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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교시는 고등학교에서 정규수업에 앞서 진행되는 아침 보충수업을 일컫는다. 0교시는 강제로 진행되는 특기적성교육, 야간자율학습 문제까지 아우르는 파행적 교육현장을 상징하는 말이다. 0교시 폐지는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문제제기이기도 하지만, 학생과 교사의 건강권과 자율권의 신장을 기본으로 하는 인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올 봄 교원노조와 각 시도교육청은 0교시를 폐지하고 선택 자율학습을 시행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 교장단과 학부모단체가 합의 무효를 강하게 요구했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 나라 교육정책이 그러하듯 0교시 폐지 문제도 교육현장의 여러 집단간의 이해 충돌로 시행과 함께 왜곡되고 있다. 0교시 문제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난민국 아이들도 아닌데..."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어 불빛이 환한 초저녁의 교정 등나무 밑에서 두 학생을 만났다. 찬주와 재연은 수원지역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찬주는 학급 반장을 맡고 있고, 재연과는 한반 동료에다가 교내 힙합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하는 '서로 떨어져서는 죽는' 사이다. 힙합 동아리에서 찬주는 래퍼로, 재연은 댄서로 활동하고 있다.

"성격? 좋게 말하면 활발하고 꽈서 말하면 시끌벅적하다."

이들은 쾌활하고 말 많은 여느 고등학생과 다름없다. 찬주는 기말 수행평가 과제로 친구들과 '0교시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인권 달력을 만드는 수업에 참여해 UN아동조약에 맞춰 주제별로 사진 작업을 하면서 '학생 인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찬주와 재연의 아침 등교 시각은 7시 50분으로 예전보다 30분 늦춰졌다. 예전에는 이른바 0교시로 불리는 보충수업을 받기 위해 7시 20분까지 등교해야 했다. 올해 초 가족이 용인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찬주의 통학거리는 멀어졌다.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매일 어머니가 승용차로 등하교를 시켜주고 있다.

찬주는 아침 6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보통 취침 시각이 새벽 1시를 넘기 때문에 다섯 시간을 채 못 자고 일어나는 셈이다. 찬주는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7시 20분에는 교복을 입고, 어머니 차를 타야 한다. 학교에 도착하는 시각은 7시 45분. 곧바로 영어듣기수업이 있다. 학년별로 동일교재를 선택하여 교내방송으로 듣는 수업이다.

0교시는 학생이나 교사에게 하루 일과 중 가장 힘든 시간이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수업이 진행되기 일쑤다. 선생님들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졸음에 쓰러진다. 심신이 지친 교사와 학생이 억압적인 시간표에 묶여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형국이다.

0교시 폐지 이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자 재연은 30분을 더 자게 되었다고 한다. 찬주는 아침밥을 천천히 먹고 화장실을 다녀온단다.

"예전에는 8시 20분에 보충수업이 끝나면 9시 정규수업 때까지 40분이 남았다. 아침 못 먹고 온 친구들은 그때 매점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어쨌든 그 시간은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놓고 선생님들 회의하는 시간인데 이해가 잘 안 갔다. 등교를 40분만 늦추면 밥도 먹고 올 텐데 말이다."

0교시를 폐지하고 아침시간 30분을 되찾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교육부 지침이 내려오자 교장은 난색을 표했다. 다른 학교의 움직임을 보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일부 교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교장에게 전달했다. 그때서야 교장은 마음을 돌렸다. 0교시 폐지를 단행하자 인근의 다른 학교들도 따라왔다.

"집에서 잠잘 때도 죄의식이 느껴진다"

그러나 0교시 폐지가 학생들에게 아침 시간을 충분히 되돌려준 것은 아니다. 0교시가 폐지되는 대신 1교시 정규수업이 8시 30분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0교시는 뒤로 밀려서 8교시 혹은 9교시가 되었다. 일종의 편법이다.

오후 4시쯤이면 정규수업이 끝난다. 30분 동안 청소를 마치고 학생들은 새로운 일과를 시작한다. 바로 진행되는 게 아침에 하지 못한 보충수업이다. 이 수업은 수능시험 비중이 높은 국영수 과목으로 채워진다.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권리가 없다. 보충수업에 이어 교육방송(EBS) 시청 수업이 있다.

오후 6시 20분에 저녁 급식이 있고 다시 야간 일과가 시작된다. 저녁 7시 전후에 시작되는 야간자율학습은 밤 9시가 넘어야 끝난다. 밤 10시에 끝나는 학교도 많다. 자율학습이라지만 강제적이다. 예체능계 지원 학생들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강제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설사 집에서 혼자하는 공부가 효율적인 학생이라도 어쩔 수 없다.

"양호실에 가도 오후 5시면 보건 선생님이 퇴근하고 안 계신다. 난민국 아이들도 아닌데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한다."

인천의 한 학교에서는 외출하려면 외출증을 발급받는데 담임의 도장과 학생부 교사의 도장 그리고 교감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 인터뷰 도중에 교정 화단으로 뭔가 둔중한 것이 떨어져 순간 간담이 서늘했다.

자세히 보니 창문으로 내던진 책가방이었다. 찬주와 재연은 '땡땡이치는 학생의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야간자율학습의 강제성에 대한 찬주와 재연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재연은 개인적으로 이대로가 좋다고 한다.

"솔직히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할 자신이 없다. 컴퓨터 유혹, 텔레비전 유혹, 먹을 것 유혹, 그리고 침대 유혹… 차라리 빈둥거리더라도 학교에 있고 싶다."

