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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판매사의 악덕상술이 소비자들의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성남 분당구 수내동에 거주하는 배승미(가명, 20·여)씨는 얼마 전 억울한 일을 경험했다. 회사면접을 보러가던 중 피부 테스트를 받고 가라는 낯선 남자의 제안을 받은 뒤 별 의심 없이 봉고차로 따라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을 메이크업 전문가라고 소개한 후 피부 상담을 하기 시작했고, 이어 1시간가량 화장품 홍보를 쏟아냈다. 결국 배씨는 그 남자의 유혹에 못이겨 49만5천원 상당의 화장품을 12개월 할부로 구입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해지자 배씨는 문제의 화장품을 반품하기로 결정하고 즉시 화장품 회사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반품이 안 된다, 마음대로 하라"는 무책임한 말만 들어야 했다.

배씨와 비슷한 경로를 통해 문제의 화장품을 구입한 송현주(가명, 부천시 송내동·20·여)씨는 요즘 아예 학교수업도 빼 먹은 채 법적소송을 준비 중이다. 화장품 판매소에 계약해지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된 데다 하루에 몇 번씩 걸려오는 요금 납부 독촉 전화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송씨는 구입 당시 미성년자였고 또 계약시 부모 동의서를 첨부하지 않은 상태였다.

소비자단체에 피해사례 접수 늘어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이하 소시모) 성남지부 온라인 상담실에 지난 4월까지 접수된 길거리 화장품 구입 피해 사례는 100여 건에 달한다. 주로 피부에 문제가 생겼거나 환불을 거부당했거나 요금납부를 강요받은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다.

위 사례에서 문제가 된 제품은 I코리아 화장품과 F화장품이다. 이중 I코리아의 경우 프랑스 원료를 가공해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단순 화장품 제조회사로 프랑스와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I코리아 화장품 제조사 측은 "각 영업소에서 화장품을 납품하면 그 때부터는 영업소 소관이기 때문에 뭐라 답하기가 곤란하다”며 “영업소의 판매방식이 문제가 많아 현재는 화장품을 영업소에 납품하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판매하고 있다”고 모든 책임을 영업소에 돌렸다.

I코리아 측의 길거리 화장품 판매로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인터넷 카페(cafe.daum.net/ghkwkdvnavlgo)를 개설, 현재 8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한 상태다. 이밖에 길거리화장품 판매 피해자들이 만든 4개의 카페에 가입된 회원은 1100여 명에 이를 정도다.

미성년자 주 타깃으로 유혹

소시모에 접수된 피해사례에 따르면, 이들 화장품 회사들은 전국에 영업점을 개설, 구매 판단이 흐린 미성년자들을 주 타깃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짜 피부 테스트라며 일단 소비자를 유혹한 후 미리 준비된 봉고차 안으로 유인, 화장품 구매를 강요하는 수법이다. 영업점들은 특히 미성년자와 계약할 때 필수 절차인 부모 동의도 받지 않고 계약자에게 부모 도장을 몰래 찍어오라는 식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합리적인 구매판단을 흐리게 하는 밀폐된 차안에서 그것도 1시간 가까이 화장품 홍보를 듣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구매 계약을 하게 된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얼마 전 분당 서현동 로데오 거리에서 구매 유혹을 받았다는 회사원 박모(26·여)씨는 "제품 신뢰가 가지 않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차안에서 설명을 듣는데 다소 강압감을 느껴 차 밖으로 나오기가 상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계약 후 피부 부작용이 생기거나 계약해지를 원할 경우 이 요청을 수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피해자 송현주씨는 취재진과의 전화통화에서 "왜 환불과 반품이 안되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말만 늘어놓는다"며 "나중엔 싸가지가 없다, 돈이 없냐는 식으로 욕도 서슴지 않아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이에 대해 문제의 화장품을 판매한 I코리아의 한 영업점(경기 부천소재) 대리는 "소비자 규정에 따라 소비자가 원하면 환불과 계약해지를 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깊은 내막까지는 답하기 곤란하다"며 더 이상의 답변을 회피했다.

이와 관련 소시모 성남지부 관계자는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 물품을 구입했을 경우(길거리, 방문판매 등) 계약일로부터 10년, 성인이 된 시점부터 3년까지는 언제든지 계약해지를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물품 구입 후 14일 안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소시모 정경우 상담실장은 "길거리 판매자와 계약할 때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지 말고 먼저 물품에 대한 사전정보를 입수한 후 나중에 계약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피하지 말고 즉각 소비자 관련 단체에 조언을 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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