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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자 선생님
박상자 선생님 ⓒ 오마이뉴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대구시교육청으로 날아든 한 통의 편지가 세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지난 4월말 대구시교육청 신상철 교육감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편지를 보낸 이는 8년 전 고향인 대구를 등지고 서울로 상경한 류태선(54)씨. 류씨는 이 편지에서 10여년 전 자신과 자식들이 어려운 고초를 겪고 있을 당시 도움을 준 한 초등학교 교사와의 사연을 소개했다.

류씨가 소개한 이는 류씨의 딸(김지운·26)과 아들(김찬우·23)의 초등학교 담임이었던 박상자(60) 교사. 류씨는 이 편지에서 "지금까지 잘 버티어온 데는 대구에서 내 몸처럼, 내 일처럼 도와주신 (박상자)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면서 "매년 스승의날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 한 쪽 찡함이 저려온다"고 말문을 열었다.

십여년 전 사연 싣고 교육청으로 날아든 편지

류씨의 가족과 박 교사와의 인연은 딸 지운씨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씨는 남편과 이별하고 딸 지운씨와 아들 찬우씨를 데리고 홀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류씨는 남의 돈을 빌려 사업을 해보려고 했지만 사기를 당해 빚에 쪼들렸다.

빚독촉은 딸과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까지 몰려간 빚쟁이들은 '돈을 대신 갚으라'며 괴롭혔다고 한다.

당시 박 교사는 아이들이 다니던 대구 동도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류씨와 같은 성당을 다니고 있던 박 교사는 우연히 류씨와 아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박 교사는 이후 동도초등학교에서 인근의 동일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됐다. 하지만 박 교사는 빚쟁이의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아이들을 차마 저버릴 수 없었다. 결국 박 교사는 아이들을 자신의 새 근무지로 전학하게 했다고 한다. 또 어머니 류씨가 아이들의 곁을 떠나 있어야 했던 1년여 동안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기에 이른다.

류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마음을 다쳐서는 안된다면서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박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건네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매일 아침 다섯 개의 도시락을 싸던 박 교사

당시 박 교사 역시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박 교사도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빚에 쪼들리긴 마찬가지였다. 게기다 삼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일찍 다섯 개의 점심 도시락을 싸면서 박 교사는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을 불평없이 도맡았다. 게다가 류씨에게 선뜻 신용카드를 맡기고 "힘들 때 사용하라"며 용기를 주기도 했다.

류씨는 "당시 신용카드를 통해 사용한 돈도 결국은 선생님의 빚으로 고스란히 남겨졌다"면서 "하지만 박 선생님은 말 없이 되레 저를 위로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런 생활이 1년여 정도. 딸 지운씨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류씨 가족은 박 교사의 곁을 떠나고 자립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박 교사와 류씨 가족은 인연은 그 후로도 딸 지운씨를 통해 이어져왔다.

박 교사의 류씨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박 교사를 '작은 엄마'로 부르는 지운씨에게 큰 가르침을 남겼다. 단순한 학문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참된 인생을 가르친 '스승'으로 남은 것. 지운씨는 "선생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항상 희망을 가지자며 용기를 주셨다"면서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밝은 웃음을 보여주셨고 그것이 결국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지운씨는 이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사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운씨는 버려진 아이들을 돕는 등 각종 봉사활동을 하면서 박 교사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지운씨는 "박 선생님이 우리 가족에 베풀어준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많이 가져 베풀기보다는 조그만한 힘이라도 남을 위해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몸소 보여준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못해"

"박 선생님은 우리 가족에겐 천사 같은 분"이라는 어머니 류씨는 "박 선생님을 생각하면 진정한 스승의 상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한다"며 "많은 세월이 지난 이야기지만 박 선생님 같은 분은 꼭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것 같아 편지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박 교사는 지난 68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31년5개월 동안 교직에 머물다 지난 2000년 2월 명예퇴직했다. 그러나 박 교사는 퇴직 후에도 다시 기간제 교사로 교편을 잡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류씨의 편지가 교육청에 전달됐다는 소식을 접한 박 교사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몸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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