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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서구 토성동에 위치한 대한레코드.
ⓒ 정연우
테크노와 중고 LP판이 이곳만큼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부산 서구 토성동에 위치한 대한레코드. 한때 전국 나이트클럽에서 테크노 '버터플라이'와 '키스'를 대유행 시킨 장본인의 가게치고는 너무 외진 곳에 있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7평 남짓한 이 곳은 겉보기와 달리 댄스 마니아부터 중고 레코드 수집가까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마니아들을 위한 중고 LP레코드 전문점이다.

특히 80년 나이트클럽의 유행과 그 명맥을 같이한 대한레코드를 이어받아 7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정순길(37)씨는 가게 주인이라기보다 그 자신도 음악을 공부하고 즐기는 것에 도취된 사람같았다.

20대부터 음반 엔지니어로 음악과 인연을 맺은 정씨는 요즘도 세계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앨범을 구하고 듣느라 여념이 없다. 한 때 그가 다운타운가의 나이트DJ들에게 권해준 몇몇 테크노 곡들이 전국에서 히트했을 만큼 음악에 대해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레코드 가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가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느낄 수 있다.

▲ 가게주인 정순길씨.
ⓒ 정연우
가게는 작지만 손에 잡히는 LP판마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수입 오리지날 원판들이 즐비하다. 그것도 보물찾기하듯 가게 LP 레코드판을 뒤지다 보면 휘귀 명반도 한 장씩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DJ(LP로 플레이를 하는 음악가)뿐만 아니라 방송국 음악전문 PD들도 정씨의 가게에 대해선 부산에서 몇 안 되는 최고 명판을 찾을 수 있는 가게로 평가할 정도다.

무엇보다 이 곳의 큰 특징은 저렴한 가격. 몇몇 희귀한 명판을 제외하면 비교적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중고 음반 시장이 국내보다 10배 이상 큰 일본에서도 LP수집가들이 수소문해서 찾아와 구매해 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현재 대한레코드 중고 앨범의 시세는 보통 클래식 앨범 원판이 5천원~3만원, 팝음악은 원판 6천원~1만원선, 라이선스 앨범은 2천원~3000원선이다. 가요는 주로 60~70년대 앨범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비싼 건 최고 6만원. 그러나 대개 1~2만원 선에 거래된다.

일반적으로 가요보다는 팝, 팝보다는 클래식 앨범의 가격이 높지만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철저히 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는 중고 음반의 특성 때문이다. 희귀 앨범의 경우 한 장에 몇 백만 원씩 하는 '명품'도 있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는 드물다.

▲ 정씨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들을 즐길 수 있어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정연우
하지만 정씨는 "중고 LP판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만큼 정씨는 LP판을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원하는 음악의 원반을 찾아주는 즐거움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중고 LP판에 대해 "LP 앨범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먼저 아날로그 감성에 충실해야 한다. 귀찮다고 앨범을 함부로 다루고, 턴테이블 바늘에 먼지가 낄 때까지 방치한다면 LP 앨범 청취자로서 자격이 없는 셈"이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아주 특별한 희귀 음반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귀히 여기는 음반에 대해 설명했다.
"60~70년대 가수들 가운데는 처음 전속된 회사에서 발매한 것들이 가치가 높은데 이런 초판은 500장 정도에 지나지 않아 희귀성이 높다. 그래서 10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클래식은 초판을 내고 재판을 찍지 않은 것이 주목을 받는다. 60년대 나온 캐피탈이나 데카가 그런 경우다."

▲ 무디 블루스의 1968년도 앨범.
ⓒ 정연우

▲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한정판 앨범. 그가 아끼는 앨범이기도 하다.
ⓒ 정연우
그는 현재 가게에 2만장이 넘는 국내외 중고 LP레코드판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권해주는 LP레코드판으로는 1968년도에 영국에서 발매된 무디 블루스의 앨범 <데이 오브 퓨처 페스드 Day of Future Pssed>,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한정판, 조 카커의 그레이트 히트 vol .1 등 나열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편안함과 아날로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

▲ 이 가게의 7년 단골인 김경진씨가 맘에 드는 LP판을 발견했는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정연우

▲ 정씨는 손님들이 고른 앨범을 직접 들려주기도 한다.
ⓒ 정연우
대한 레코드의 7년 단골인 김경진(37)씨는 "이곳만큼 LP 레코드판을 제대도 취급하는 곳은 없다"며 "무엇보다 가게가 주는 편안함, 그것이 음악 마니아들을 끄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라고 전했다.

또 "정말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앨범을 뜯어 들려주는 것도 이 가게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김경진씨는 전직 DJ출신답게 중고 LP레코드판에 손이 가 있었다.

손님과 같이 음악을 듣고 있는 가게주인 정씨는 "아직 우리 가게는 다른 중고 레코드 가게와는 달리 인터넷 홈페이지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로 "인터넷을 통해 소개하기에는 너무 무궁무진한 것들이 가게에 존재한다"며 "인터넷으로 아날로그 LP의 매력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 그는 때때로 작업실에서 현대무용가나 DJ들을 위해 음악편집이나 샘플링 작업을 할만큼 음악 전문가기도 하다.
ⓒ 정연우
마지막으로 그에게 "꿈이 뭐냐"고 질문을 던지자 "CD나 MP3만 듣는 디지털 세대들에게 LP만의 깊은 맛을 한번 느껴보게 하는 게 작은 꿈"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정씨는 "요즘 동구권의 한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독집 앨범에 빠져있다"며 낡은 턴테이블에 좋아하는 레코드판을 틀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중고 LP레코드판을 고집하겠다고 말하는 그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진정한 아날로그 음악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가게를 계속 운영할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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