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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을 받으며 키다리 땡추 채수영은 축 늘어진 동자승을 끌어안은 채 굶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그들은 약간의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이쯤 되면 이판사판이 아닌가?'

채수영은 큰집의 대문간에서 끊임없이 망설였다. 그 집은 호조판서 박종경의 집이었다. 이제 해가 뜨기 시작했으니 문을 두드린다면 누군가는 나와 자신을 맞이할 것이었다. 지친 채수영은 정신이 흐트러지며 슬며시 잠이 들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채수영은 자신을 흔들어대는 손길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참으로 안됐다는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는 그 집의 늙은 하인이었다.

"거 지금 아침을 차리고 있으니 들어가서 한 술 뜨시오. 아이까지 안고 이게 무슨 꼴이오."

아이라는 말에 채수영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동자승을 쳐다보았다. 겨우 내쉬는 가냘픈 숨결이 동자승이 살아있음을 알게 해줄 뿐이었다.

"고맙소이다......"

동자승은 간장에 김치뿐인 찬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채수영은 이를 바라볼 뿐 겨우 몇 수저를 뜨다가 남은 밥을 동자승에게 내밀었다.

"어허...... 아이를 보아 하니 심히 굶은 모양인데 저렇게 급히 먹다가 큰 탈나겠소."

늙은 하인의 배려에 채수영은 순간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보시오. 내 부탁하나만 합세나. 여기 대감께 채수영이가 와 있다고 말 해주시지 않겠소? 그러면 날 만나자고 할 것이오."

늙은 하인은 채수영의 겉모습을 봐서는 그 말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 말속에서 긴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알겠소."

늙은 하인이 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종경이 기다리지 않고 급히 달려와 남루한 행색의 채수영을 보고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자네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박선달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긴박한 일이옵니다. 남이 들을까 걱정되옵니다."

박종경은 하인에게 채수영에게 씻을 물과 깨끗한 옷을 주라고 지시한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 들어온 채수영은 통곡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아 긴히 할 말이 있다면서 왜 이러는가?"

"박선달이 딴 마음을 품고 있사옵니다. 이에 반대하니 그 자가 절 죽이려 하옵니다."

"뭐라?"

채수영은 박종경에게 박충준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옹립하려 했단 말인가?"

채수영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을 하지 못했다.

"보나마나 강화도에 유폐되어 있는 성득이겠지! 잘 알겠으니 들어가 쉬게나! 그런데 같이 있던 아이는 누구인가?"

"그것이...... 오다가다 만난 아이옵니다."

채수영이 돌아간 후 박종경은 홀로 곰곰이 이 일을 생각해 보았다.

'섣불리 이를 말했다가 박충준이 모든 일을 발설하면 나도 화를 입을 터! 이를 어쩌면 좋을꼬?'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다가는 자신에게 더욱 큰 화가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박종경은 입궐하여 일을 크게 하는 것보다는 먼저 포도청의 힘을 빌어 천천히 처리하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종경은 포도대장 서영보 앞으로 급히 서찰을 작성해 하인을 시켜 보낸 후 다시 채수영을 불렀다.

"이보게나. 일단 포도청으로 가게. 자네도 알다시피 포도청은 내 손아귀에 있지 않나? 일을 제대로 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네. 자네에게 행여 부당한 죄상이 씌워지지 않도록 내 힘써 봄세."

"그러하오이까...... 그렇다면 청이 있사옵니다. 제가 데려온 아이를 잠시 살펴주시옵소서.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불쌍한 아이옵니다."

박종경은 그야 어렵지 않다는 듯 호쾌하게 웃으며 서둘러 포도청으로 갈 것을 당부하며 하인들까지 딸려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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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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