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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 yes24
이 책을 서점에서 골랐을 때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말이 주는 서글픔 때문이었다. 책을 사던 날이 좀 그런저런 우울한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제목이 나를 끌어당긴 게다. 읽고 난 지금은 김훈의 그 짧고 깔끔한 문장이 꼬리를 길게 끄는 여운을 남긴다. 한 문장에 온갖 품사를 다 우겨 넣어야 글 썼다는 느낌이 나고, 할 말 못할 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나 같은 사람은 흉내낼 엄두도 내기 어렵다.

단문의 대가라면 조세희와 황석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단문 위주의 글인데도 김훈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조세희나 황석영의 글이 건조하고 바삭바삭한 비스킷 혹은 쿠키를 닮아 있다면 김훈의 단문은 페스츄리나 케잌 머핀마냥 촉촉함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마땅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의 글은 시를 그리워하는 산문같아 보인다. 김훈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다른 길이 보여도 발이 그쪽으로 가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259쪽)

경지에 다다른 도인 같으신 말씀이다. 하지만 허투루 흘려 버릴 수 없는 것이 그의 빡빡한 단문은 덩어리진 무엇인가를 분절음으로 토해내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산문이 시의 형태를 그리워한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할 터이다.

이 정사각형의 책은 30년 가까이 신문·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던 김훈이 틈틈이 쓴 짧은 글 50여개를 모은 것이다. 쉰다섯 살의 그가 어린 사람들과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며 느낀 것, 여전히 컴퓨터 대신 연필·지우개·원고지를 고집하는 이유, 월드컵 열기를 보면서 느낀 이런저런 감흥들이 기자의 눈이라기보다 시인의 눈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포항제철소의 용광로에서 쇳물이 끓여지는 광경, 경기도 서해안 염전의 소금 만드는 모습도 서정적인 명상록으로 새겨놓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의 화두는 '밥'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 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군중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 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 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 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219~220쪽)

그에게 있어 밥 먹고 사는 일은 우스운 동시에 엄숙하다. 그래서 밥벌이를 위해 거리로 나서야하는 모든 이들(김훈 자신을 포함한)에게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36~37쪽)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놈의 밥벌이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더러운 밥벌이 때문에 침묵해야 했을까. 나도 김훈의 문장을 따라 삶에 대해 비감해진다.

책을 사던 그 무렵이 그랬다. 오랜 동료들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고, 단위면적 당 아첨꾼들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었을 때다. 제기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 아마 그런 상념 때문에 이 책에 손이 갔을 것이다. 김훈은 내게 무슨 도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나는(그리고 우리는) 당분간, 아니면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의 충고를 접수해야 하리라. 이 땅을 살아갔던 우리 부모들과, 어쩔 수 있냐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 우리 친구들처럼 말이다.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생각의나무(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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