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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5월 15일 저녁 ASEAN+3 재무장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4.15 총선 이후 숨을 죽이고 있던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며칠 전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은행 박승 총재는 같은 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건설경기가 경착륙되지 않도록 통화정책이나 정부 정책면에서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이 장관을 지원 사격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분양가 원가 공개 문제에 가려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어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건설경기 연착륙과 부동산 경기 부양은 어떻게 다른가? 이헌재 장관은 부동산 투기 억제 방침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며,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해 전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은 부동산 경기 부양과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과연 그런가?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은 민간 SOC 건설의 촉진, 기업도시 등 신도시 건설, 재건축 용적률 상향 조정 및 임대아파트 공급의 확충 등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세 가지 모두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건설 수요를 창출하는 것인데, 이것을 부동산 경기 부양 아니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둘째,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가능성은 없다고 하는데, 왜 연착륙 방안을 서둘러 시행하려 하는가? 박승 총재에 의하면, 부동산 가격 급락은 경기하강기에 발생할 때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나 지금 우리 경기는 상승을 내다보고 있으므로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으며 일본식 부동산 시장 붕괴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부동산 투기가 수그러들면서 진행되는 시장의 자기 조정과정을 왜 정부가 저지하려고 하는가?

사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투기적 수요의 감소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 미분양이 발생하고 건설업체의 폭리가 줄어드는 상황을 맞고 있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의 운동으로 인해 전근대적 택지공급제도도 더 이상 유지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몇 년 동안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건설업체에게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건설업체가 시장 원리에 따른다면, 아파트 분양가를 낮추어 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아파트 분양가를 인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과연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가?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 따위는 건설업체들로 하여금 시장원리를 무시하게 만든 주범이다. 시장이 조정과정에 들어갔을 때 정부가 개입하여 섣불리 부양책을 쓰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우리는 IMF 경제위기 때 철저히 경험하였다.

셋째로, 건설업체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시장주의인가? 이헌재 장관은 시장을 중시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나 하나 따져보면 그의 입장은 전혀 시장주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개입주의(interventionism) 내지 중상주의(Mercantilism)에 가깝다.

정부가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건설 수요를 창출하는 것부터 시장주의가 아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들이 시장 원리에 맞추어 '장사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폭리는 부동산 투기와 전근대적 택지공급 제도 덕에 가능했다.

둘 다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방해하는 것으로서 시장 메커니즘을 해치는 요인들이다. 시장 메커니즘을 존중한다면, 마땅히 투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택지공급제도에 자유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단기적 규제책을 쓸 것이 아니라 토지보유세를 대폭 강화하면 된다. 시장원리에 맞는 택지공급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분양 원가를 공개해서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이헌재 장관은 이러한 정책에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이 시장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가 생각하는 시장주의는 독점적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고 방임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중상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원조 시장주의자, 아담 스미스가 살아 있었다면 통탄했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것에는 찬성이지만, 자유경쟁을 내용으로 하는 참된 시장주의가 아니라 투기와 특혜, 독점적 기득권을 방임하는 사이비 시장주의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심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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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헨리조지센터 대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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