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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지루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 나갔고, 몇 개월에 한 번씩 겨우 집에 돌아온다. 서로 무의미한 상처만 남기고 있는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무엇일까.

기습 공격? 더 강한 무기? 아니,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바로 성(性)이다. 여성들의 ‘성(性)파업’이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라면 북쪽의 여성과 남쪽의 여성도 하나가 될 수 있다. 남과 북의 여성들이여, 단결하라. 잠자리를 거부해서 멈춰라, 전쟁을!

전쟁을 멈추기 위해 여자들이 나섰다

▲ <여성반란> 출연 배우들
잠자리를 거부해 전쟁을 멈춘다니, 불가능한 얘기라고? 아니, 가능하다. 바로 이 연극 속에서는. 모든 여성들이 남자들과 성관계를 거부함으로써 남자들의 폭력과 전쟁을 끝내게 한다는 내용의 <여성반란>은 성(性)과 폭력,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을 시종일관 웃음으로 버무린다. 물론 그 웃음의 주요 코드도 바로 성이다.

전쟁과 성이라니, 연결이 될 듯하면서도 잘 안 된다.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여성과 어린이라는 말이야 많이 들어봤지만, 그 피해자가 거꾸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니.

그런데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여성들이 무기한 성파업에 들어가고 남자들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앞으로도 잠자리는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러면 남성들은? 처음엔 코웃음 치며 비웃지만 결국은 무릎을 꿇는다. 여성들의 요구처럼 전쟁은 멈추고, 평화와 사랑이 돌아온다.

성파업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여성들을 보며 단순히 “여성이 스스로 ‘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며 비판할 수는 없다.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은 여성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이 그저 여성들에게 유리한 ‘수단’은 아닌 것이다.

여성의 입에서도 “(전쟁을 멈추기 위해 성관계를 안 해야 한다면) 그냥 전쟁하라고 해!” 라는 말이 나온다. 시위를 하는 도중에 빠져 나와 집으로 도망가는 여성도 생긴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성욕을 참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단지, 앞으로 계속될 미래를 생각하면 잠시 고통이 있어도 전쟁을 멈추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걸 깨닫지 못하는 남자들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성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성들은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의미 없는 싸움을 끈질기게 계속하던 남자들이 여성들의 집단행동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 넘쳐나는 성욕을 계속 참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동물적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어제의 적과 손을 잡는다. 오랜 전쟁이 준 많은 피해보다 여성들의 잠자리 거부가 더욱 고통스러웠다는 얘기다. 아니면 그만큼 정당한 이유가 없는, 굳이 계속할 필요가 없는 전쟁이었기에 가능했던 걸까.

남성들이여, 무기를 버려라

연극은 특히 남성들의 성을 시각적으로도 희화화한다. 부자연스럽게 커다란 성기를 드러내며 관객에게 충격을 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일부 여성 관객들은 소품이라고는 해도 부풀어 오른 남성들의 성기를 보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공개적으로는 성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에 익숙한 일부 여성관객들은 과장되고 적나라한 성기 노출을 ‘폭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분명 남성들의 성기는 ‘무기’처럼 느껴졌다.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서로의 성기를 드러낸 채 갈등을 겪는 장면은 남성들의 폭력성을 잘 보여줬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남성 관객들이 그런 장면에서 더욱 크게 웃었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의 행동이 전쟁을 끝낸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감당하지 못한다.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오자, 남과 북의 대표들은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한다. 38선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묻기로 한다. 평화를 약속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긴 했지만 여성들의 성파업으로 고통을 겪은 남자들은 이렇게 따질지도 모른다. 여성들도 사실 성을 이용해 폭력을 휘두른 것 아니냐고. 간접적이지만 일방적인 성관계 거부로 남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강제로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여성들은 분명 성을 이용해서 전쟁을 끝냈다. 정확히 하자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전쟁을 끝내도록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총이나 칼을 사용하지 않는, 인간의 본능을 이용한 것이었다. 매슬로우가 말하지 않았나. 식욕과 성욕 같은 생리적 욕구는 안전의 욕구에 우선한다고.

그것이 폭력이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여성들도 성관계를 참으며 고통을 느꼈다. “몇 달에 한 번 겨우 하는 그걸 하지 말라니, 무슨 낙으로 살라고!” 하고 울부짖었단 말이다. 함께 고통을 나눠 전쟁을 끝내자고 한 것이지,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여성들이 단결한다는 것은, 그것도 성파업을 일으킨다는 내용은 무척 흥미로웠다. 이미 전쟁을 겪었고, 또 다른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는 상황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전쟁이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세계 연극인들이 <여성반란>의 원작 <리시스트라타>를 번안, 공연하여 반전에 대한 주장과 의식을 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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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보잘 것 없는 목소리도 계속 내다 보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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