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의 마지막 밤은 시간이 짧다는 아쉬움과 약간의 흥분이 뒤섞인 묘한 감정으로 시작되었다.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이라고 할까? 첫날의 약간 경직되었던 기분이 서서히 풀리자 자연스럽게 옆자리에서 식사하는 일본인 부부와 수다를 떨 용기가 생겼다.

말고기회와 김치 그리고 <겨울연가>

▲ 쿠마모토의 특산물 말고기 회와 쿠마모토 라면
ⓒ 김정은
저 멀리 북쪽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는 이 부부에게도 이 큐슈여행은 우리나라 사람이 제주도를 가듯이 큰 맘 먹고 시간을 내서 온 만만치 않은 여행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표정 또한 약간 들떠 보인다고나 할까? 유카다를 걸치고 이곳 아소의 특산물인 말고기회를 안주 삼아 생맥주를 마시는 일본인 아저씨의 모습은 몹시 행복해 보였다. 얼마나 말고기가 맛있으면 호텔식당 식탁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에게 선뜻 말고기회를 먹어보라고 하면서 김치보다 더 맛이 좋다는 자랑을 할까?

그러고 보니 이들에게 한국은 뭐니뭐니 해도 '김치'라는 인식이 강해 보였다. 그래서 내친 김에 아주머니에게 미친 척 하고 요즘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일본명: '겨울의 소나타')를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무리 인기라고 해도 저 멀리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사는 아줌마까지 알겠는가 싶었는데 뜻밖에도 "아! NHK에서 밤에 하는 한국 드라마"하면서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역시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조차 어느 방송에서 몇 시에 이 드라마를 방송한다는 사실까지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라면 <겨울연가>란 드라마가 어느 틈에 일본 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행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마지막으로 호텔 근처 밤거리를 운동 삼아 배회했다. 여전히 마을 분위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한적한 예전 시골마을 그대로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 고요를 깨는 듯한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니 커다란 확성기를 매단 채 한 표를 호소하는 일명 선거운동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여전히 정치는 시끄러운 필요악(?)이라며 쓴웃음을 짓다보니 마침 눈 앞에 아담한 크기의 납골묘가 보인다.

"저렇게 한 표를 구걸하는 사람이나 지금 이곳을 배회하는 나나 다 죽으면 저 납골묘에 들어가 있는 한 줌 뼛가루처럼 다시 흙으로 되돌아갈 인생들인데 왜 그리 집착과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 호텔 근처의 일본식 납골묘, 저 속에 들어가 있는 한 줌 뼛가루처럼 다시 흙으로 되돌아갈 인생들인데 왜 이리 집착과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 김정은

쿠마모토 라면과 가키고오리로 정체 모를 공복감을 달래다

집착과 허상이라…. 괜히 감상에 빠져 이리저리 밤거리를 싸돌아다니다 보니 저녁을 먹었는데도 왠지 허전하고 헛헛한 공복감이 밀려온다. 분명 시장기라고는 볼 수 없는 정체 모를 이 느낌을 간단히 달래보고자 따스한 온천물에 몸을 담갔지만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온천욕을 끝낸 후 공복감을 달래고자 야참을 먹으러 이곳의 특산물이라는 쿠마모토 라면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이 움푹한 종이컵에 우리의 빙수기계로 간 얼음을 꾹꾹 담고 예전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싸구려 빙수에서 애용했던 빨간 시럽을 듬뿍 뿌린 후 주문한 일본인에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아! 이게 바로 일본식 빙수라는 가키고오리(かきごおり)였다. 예전 어렸을 적 학교 앞의 싸구려빙수를 먹으면 혀가 빨개졌는데 지금 저걸 먹어도 그 때 만큼 빨개지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맛은 어떨까?"하는 호기심에 300엔을 주고 일본산 빙수 가키고오리를 주문해서 라면과 함께 먹게 되었다.

쿠마모토 라면은 돼지뼈를 푹 곤 육수에 그네들의 된장인 미소를 풀고 돼지고기 편육을 꾸미로 얹어놓은 생라면인데 맨 처음 냄새를 맡을 때 돼지의 누린내가 코를 찔러 비위가 상했지만 그냥 꾹 참고 먹어보니 의외로 구수한 맛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아무 맛도 없이 담백하고 시원하기만 한 가키고오리를 먹고 난 후 빨갛게 물든 우스운 혀를 거울에 비쳐보며 잠시잠깐 어렸을 적 가물가물한 추억의 동심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렸을 적 학교 앞에서 팔던 색색가지 알록달록한 하드나 빙수를 먹고 난 후에는 식용색소 탓인지 정말 지금처럼 혀가 새빨개지곤 했다. 어른들은 늘상 그런 것들은 배탈을 나게 하는 불량식품이라며 먹지 말라고 노래를 불렀고 금단의 열매가 맛있다는 듯 우리는 더더욱 그러한 불량식품에 빠져들어 그 절묘한 맛(?)에 감탄하곤 했는데….

한국이 아닌 낯선 일본에서 내 어렸을 적 희미한 기억의 조각을 떠올리게 되는 이 당황스러움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분명 다르지만 어딘가는 매우 비슷한 이 나라, 그 비슷함이 친근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이 묘한 느낌은 아마 아직 청산되지 못한 불편한 역사의 응어리로 인한 피해의식 때문일까?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이 두 가지 느낌이 얽히고설킨 채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은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밤 정리되지 못했던 일본에 대한 두 가지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마 아무리 일본에서 예전 혐오식품이었던 김치가 유행하고 한국드라마가 유행하여 겉으로 한일 관계가 더 가까워진다 해도 양국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불편한 응어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가 현재 일본에 대해 지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은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진 친일파 미청산 문제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 우리 생활 구석구석 남아있는 식민 잔재들의 청산이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숙제들은 정치적 성격이 짙은 1회성 이벤트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꾸준한 청산의지와 노력을 더욱 더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노력이 이뤄지는 날 일본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또한 깨끗이 치유되지 않을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