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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파도 소리는 바다의 교향악이다
바닷가의 파도 소리는 바다의 교향악이다 ⓒ 정철용
요즘 비가 자주 내린다. 한국에서는 한여름을 앞두고 있는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내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뉴질랜드는 우기인 겨울철이라 비가 자주 내린다. 그 빗줄기가 어떤 날은 빈틈없이 하루 종일 내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해와 숨바꼭질을 해가면서 징검다리 건너듯 하루를 건너가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창문가에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삶의 쓸쓸함에 대하여 한없이 감상에 젖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창문가에서 빗줄기를 보는 대신 소파에 앉아서 빗소리를 듣는다. 이곳 뉴질랜드에 살면서 생긴 버릇이다.

이곳 뉴질랜드의 집들은 대부분 단층 또는 이층집이라 제법 굵은 빗줄기가 아니더라도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선명하게 잘 들린다. 또한 이중창으로 되어 있거나 베란다가 사이에 있는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리 이곳의 집들은 홑겹의 창문이 안팎을 가르는 경계의 전부여서, 집 안에 있으면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바로 옆에서인 것처럼 가깝게 들린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눈으로 보았을 때는 칙칙하게만 느껴지던 비오는 날의 풍경이 이렇게 귀로 들을 때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강약도 있고 중간 중간에 휴지부도 들어가고 어떤 때는 바람소리까지 더해져 지붕과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는 마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어떤 신비로운 타악기의 연주처럼 내게 들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비가 내린다고 마음이 쓸쓸할 리가 없다. 빗방울이 들려주는 자연의 음악 소리에 내 마음은 오히려 통통거리며 튀어 오른다. 왜 그동안 나는 이런 자연의 음악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온 것일까?

갈수록 심해지는 시각 편향의 문화에 휩쓸려 버린 내 욕심 많은 눈 탓이 가장 클 것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우리 시대의 시각 우월주의가 그 동안 내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내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이 단지 눈뿐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장소불문하고 울리는 휴대폰의 경박한 벨소리와 잡다한 세상사를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TV와 라디오 소리, 여기에 단 1초의 머뭇거림도 허용하지 않고 내 뒤통수를 가격하는 자동차 경적음까지 가세한다.

내 주위에 넘쳐나는 이러한 온갖 소리들에 묻혀 살았으니, 비오는 날에도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바람 부는 날에도 바람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닿지 못했던 것이다. 자연의 소리는 침묵 속에서 가장 잘 들리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아침 저녁으로 새들은 기와지붕에 날아와 앉아 아리아를 들려준다
아침 저녁으로 새들은 기와지붕에 날아와 앉아 아리아를 들려준다 ⓒ 정철용
그러다가 뉴질랜드에 살게 되면서 나는 먼저 휴대폰을 버렸다. TV와 라디오를 보고 듣는 시간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리고 여기서는 자동차 경적은 최후의 경고 수단이어서, 도로에서 자동차 경적음을 듣기란 여간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니 오클랜드 주택가의 거리는 조용할 수밖에 없다.

그 침묵 속에서 내가 들은 자연의 소리는 빗소리와 바람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아침과 저녁나절, 나뭇가지나 기와지붕에 두세 마리씩 무리지어 앉아 부르는 새들의 아리아와 바닷가를 걸을 때 조개껍질이 섞인 모래밭에 파도가 풀어놓는 바다의 교향악에 나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햇빛 쨍쨍한 여름날에는 단단한 침묵에 마치 전동드릴로 구멍을 뚫는 것처럼 중간 중간 휴지부를 두면서 연속적으로 울어대는 매미 소리도 만났다. 그 매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유년의 기억 어디쯤으로 스며들어, 커다란 잠자리채로 매미를 잡으려고 미루나무 그 아스라한 높이를 올려다보고 있는 소년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는 실제로 그 매미 소리에 이끌려 마당에 나가 조심스럽게 나무줄기들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울고 있는 매미를 발견하고 기쁨의 환성을 지르기도 했다. 내 환성에 매미는 울기를 멈추고 이내 다른 나무로 날아가 버렸지만, 유년 시절 이후로 매미를 처음 보았던 그 날 나는 얼마나 기뻤던가!

소리에 민감한 매미는 침묵 속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보여준다
소리에 민감한 매미는 침묵 속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보여준다 ⓒ 정철용
이 모든 자연의 소리들은 침묵 속에서 내가 들은 것이었다. 내가 침묵하자 자연은 자신의 음악을 내게 들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내 귀는 침묵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은 아니어서 아직도 내가 듣지 못하고 놓치는 소리들이 너무나 많다.

가느다란 미풍에도 잎사귀를 흔드는 나무들은 분명 내게 건네고 싶은 말들이 있는 것이다. 푸른 잔디밭 아래 숨어 있는 벌레들을 새들이 멀리서도 알아보고 내려오는 것은 내가 듣지 못하는 그 벌레들의 울음소리를 새들은 듣기 때문일 터이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피고 지는 꽃들 역시 햇빛이 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렇게 꽃잎을 열고 닫는 것이리라.

그러니 더 잘 듣기 위해서는 나는 더 침묵해야 한다. 따라서 위 시에서 김 교수가 한 학기 내내 학생들에게 보여준 침묵은 학생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침묵이야말로 모든 '소리 듣기'의 기본인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도 그 다음 학기부터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자연의 소리이든 아니면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든 간에, 진실을 담고 있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리 귀 속에 들어 있는 세 조각의 청소골이듯이, 이 세상의 모든 소리 속에 담긴 진실은 '침묵'이라는 딱딱한 소리의 뼈를 통과하지 않고는 우리 귀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람들아,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김 교수의 학설을 비웃지 마라. 그대가 침묵하지 못하면 그대의 귀는 영원히 진실로부터는 멀어지게 된다. 잘 듣기 위해서는 우선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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