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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해가 진지 오래건만 역모로 인해 여러 대신들은 퇴궐조차 미룬 채 급히 열린 어전회의에 참가해 웅성거렸고 이윽고 왕(순조)이 용상에 앉아 시임대신의 보고를 들었다.
"......이렇게 죄인 채수영을 세밀히 캐어물으니 매우 흉패하여 감히 입에 담지 못하고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을 함부로 발설하였습니다. 이러한 흉적들은 한시라도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미 날이 저물었고 밤이 새기 전에는 으레 법을 집행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바로 결안(結案)을 받아 즉시 정법(正法)하는 것을 주청 드리는 바입니다."
왕은 어두운 낯빛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홍경래의 난이라는 크나큰 시련을 겪은지라 이런 일은 왕에게 있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었음에도 심기가 상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이런 흉적들의 근원은 강화도에 있는 죄인이옵니다. 바라옵건데 화의 근원을 바로잡아 이런 일이 없도록 함이 마땅하옵니다."
원임대신의 말에 왕은 굳은 표정으로 차마 입밖에 뱉지 못할 말을 속으로 곰씹었다.
'이 자들이 왕족의 씨를 말리려 드는구나!'
그럼에도 실제로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뒤에 마땅히 하교하겠노라."
대신들은 더 이상 왕을 옥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심으로는 왕족들이 딴 마음을 먹지 못할 호재가 생겼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논의와는 별개로 좌우 포도청에서는 거동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잡혀온 사람들로 옥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횃불을 대낮같이 밝혀둔 채 포졸들은 눈을 부릅뜨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감시했고 옥사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거 이런 조무래기들을 잡아서 뭐 하느냐? 공초에 적힌 자들을 잡아와야 할 것 아닌가!"
종사관 한상원은 포장 박춘호에게 크게 화를 내었다. 박춘호는 모르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이보시오. 한종사관님, 공초에 적힌 자들이 한양에 있다는 얘기가 있었사옵니까? 역적모의부터 전주에서 했다지 않습니까? 지금쯤 공초내용을 지닌 파발마들이 각 병영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고 그 들 중에 상당수는 내일 다른 곳에서 잡힐 것이외다. 그렇다고 포도청에서 손을 놓고 있으면 문책이 따를 것인 즉, 이 중에서 역적모의에 가담한 자들을 솎아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아무래도 경험이 풍부한 박춘호에 비해 종사관에 임용된 지 오래되지 않은 한상원이었다. 그래도 한상원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한동안을 박춘호와 옥신각신거렸다. 백위길은 둘의 다툼을 지나쳐 보며 포교들과 함께 야간 순라를 돌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보시오. 백포교."
순라를 반쯤 돌았을 때 백위길을 부르는 자가 있었다. 백위길이 살펴보니 바로 끔적이였다.
"게 누구냐? 야밤에 함부로 다니면 아니 된다는 것을 모르는가?"
포졸 하나가 나서 으름장을 놓았지만 백위길이 끔적이를 보며 아는 척을 하자 무안한 듯 손에 든 횃불만 쳐다보았다. 끔적이는 약간 숨을 헐떡이며 빠르게 말했다.
"강별감이 긴히 알릴 말이 있다해서 왔습니다. 역모를 꾸민 자 중에 두 놈이 산 속 초막에 있다고 하외다. 백포교에게 빚을 갚을 기회라며 내게 알려달라 하더이다."
"빚을 갚을 기회라......."
백위길은 마음이 바뀐 듯한 강석배의 속셈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를 믿을 수 없소. 무슨 흉계를 꾸며놓은 것 일거요."
백위길은 단호하게 말했다. 끔적이는 다급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위길을 설득했다.
"어찌 그리 생각하시오! 강별감이 비록 그들과 어울려 다녔으나 그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었소. 공초에서 그 자의 이름이 빠진 것도 알고 보면 역적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그렇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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