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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조종을 울리자

국가보안법은 반세기동안 한반도 남단을 옥죄어왔습니다. 그러나 헌법에도 명시된 사상의 자유를 자의적인 법의 잣대로 재단하는 '야만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더욱 높아진 국보법 폐지 여론에 귀기울이며, 특별기획으로 [야만의 시대, 조종(弔鐘)을 울리자]를 마련했습니다.

15회 안팎의 이번 기획을 통해 <오마이뉴스>는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그로인한 폐지 당위성을 집중 탐구할 예정입니다. 특히 이 기간동안 그간 국보법 폐지를 위해 노력해온 관련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전문가 릴레이 기고, 국보법 피해사례 발굴 등 다양한 형태의 관련기사를 내보낼 예정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여기도...지난 달 22일 룡천 폭파사고 소식이 전해진 이후 정부와 민간단체는 적극적인 대북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달 30일 오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룡천동포 희망주기 국민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기도... 북한 룡천역 폭파사고 이후 정부는 물론 정당과 시민단체도 이념과 사상을 뛰어 넘어 북한 동포 돕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달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당선자 연찬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당선자들이 '룡천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올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북한공산집단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조직된 반국가단체로서 대남적화통일을 기본목표로 설정하고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하여 미제국주의의 강점 하에 있는 식민지로서 모든 인민이 수탈당하고 있으므로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인민해방을 위하여는 소위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이론에 따라 미제국주의 침략자들과 파쇼정권을 타도하여야 한다고 선전·선동하고 있고,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위와 같은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또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하거나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하면 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 대북지원단체가 일반시민단체들과 함께 구성한 룡천동포돕기본부를 통해 지난 4일까지 5억5천여만원을 납부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활동에 동조하고…(하략)"


이는 물론 '가상 공소장'이다.

그러나 과거 공안검찰이 들이댔던 국가보안법 위반 잣대를 생각해보면 완전히 불가능한 상상만도 아니다. 즉 보기 나름으로 남한 국민 절반은 국보법 위반자인 '빨갱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 전국민적 차원에서 이념을 뛰어넘어 벌이고 있는 '룡천동포돕기운동'은 국보법 위반 '기소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97년과 98년에는 95년 '큰물 피해'(대홍수)로 경제난과 기근에 시달리는 북한을 돕기위한 운동에 나섰던 재야 사회단체 인사들이 국보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 당하기도 했다. 불과 6, 7년전의 일이다.

"북한 수해 돕기 모금운동 동참은 김정일 보위 투쟁" 검찰, 무더기 기소

▲ 지난 95년에도 북한이 큰 수해로 기근에 시달린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으나 당시 정부는 북한동포돕기에 나선 만간단체들과 달리 소극적 태도로 일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달 28일 낮 북한 평안북도 룡천에 보낼 대한 적십자사의 긴급 구호품을 실은 화물선이 인천항을 출항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998년 재야 사회단체를 들썩이게 했던 소위 '영남위원회' 사건. 대중의 뇌리에도 뚜렷이 각인돼있는 이 사건은 국민의 정부 들어 처음으로 불거진 공안사건으로, 박경순(46·당시 '늘푸른서점' 대표)씨를 비롯한 재야 노동·사회단체 관계자 15명이 반국가단체(검찰 주장 '영남위') 구성 등의 혐의로 무더기 구속됐다.

수사 초기부터 사건을 검찰이 조작했다는 주장과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 사건은 최종 판결에서 박경순씨 등 3명을 제외한 혐의자 12명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마무리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 검찰이 이들을 기소하면서 공소 사실인 이적 활동의 증거 중 하나로 97년 시민·사회단체 등이 앞장서서 진행한 '북한수재민('큰물피해') 돕기 모금운동' 동참을 들었다는 점이다. 박씨 등 당시 혐의자들은 각각 여성회나 민주주의민족통일 울산연합, 민주노총 등에 북한동포 돕기 성금을 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을 기소한 부산지검은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을 통해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사회주의 고립·말살책동을 파탄시키고 혁명의 기지이며 책원지인 북한체제를 수호하고 김일성, 김정일을 보위하는 투쟁의 일환으로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영남위원회' 조직차원에서 전개하기로 했다"며 이들의 모금활동을 '김정일 보위 투쟁'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97년에도 북한 수해성금 모금을 두고 '편의제공' 혐의

이에 앞서 1997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97년 6월 성금 1만5천달러(한화 약 1300만원)를 재일조선인총연합(재일총련)을 통해 북한에 보내려 한 혐의(국보법상 회합통신 등)로 민경우 사무처장, 이종린 의장 직무대행 등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범민련 남측본부) 간부 7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안기부는 민 사무처장 등이 석달 여에 걸쳐 일간지 광고 등을 통해 북한동포돕기 성금을 모금해 범민련 공동사무국을 통해 북측에 전달한 것을 두고 국보법 위반(9조 편의제공) 혐의를 씌웠다.

물론 두 사건에 대해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영남위 사건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이 낸 북한동포돕기 성금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 검찰의 주장처럼 '북한을 수호하고 김정일을 보위하기 위해 납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역시 97년 북한 동포돕기 모금을 벌인 범민련 남측본부 간부들에 대해서도 국보법상 편의제공을 했다는 기소 내용은 인정하지 않고 재판 과정에서 예비적 공소 사실로 추가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부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상의 적법한 승인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적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수행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는 있다 하더라도, 범민련 남측본부가 공동사무국을 통해 외화를 송금했다 하여 그 사실을 들어 북한이나 재일총련 또는 그 구성원의 활동을 돕기 위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의 활동을 '이적행위'로 보고 기소한 공안 검찰의 시각이다.

"과하게 얘기해서 공안검찰의 시각대로라면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는 문제다."

