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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용철
1945년 8월 6일과 9일, 북마리아나(Northern Marianas) 공화국 티니안(Tinian)섬에서 B-29 '에놀라 게이'가 이륙했다. 그리고 한반도는 8월 15일 일제 지배 36년만에 광복을 맞이했다.

이날 티니안섬에서 이륙한 B-29기에 탑재된 것은 '맨해튼 계획'에 따라 인류 사상 처음 개발된 우라늄원자폭탄(8월 6일 히로시마)과 플루토늄 원자폭탄(8월 9일 나가사키)이었다.

김형율씨의 어머니는 8월 6일, 여섯 살의 나이로 히로시마에 있었다. 그리고 남으로 귀국해 김씨 등을 낳았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허약 체질로 인한 폐렴'으로 병원 진료가 잦았다. 나이 서른이 돼서야 '선천성면역글로블린결핍증'에 의한 면역체계 결핍이 병의 원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군의 원폭 투하에 따른 피폭자의 고통은 1세대를 넘어 2세대로 유전되고 있었다.

당시 히로시마에서만 약 42만명이 피폭돼 그 중 약 16만명이 그 해 말까지 사망했고 나가사키에서는 약 27만명이 피폭돼 약 7만4천명이 피폭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전쟁 종식을 명분으로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의 희생자는 전범국인 일본만이 아니었다.

일제 식민 정책으로 강제 징용되거나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조선인도 포함됐다. 그 규모는 피폭자 전체의 10%로 세계 2위를 차지한다. 조선인 피폭자들 중 2만3천여명이 남측으로, 2천여명이 북측으로 귀국했고 나머지는 일본에 남았다.

원자폭탄 투하, 정말 필요했나?

과연 원자폭탄으로 전쟁이 종결된 것일까? 그 날,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지 않았을까?

건강세상네트워크·민족문제연구소·인권운동사랑방·민변 등 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원폭2세환우문제해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원폭2세환우 공대위)는 "미국은 원폭 투하 3개월 전부터 일본이 항복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민간인들의 집단 학살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원폭을 투하했고 이후 원폭의 위험성이 공개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정보 통제를 단행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원폭 피해자들은 원자폭탄이라는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하여 신흥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던 소련을 견제하고자 했던 미국의 세계 핵전략의 희생자"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 정책은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미국은 '전승국이 배상한 역사적 선례는 없다'는 이유로 배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하였다'며 배상 책임을 회피해 왔고 한국 정부는 '외교적 문제'운운하며 원폭피해자들의 생명권과 생존권 보호 의무를 지난 59년 동안 저버렸다.

단 한 차례도 정부 차원에서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 조사도 없었던 한국 정부가 원폭2세 환우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리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차라리 망상에 가깝다.

김형율씨는 "59년 동안 정부는 원폭 피해를 개인의 문제로 강요해 왔다"면서 "원폭2세 환우 문제의 쟁점은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국가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 은폐해 온 것을 한국 정부가 방치하고 차별을 조장해 왔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정부, 원폭2세 환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의 히로시마>는 한국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역사와 고통의 기록이자 부끄러운 한국 정부에 대한 기록이며 오만한 일본과 미국을 고발하는 기록이다. 한국 정부가 전쟁 범죄인 '원폭' 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는 60여년 동안 한국 피폭자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도일'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정 투쟁을 해 왔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한국의 히로시마>는 이들이 생명권과 최소한의 인권 회복을 위해 몸부림칠 때 한국 정부가 '국가의 책임을 다했는가'를 되묻고 있다. 가해국의 국민이 피해국의 국민을 위해 싸우며 기록한 <한국의 히로시마>는 교과서에 적힌 일제 시대의 역사가 아니라 살갗에 바늘이 찔리듯한 고통과 부끄러운 자화상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김형율씨와 원폭2세 환우공대위는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과 원폭2세 환우들이 겪고 있는 인권 문제의 역사적 뿌리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있고 또 민간인에 대한 집단 학살을 야기한 미국의 원폭 투하에 있는 만큼 이는 마땅히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군의 원폭 투하로 인한 원폭 피해자들은 1세대를 넘어 2세대, 3세대로 고통이 되물림되고 있다.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원폭 후유증으로 인한 심각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치유 받을 기회를 제공받기는커녕 일제의 광기 어린 침략 전쟁을 끝장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평화의 제물로, 혹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유지를 위해 잊혀져야 할 존재로 간주되면서 또 한번 버림 받아야 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 정책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반도의 핵무기 위협은 고조되고 있다. 반세기 전 미국에 의한 핵폭탄 놀음으로 전세계 두 번째 핵폭탄 피해국이 된 한반도가 이제 반세기가 넘은 지금에도 미국의 핵공격 위협 앞에 놓여 있다는 아이러니컬한 역사에서 우리의 갈 길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국의 히로시마

이치바 준코 지음, 이제수 옮김, 역사비평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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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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