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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5번 고속도로의 진입로에 세워진 도로 표지판
캘리포니아주 5번 고속도로의 진입로에 세워진 도로 표지판 ⓒ 코비스 제공
로스엔젤레스의 밤은 환하게 깨어 있었다. 코리아 타운을 중심으로 그 도시는 늦은 밤에도 살아서 숨쉬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없는 싱싱한 밤이 억척 인생의 한국인들과 함께 웨스턴 거리에 살아 있었다.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I-5번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州間 고속도로)를 달려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경이었다. 7시간에 걸친 장거리 여행이었던지라 온 몸이 뻐근하고 피곤했다. <24시간 해장국>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소뼈 해장국'을 시켜 먹으려니 청진동 뒷골목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단돈 2달러99센트의 외식 경쟁 지대.

식당가는 온통 탄핵 정국의 향배와 용천 참사를 둘러싸고 온갖 설을 제기하며 현장 뉴스에 초미의 관심을 던지고 있었다. 젊은이들도 나름대로 모여 앉아 이라크 전선의 포로 학대 사건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식당엔 피크 타임이 지났음에도 주말맞이 모임들이 한창이었고 그들은 정치 이외에도 ‘살아가는 이야기’로 진지한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H 사우나가 역시 24시간 찜질방을 완비하고 손님을 맞았다. 따끈한 온돌에 누웠더니 1년간 쌓였던 일상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 내리는 기분이다. 땀으로 떨어지는 마음의 묵은 때를 함께 벗긴다.

한인타운은 수년전에 보았던 황폐한 그 거리가 아니었다. 흑인 폭동의 암울한 기억들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건만 적어도 그 밤에 만난 코리아 타운의 내부에는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갤러리아 백화점에 들어서자 고국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온다. 4층 건물 전체가 모국어의 대화로 가득차고 고국의 상품이 또한 넘쳐나고 있었다.

백화점 전체가 그대로 한국이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국인들의 거센 행렬 뿐, 이방인은 없었다. 중국과 일본도 그 자리에 얼씬거리지 않았고 오직 한국만이 존재해 있는 그 곳에 앉아 나는 비로소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이민 100년사의 거대한 숨소리를 들었다.

LA 도시 한복판에서 1백만 한국인 집단이 쌓아올린 이민 성곽(城郭)의 커다란 힘을 느끼며 여기까지 오도록 피땀흘린 이민 선조들의 힘에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2세들의 생활 자세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이었건만 어눌한 모국어로 열심히 국가관을 토로하는 청년 운전사와 빵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종업원들의 친절한 지역 안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정녕 친근한 한국인이었다.

타국에서 태어난 그들이기에 오히려 모국의 정서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아직도 식지않은 월드컵 4강의 새벽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의지의 한국인들이 그 곳에 살고 있었다.

넓게 퍼져있는 도시의 구도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과거의 인식과는 달리 코리아 타운 전체가 활발한 삶의 터전이자 격전지(激戰地)라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뛰고 이내 풍요로운 생활 전선으로 변모해 보였다. 대도시가 주는 심적 자극의 변화가 새롭다.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느냐. 불모(不毛)지대에 정착하며 이민 선조들이 피땀 흘려 이룬 강한 지역 기반 위에서 더욱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가야 하리. 물론 사람 사는 곳인지라 내부 깊이 들어서면 치열한 경쟁과 반목이 도사리고 있를 터. 그러나 그러한 애증(愛憎)의 커뮤니티는 같은 민족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

일요일 오후 5번 도로에 다시 진입해 새크라멘토 표지판을 바라보며 북으로 북으로 달려나갈 때까지 나는 <재기한 코리아 타운>을 떠올리며 마냥 흐뭇해 하고 있었다. 미국 전역의 고속 도로중 가장 많은 숫자의 한국인이 달리는 길이 아마도 5번 도로일 것이다. 북단의 캐나다 접경지 시애틀을 출발해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와 미국최대 관광도시인 샌프란시스코를 지나 남으로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옆에 두고 샌디에고를 거치면 멕시코에 닿는 대장정의 도로다. 미국 서부 해안을 길게 연결하는 2천여 마일의 직선 도로.

5번 도로에 거센 바람이 분다. 남미의 고향을 등지고 멕시코 국경의 철조망을 넘어 아메리칸 드림의 환영(幻影)을 접속하는 도로.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안 민족들이 이민의 꿈과 소망을 안고 달려가는 도로. 시속 65마일의 기본 속도를 무시하고 총알같이 달려 나가는 차량의 급진 행렬을 보라. 대도시에서 전원으로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이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변방을 떠나 도시의 불빛을 따라 나서는 반딧불 인생의 대열이 있다. 그 모두가 나름대로 추구하는 삶의 흐름을 따라 이 길을 달리고 또한 이 길을 내린다.

샌프란시스코가 다가올수록 나의 마음은 묘하게도 다시 평온을 찾는다. 약속의 땅 LA에서 가졌던 욕망과 도전은 시들어지고 다시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을 바라보며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삶이 권태롭고 일상에 지쳐있을 때 언제든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그곳에 가면 삶의 뜨거운 입김과 열정이 재충전되기 때문이다. 이제 언제든지 오리라. 살아가며 외로울 때나 침체에 허덕여 자극과 활력을 필요로 할 때에 언제든지 나는 다시 LA를 찾으리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도정(道程)을 가기 위해 나는 이 길 <5번 도로>를 굳세게 달려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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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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