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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흐르고 백호가 말했습니다.
"할머니의 그 버드나무가지를 산오뚝이들이 가지고 갔나요?"
할머니가 몇 달 전 일어난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울에서 아기를 점지해주신 할머니는 서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조금 지켜보시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논두렁을 따라 날아가시는 듯 아니면 뛰어가시는 듯 바람처럼 가시는 모습은 날개옷을 입고 날고 있는 선녀 같습니다.
산 어귀에 이르니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한 명이 서있었습니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지던 길이라, 누가 서있는지 금방 알아낼 수가 없었지만, 저고리와 치마가 달빛에 어른거리는 게 할머니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그냥 길 잃은 사람은 아닐 것이고 누군가 하늘 나라에서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누구요? 나한테 왔오?"
그 할머니는 달빛에 얼굴을 내밀고 말했습니다.
"아이구, 할망구, 벌써 나를 잊었오? 내가 이승에 너무 오랜만에 나왔더니 할망구마저 나를 몰라보는 구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승에서 일찍 죽은 아이들의 영혼을 저승에서 관리해 주고 있는 저승할머니였습니다. 삼신할머니는 반가운 나머지 저승할머니에게 얼른 다가가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아이구, 세상에. 이게 얼마 만인가. 저승에서 대체 얼마 만에 이렇게 이승에 나오게 된 거야? 저승은 살기 좋아?"
"저승이 살기 좋아봐야 저승이지.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왜 이리 버르장머리가 없나. 저승에 와서도 온갖 말썽은 다 부리고 말이야. 그 애들 때문에 옥황상제 고민이 많아. 대체 자네가 이승에서 어떻게 하고 있기에, 아이들의 버르장머리가 그 모양인가?"
"말도 말게. 요즘 아이들이 옛날하고는 좀 다르거든. 요즘 세상에 맞추어 가면서 아이들을 점지해주려니 나도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네. 그런데 요즘엔 어떻게 아이들이 옥황상제 처소에 들어가나?”
”그거야 뭐 요즘 아이들이 옛날아이들보다 더 예뻐서 그런 것 아닌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렇게 말하는 저승할머니 말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말고 들어가세, 오랜만에 참 잘 왔네. 이야기나 좀 함세."
두 할머니는 삼신할머니의 초가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삼신할머니가 사는 초가집은 촛불은커녕 호롱불 하나 없었지만, 아주 환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지 방으로 올라가는 저승할머니의 치맛자락이 너풀거렸습니다. 삼신할머니가 물었습니다.
"자네 이렇게 나와있으면 저승의 아이들은 누가 지키고 있는가?"
"선녀들이 잠깐 봐주고 있긴 하지. 선녀들이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니까. 그래도 얼른 다시 들어가야 해. 내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급하게 왔네."
"어휴, 이승에 한 번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잘 아는데, 이렇게 빨리 가다니. 요즘에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구경도 못하고 말야. 서울에 나가보니 세상에 재미있는 게 정말 많더군. 그래, 부탁이라는 게 뭔가?"
"저승에 있던 아이 중에 하나를 다시 이승으로 데리고 와야하네."
그 말을 들은 삼신할머니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죽은 아이의 영혼이 저승으로 이승으로 나온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삼신할머니가 물었습니다.
"그래,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옥황상제의 귀여움을 받은 탓인가 봐.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영특한지 아이들이 옥황상제 궁전에 들어앉아 나오지를 않는데, 그 중의 한 명이 옥황상제 눈에 많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놈이 가지고 있는 재주가 특별해서, 이승에서 그 녀석이 꼭 필요하다고 그러시더군."
"허, 참. 저승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재능이 특별한 애가 어디 한 둘인가, 서천꽃밭에서 제대로 키운 꽃으로 내가 직접 점지한 녀석들은 전부 똑똑하고 예쁘다네.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지."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내 알 것 없고…. 그거야 옥황상제께서 알아서 할 일이니까. 그것 때문에 자네 버드나무 가지가 좀 필요하다네. 저승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살오름꽃이 있어도 사용을 할 수가 없거든."
삼신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저승에서 할머니의 버드나무가지를 필요로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승에서 직접 올라온 저승할머니의 말을 무조건 의심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삼신할머니는 말했습니다.
"글쎄, 한 번 생각해 보고, 내가 직접 옥황상제께 가지고 올라가겠네."
"생각해 보고 자시고 할게 없다네. 여기 이것 좀 보게."
저승할머니의 옆구리 춤에서 꺼낸 종이는, 분명 서천꽃밭을 관리하고 있는 장수도깨비의 글이었습니다.
"이것 좀 봐. 여기 장수도깨비가 직접 쓴 글일세. 직접 한 번 읽어봐."
편지에 써있는 것은 옥황상제의 명으로 저승에서 살오름꽃을 사용하기 위해 삼신할머니의 버드나무 가지가 필요하니, 저승할머니 편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수도깨비의 뿔로 만든 인장이 붉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승할머니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습니다.
"요즘에는 도깨비들도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이 늙은 것을 어디로 오라 가라 한다네. 이런 걸 받아오라고 시키기도 하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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