"과거의 시각대로라면 지금 전 국민이 나서고 있는 '룡천사고 돕기운동'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지 않겠나. 같은 북한 동포 돕기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내심과 사상을 추단해서 처벌하는 법이 국보법이다."


두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은 과거의 상황을 떠올리며 국보법이 안고 있는 시대적 모순을 이와 같이 일갈했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98년 영남위 사건의 변론을 맡았었던 정재성(법무법인 부산) 변호사는 "당시 피고인들이 벌였던 북한동포돕기 모금은 지금의 룡천돕기 운동처럼 수해로 기근에 시달리는 북한을 돕자는 취지의 활동이었다"며 "이를 '김정일 보위 투쟁'이라며 국보법 위반으로 본 것은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 변호사는 "지금 온 국민이 나서고 있는 룡천돕기운동은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며 "같은 취지의 운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뜻이 있는지 없는지를 재단하는 것이 국보법이다, 오죽하면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했겠느냐"고 비판했다.

97년 민경우씨 등 범민련 남측본부 간부 사건을 변론했던 김병주 변호사(법무법인 정민)도 마찬가지다. 특히 김 변호사는 당시 안기부가 범민련 남측본부 간부들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한 데에는 4년 전의 경직된 남북 관계가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만 해도 검찰의 공안적 시각이 지금에 비해 상당히 두터웠고 정부도 대북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경색된 분위기였다"며 "국보법은 시대 상황이나 사회 분위기, 주체에 따라서도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의 말대로 북한은 95년 홍수 이후 심각한 기근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97∼98년 민간단체들이 앞장서서 대북 지원활동을 벌였지만 당시 정부는 북한 돕기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이 정부의 창구단일화 조처 등 소극적 태도를 비판할 정도였다.

97년 4월 10일치 <한겨레 21>은 당시 정부의 태도에 대해 "남한 당국의 정치와 식량 연계 방침이 국제사회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면, 국내에서는 대북 창구단일화 방침이 북한원조에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사건을 지금의 룡천돕기운동에 연관지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분위기에서 룡천돕기운동을 두고 민경우씨 등 범민련 남측본부 간부들을 기소한 것처럼 국보법을 적용하겠다고 나설 리는 없지 않겠느냐"며 "시대 환경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게 국보법"이라고 지적했다.

영남위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지난 해 4월 정부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된 박경순씨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허탈해했다.

박씨는 "당시 관련자를 비롯해 민간단체들이 동포애적인 취지에서 벌인 동포돕기운동이나 지금 보수언론이나 보수단체 등도 나서서 하고 있는 룡천돕기운동이나 다른 점이 무엇이냐"며 "지금 생각해봐도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라고 소회했다.

"남과 북 교류 활발해질수록 국보법이 가진 모순 더 극명해진다"

영남위 사건이 불거진지 8년이 지났다. 그간 시대는 변화했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남과 북이 동반자적 관계임을 인정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고,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때는 북한 응원단이 잇따라 입국,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북측 선수단을 응원했다.

노동절인 지난 1일에는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평양에서 남북 공동행사를 치렀다. 또 룡천 참사 이후 남한정부와 민간단체의 잇단 지원에 대해 북측은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박봉주 내각총리를 통해 연이어 감사의 뜻을 표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보법은 단 한 줄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북한은 국보법상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조직된 반국가단체'일 뿐이다.

대표적인 국보법 폐지론자인 김승교 변호사는 국보법이 만들어내는 비정상적 시대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한다.

"남북관계의 교류협력과 인도주의적 지원이 확대되면 될수록 국보법의 모순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룡천돕기운동도 국보법의 모순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속히 정리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은 바로 국보법 폐지다."

북을 교류와 협력의 대상이자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모순적 상황이 지속되는 한 국보법은 남과 북의 화해를 저해하는 '사상잣대'가 될 뿐이라는 얘기다.

남북정상회담 축하 플래카드 내걸어도 국보법 위반?
검찰, 변화된 시대상황 무시한 채 '빨간 딱지' 남발

▲ 대구 하계U대회 당시인 지난 해 8월24일 오후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북한 대 프랑스 여자 축구 경기에서 '아리랑 응원단'이 제작한 대형 한반도기가 북측 응원단으로 전해져 남북공동응원을 펼치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남소연

"같은 행위를 해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내심을 추단해 처벌하는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진보적 법률인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검찰은 영남위원회 사건 등에서와 같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학생들에 대해서도 '빨간 딱지'를 붙이는 사상 검열을 해왔다.

현재 국가인권위의 의뢰로 국보법 적용 실태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2000년과 2001년 교내에 인공기를 게양한 혐의로 한총련 학생들을 구속하기도 했다.

민가협에 의하면 검찰은 학교 정문 옆에 6·15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는 의미의 플래카드 등을 내건 혐의로 홍익대 학생 이아무개씨를 지난 2002년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이씨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하기 위해 회담이 열리던 시각인 6월 13일 오후 홍익대 정문 옆에 '철책을 넘어 이념 사상을 넘어 민족대단결'이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태극기와 인공기, 한반도기를 그린 흰색 천을 홍익대 조국통일위원회 명의로 내건 것을 두고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며 이씨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런가하면 지난 2001년에는 경원대 부총학생회장이자 한총련 대의원이던 황아무개씨가 대동제 때 교내에 태극기와 한반도기, 인공기를 내걸어 국보법 위반(7조 찬양·동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민가협은 이들 사건에 대해 "검찰은 남북통일 축구대회, 북측 응원단의 남측 방문, 육로를 통한 이산가족 상봉 등 남과 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공안 논리에 따라 학생들의 행위를 문제 삼았다"며 "한쪽에서는 남과 북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다른 쪽에서는 북의 국기를 그려 게시한 혐의로 처벌이 되는 모순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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