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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성불사에서 기도하는 소희
장산 성불사에서 기도하는 소희 ⓒ 윤지형
우리는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사람을 믿지 못하듯이 말이 아무리 그럴 듯 할지라도 진실한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지 않는 사람 또한 믿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말로는 갖은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서도 전쟁이나 환경 파괴, 빈부 격차, 극한적 입시 경쟁 등 사회적 폭력 구조에는 눈을 감거나 무감각하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반 생명 행위라 할 것입니다.

평소 집안에 화초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두 딸아이가 그토록 열망하는 애완동물 기르기도 이런 저런 핑계로 허락하지 않아 온 나이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생명의 존엄성이나 소중함에 대해 잘 알고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다소 얄팍하고 관념적인 자기 암시는 최근 우리 집 안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요컨대 나는 내가 얼마나 생명에 대해 둔감한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너는 올챙이 나도 올챙이
너는 올챙이 나도 올챙이 ⓒ 윤지형
어항 속 올챙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지만 거기에도 적자 생존의 비극은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소재 강동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열 살 먹은 우리 집 둘째 딸 소희가 어느 날 하교 길에 올챙이 열 두어 마리를 사왔습니다.

교문 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팔고 있었다더군요. 소희는 지지난 주 아빠인 나와 올림픽 공원에 갔다가 거기 작은 연못에서 올챙이를 잡고 싶어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챙이가 집으로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요일 오전이었습니다. 거실에서 작은 어항 속 올챙이를 들여다보며 놀고 있던 소희가 기겁을 하며 서재에 있는 나를 불렀습니다.

놀라서 나가 봤더니 소희는 차마 못 보겠는지 어항 속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울며 베란다로 도망치듯 숨어버렸습니다. 어항 안을 살펴보니 거기 올망졸망 모여 있는 올챙이 무리 속에 다리가 조금 자란 제법 큰 올챙이가 송사리 같은 작은 올챙이의 꼬리를 꽉 물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나는 급한 대로 식탁에 얹혀져 있는 젓가락으로 서로 엉켜 있는 올챙이들을 떼 내었습니다. 그러자 올챙이 한 마리의 꼬리가 심각하게 잘려 나간 게 눈에 훤히 드러나더군요.

슬픈 소희
슬픈 소희 ⓒ 윤지형
꼬리가 뜯어 먹힌 올챙이의 아픔은 소희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고

소희 쪽을 살펴봤더니 소희는 베란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올챙이들은 그렇게 사는 거야. 그게 자연의 섭리야. 그 많은 개구리 알들이 다 올챙이가 되고 그 올챙이들이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다 개구리가 되면 이 세상은 아주 올챙이의 나라가 되게?"

이런 말로 대강 딸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했지만 소희는 베란다 구석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꼬리 잘린 올챙이의 아픔만큼이나 아팠을 아이의 마음이 내 마음을 따갑게 파고들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꼬리 잘린 올챙이를 아이에게 보여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저만치 있는 소희의 눈치를 보며 어항을 들고 욕실로 종종 걸음을 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우선 대야에다 올챙이들을 쏟아부은 다음 그 중 꼬리 잘린 올챙이를 거기에서 건져내어 그걸 좌변기에 던져 넣고는 물을 내렸습니다.

올챙이가 블랙 홀로 빠져 들어가는 순간 '아,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뿔싸! 물을 내린 순간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얼 한 거지? 내 눈앞으로는 저 무시무시한 블랙홀과 그 속으로 초스피드로 빠져 들어가는 올챙이의 숨막힐 듯 공포스런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꼬리 잘려 어차피 죽을 목숨인 올챙이, 그렇게 해서라도 그 비참한 모습을 딸아이에게 안 보여주고 싶어 그랬던 것인데 생각해보니 정말 끔찍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얀 블랙홀이었다
그것은 하얀 블랙홀이었다 ⓒ 윤지형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면도날로 섬세하게 상처를 입은 것만 같은 내 마음을 감춘 채 어항을 들고 욕실을 나온 나는 소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소희야. 아빠가 떼 놓고 나니까 괜찮네. 이제 여기 와서 봐."
소희는 눈물이 마른 얼굴로 거실로 나왔습니다. 한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항 안에 꼬리 잘린 올챙이는 그대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멀쩡한 올챙이를 좌변기에다 생매장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확인을 하고 좌변기에 던진 건 분명하니까요. 사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경황이 없어 잘 살피지 못했던 것인데, 무리 속에 꼬리 잘린 올챙이는 두 마리였던 것입니다.

아이는 명쾌한 리얼리스트
꼬리 잘린 올챙이는 다리가 생기고


소희는 그 올챙이의 모습을 보았지만 더 이상 울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보다 더 명쾌한 리얼리스트이기 때문일까요? 다른 한 마리의 상처 난 올챙이를 제 아빠가 저 하수관의 어둠 속으로 영영 보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소희는 "저 올챙이 안 죽을 거지? 살 수 있는 거지? 꼬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하고만 물었습니다.

나는 내가 욕실에서 막 저지른 행위를 아프게 곱씹으며 막연히 "그래, 살 수 있을 거야. 꼬리도 다시 날 거고"하고 대답했지만 내심, '저 올챙이가 만약 산다면 내 죄는 더 커지는 셈이야'하는 생각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힘은 나의 얄팍한 계산을 여지없이 무산시켰다고 해야겠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는데도, 올챙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다른 건강하고 큰 올챙이들보다는 늦었지만 다리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패배자가 된 셈인 아빠의 기분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소희는 학교만 다녀오면 올챙이에게 매달렸고 올챙이 무리는 작은 어항 속에서 점점 부피를 더해 갔습니다.

올챙이들을 계곡에 놓아주는 주희와 소희
올챙이들을 계곡에 놓아주는 주희와 소희 ⓒ 윤지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게 절하는 마음


그리고 마침내 예고된 이별의 날이 왔습니다. 햇살이 무지 투명하던 지난 주 어느 날 나는 우리 아파트 단지를 병풍처럼 둘러 선 장산으로 주희, 소희 두 딸과 함께 산행을 나섰습니다. 내 손에는 어항이 들려 있었고요.

우리는 장산 자락 한 계곡에 올챙이들을 놓아주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계곡의 돌과 돌 사이에 가만히 몸을 감추던 올챙이들 중에서도 유독 꼬리 잘린 올챙이가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산 기슭에 우뚝 서서 해운대 바다를 내려다 보는 성불사라는 절에 들러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 삼배도 올렸습니다.

모든 생명에 절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모든 생명에 절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 윤지형
나는 소희가 관세음보살님께 뭐라고 소원했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꼬리 잘린 두 올챙이의 운명을 통해 소희가 내게 생명의 소중함을 새롭게 일깨웠을 뿐입니다.

딸이 절하는 모습이 새삼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그건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 절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절하는 마음과 생명 존중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하나라는 생각이 내 마음 가득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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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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