찬주는 야간자율학습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자신 역시 강제 자율학습이 폐지되더라도 지금처럼 아마 학교에 남아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행위라도 자신이 선택했느냐 아니냐는 다르다. 학생도 놀 권리가 있고 잠잘 권리와 쉴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결국 어른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게 문제 아닌가?"

대부분 고등학생들의 일과가 야간자율학습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학원과 과외수업으로 자정을 넘겨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 찬주는 수학 과목 과외를 주 2회 받고 있다. 과외수업은 친구네 집에서 진행되는데 그런 날은 밤 12시 반이 넘어야 귀가할 수 있다. 숙제가 있어도 할 수 없어 그냥 잔다. 숙제는 학교에서 '효율적으로' 복사본을 만들어 서로 베낀다는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 묶여 있는 학생들에게 집은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헤어지며 '잘 자고 와!', '이따 보자!'하는 기묘한 인사를 나눈다.

"학교에서 자기 싫은데 눈이 감겨 있을 때 스스로 얼마나 비참한 줄 아는가? 아예 푹 자면 모르는데 이름만 부르면 눈이 딱 떠지는 상태로 자고 있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모를 거다. 집에서 잠잘 때도 죄의식이 느껴진다."

매점에서 컵라면 열 번만 갖고 나와도 퇴학

부천에 사는 혜미는 인천의 한 사립형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그는 아침 6시 16분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야 한다. 아침을 못 먹을 때가 많다. 야간자율학습을 받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 30분. 부족한 잠은 한 시간 남짓한 통학거리를 운행하는 스쿨버스에서 벌충한다.

이 학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새 교장이 부임하고 올해 자립형 사립학교로 바뀌었다. 교장은 이 학교를 명문사학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교장은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인천은 물론 부천, 서울의 유명 학원을 손수 뛰었다. 모든 학사 일정이 성적 끌어올리기에 맞춰졌다.

교원노조 출신 교사는 담임에서 빼고 기간제 교사를 담임에 배치했다. 직원 조회는 교장의 일방적인 방침을 전달하는 회의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우열반으로 편성되었다. 우열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자 교장은 '동질집단, 이질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0교시 수업도 새로 생겼다. 학생들은 7시 30분까지 등교해야 하고, 아침 8시에 1교시 수업을 받는다. 오후 4시부터 두 시간 동안 국영수 과목의 특기적성수업이 진행된다. 이 수업에는 교사의 일부가 외부강사로 채워졌다.

이 학교 역시 벌점 제도를 운영해 학생들을 관리했는데 벌점 100점이 되면 퇴학을 당한다. 매점에서 음식물을 가지고 나오는 이동 취식 행위는 벌점 10점이다. 매점에서 컵라면을 열 번만 가지고 나오면 퇴학을 당하는 것이다. 심지어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도 아니고 줍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도 벌점 3점이 주어진다. 부주의로 선생님께 인사를 못해도 벌점 5점이다.

특기적성수업의 자율적 운영을 요구하던 교사 2명이 해직 당했다. 이 학교는 결국 휴교령을 내려야 할 정도로 내분에 휩싸였다. 학생들은 파면 교사의 복직과 교장 퇴진을 주장하며 며칠째 수업거부 투쟁을 벌이고 있다.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한 혜미는 말했다.

"교장 선생님 때문에 좋아진 건 있으나 학교가 학교답지 않다.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다. 그동안 34명이던 반 아이들이 자퇴하거나 전학을 가서 20명으로 줄었다. 솔직히 불안하다. 다른 친구들은 지금쯤 공부하고 있을 텐데…."

이 악순환의 고리…

0교시 폐지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진 일부 학부모단체의 입장도 단호하다. 경기교육공동체시민연합의 남영식 사무총장은 0교시 폐지 등 일련의 조치는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시·도교육청이 밀실에서 단체력을 발휘한 이번 조치를 용납할 수 없어 헌법소원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 역시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다.

"전교조 식으로 말하면 교육계의 경우 등록금을 내는 학부모가 실수요자다. 임금을 주는 학부모가 사측인 것이다. 이번 0교시 폐지 조치는 협의과정도 문제지만 법적 근거도 없다. 모든 학사일정은 학교운영위원회가 토론으로 결정하고 교장 재량권으로 집행되고 있다.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럼, 0교시 문제 자체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서울은 정규수업 빨리 끝내고 학원 수업이나 과외 지도를 받으러 갈 만큼 교육여건이 좋다. 그러나 지방은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시키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빈부격차와 지역차를 무시한 획일적 조치다. 정부에서 대학입시제도 뜯어고치고 대학 서열화 폐지하고 사회 진출도 학벌과 상관없이 실현되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게 우선이다. 이번 조치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학생들의 건강권 문제도 있지만 이 방법 외에는 달리 현실적 대안이 없지 않은가."

결국 교육의 왜곡을 초래한 근본적인 사회부터 수술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의견은 소수 의견이 아니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이 현실논리 뒤로 제 아이를 감춘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이런 현실논리에 무작정 아이들이 희생되어야겠느냐는 물음에 남영식 총장은 이번 0교시 폐지 조치가 실현된다면 지금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육개혁은 늘 현실논리에 부딪혀 좌초되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도 유예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의 분분한 논리와 주장 속에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있는가?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학생들에게 아무리 설문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내놓아도 그건 인격체들이 내놓는 대답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획일·타율·복종의 문화에 적응한 소수의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이고, 그들이 장차 우리 후세들의 교육정책을 수립해 갈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해법은 정녕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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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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