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뭐니뭐니해도 먹거리가 있어야 흥을 돋운다. 더구나 사람과 자연을 하나로 묶어 놓을 수 있는 축제인 만큼 제주 청정 바다에서 자신들이 건져 낸 보물들을 선보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리물회, 자리구이, 자리강회, 해물전, 소라구이 등 바람에 흔들리는 메뉴판은 보기만 해도 벌써 바다를 한모금 삼켜 버린 느낌이다. 축제장 한 편에 마련해 놓은 먹거리 장터에는 활기가 넘친다. 평소 조용하던 마을에 손님들이 몰려드니 마을 사람들은 신이 났다.
"서귀포까지 왔으니 자리물회를 먹고 가야지요."
보목리 포구를 한바퀴 돌아본 남편은 자리물회가 생각났는지 말을 건넨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토박이인 그이가 어찌 푸른 바다에서 이제 막 건져낸 자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포구 모퉁이 행사장 천막 속에서는 정신없이 자리의 비닐을 벗기고 있는 해녀들이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 자리물회 먹 엉 갑 써 게 ! "
운을 띄우는 해녀의 사투리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러나 나는 사실 자리물회를 즐겨 먹지 않는다. 붕어 같이 생긴 민물고기를 날 것으로 썰어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물회와 강회를 만들어 먹는 것이 조금은 생소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 더위에는 자리물회가 최고의 별미라며 자랑을 하는 해녀들의 자랑에 그만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자리물회와 자리구이를 먹기로 했다. 풋고추에 된장, 자리 젓, 미역무침, 멸치볶음, 무우채, 나물 그리고 얼음을 숭숭 띄워 만든 자리물회가 한 상으로 차려졌다.
"당신도 한번 먹어보구려!"
남편은 숟가락을 들고 시원한 자리물회 국물만 떠먹는 나를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표정이다. 큼지막한 대접이 부족할 정도로 넘실대는 자리물회. 이게 바로 보목리 사람들의 인심이다.
자리물회는 오이와 깻잎, 미나리, 파를 채로 썰어 된장을 풀고 설탕과 식초, 소금, 고춧가루, 깨소금으로 간을 맞춰 자리와 함께 만든 시원한 물을 넣고 얼음 몇 조각을 숭숭 띄우면 된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철에는 자리물회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한기가 도는 것 같다. 남편의 입 속에서는 자리 씹는 소리가, 내 입 속에서는 얼음 깨무는 소리가 오독오독 들린다.
자리돔은 칼슘이 풍부한 바다고기로 5월부터 8월까지 제주도 근해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다. 특히 자리는 지방, 단백질, 칼슘이 많은 영양식이며 물회, 강회, 자리젓, 소금구이 조림 등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다.
더욱이 자리물회는 비린내가 없고 시원하며 구수한 맛을 내는 특징 때문에 여름철 제주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더욱이 제주의 여름을 연상시키는 음식으로 제주 사람들은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자리물회를 꼽는다.
그만큼 자리물회는 제주 사람들과 친숙한 음식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노릇노릇하게 석쇠에 구워 나온 자리구이도 일품이다.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와 바다 냄새가 한데 어우러진 서귀포 보목리 포구는 여름이 있어 좋다.
특히 서귀포 자리물회는 서귀포 70경 생활문화유산의 하나로 관광객들과 제주도민들은 꼭 자리물회를 먹고 여행을 떠나야 서귀포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그동안 바쁜 일정 때문에 서귀포 70리 여행을 잠시 중단했다. 그런데 보목리 포구에서 자리물회로 오장육부를 시원하게 적시니 70리 길을 거뜬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를 옆에 끼고 밥 한 공기에 미역과 자리젓 그리고 자리물회와 자리구이로 허기를 채우니, 바다 위에 내가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내 마음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 테우' 즉, 뗏목배가 포구 모퉁이에서 파도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포구에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서 먹는 자리물회 맛은 아스라이 보이는 한라산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제지기 오름의 남국의 정취까지 집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