여행한 한국인 최미애와 프랑스인 루이 부부의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등 이미 나와 있는 기행 서적에서 보여지는 단순한 여행 기록의 차원을 넘는다.
이 책에서 독자는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 느끼는 불교 정신과 종교의 본질 및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담긴 법정 스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사와 관련된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이 담긴 스님의 시선을 엿볼 수도 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처음은 인도 여행의 숙박이나 교통편을 이용하면서 느낀 감정을 충실히 표현하는 기행문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다가 중반부터는 인도의 4대 성지 등 불교 포교의 중심지였던 왕사성, 최초의 불교 사원 죽림정사, 인도 문화의 해외전파 본거지 날란다 대학 등을 다니며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에의 반성과 성찰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네팔의 카트만두와 안나푸르나의 설경을 소개한다.
마니카르니카 가트(화장터)에는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그칠 새가 없다. 엷은 천으로 둘둘 만 시신을 대나무로 사닥다리처럼 엮은 들것에 메고 와서 강물에 세 번 적신 다음 장작더미 위에 놓는다. 삭발하고 흰옷을 입은 상주가 불씨를 붙여 들고 몇 바퀴 시신을 돈 다음 불을 붙인다. 강변 곳곳에서 이런 화장이 행해지고 있다.
상주는 긴 장대를 가지고 시신이 고루 타도록 연방 뒤척인다. 전혀 표정이 없다. 곁에서 개가 어슬렁거리다가 타다 만 시신 토막을 물고 가도 상주는 못 본 체다. 화장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타고남은 나무토막이 있으면 재빠르게 주워간다.(본문 p218중 에서)
종교의 나라 인도를 여행하면서 법정 스님은 그들에게 있어 종교란 공기와도 같은 존재라 설명하며, 때문에 가난하지만 궁기를 풍기지 않고 낙천적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폭력을 싫어하는 온유한 성품도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우러난 자연스런 몸짓일 것이다.
인도사람들은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박시시'(보시)를 받고도 감사하는 예를 표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복을 짓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본문 p80중에서)
우리는 인도하면 흔히 가난한 나라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물질생활의 풍족과 모자람을 기준으로 인간 삶을 재려는 잘못 길들여진 사고 방식을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모두가 인도라는 나라가 지금은 물질적으로 비록 가난하게 살망정 그들이 지닌 정신 영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풍족하고 넉넉하다는 사실에 동감할 것이다.
갑자기 이 책을 권하기가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갑자기 짐을 싸서 인도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생길까 두려워서이다. 그것은 나만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