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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당당함이 아름다운 서출지 전경
연꽃의 당당함이 아름다운 서출지 전경 ⓒ 권미강
8월의 뙤약볕은 잔인하리만큼 강렬했다. 모든 생물들은 태양의 직사광선에 무방비로 노출돼 속절 없이 자신을 맡겨 버렸다. 올 여름은 10년만의 더위라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으며 연일 맹위를 떨쳤다.

연꽃에서는 따가운 햇살마저 녹이는 그윽한 향기가 흘렀다.
연꽃에서는 따가운 햇살마저 녹이는 그윽한 향기가 흘렀다. ⓒ 권미강
그 더위를 비집고 찾은 경주 사적 제138호 서출지. 오직 연꽃을 보기 위한 일념으로 점심도 거르고 간 서출지는 비오듯 흐르는 땀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그 황홀함은 더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누군가 살아가면서 '정말 좋다, 너무 이쁘다, 최고로 멋지다' 등 극한 감동은 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지만 이날 서출지의 풍광은 어떤 극한의 표현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됐다.

고추잠자리도 연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는지 서출지에 안착했다.
고추잠자리도 연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는지 서출지에 안착했다. ⓒ 권미강
연한 분홍빛에 다소곳하면서도 당당하게 얼굴을 내민 연꽃과 그 색상만으로도 싱그러운 초록 연잎,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는 따가운 햇살을 주눅들게 했다. 아니 주눅든 것이 아니라 고요함이 깃든 아름다움에 압도됐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제 나름대로 서출지의 아름다움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흰 꽃
제 나름대로 서출지의 아름다움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흰 꽃 ⓒ 권미강
그래서인지 진흙 속에서도 그 향기와 자태를 잃지 않고,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운다는 청정함의 상징이며 극락 세계를 비유하는 꽃이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서출지는 흔히 백일홍나무로 잘못 알고 있는 배롱나무가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데 연꽃과 어울러진 전경이 압권이다.

수백년 되었다는 배롱나무가 이요당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
수백년 되었다는 배롱나무가 이요당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 ⓒ 권미강
여기에 1664년 임적이 서출지 연못가에 석축을 쌓고 건립했다는 이요당(二樂堂)까지 곁들여져 있어 연꽃나라 신선이 흰 모시옷을 날리며 읊는 시가 들리는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정면 4칸, 측면 2칸인 팔작집의 ㄱ자형 정자 건물인 이요당. 그 아늑한 분위기에 빠져 들고 싶지만 풍천 임씨 종부댁의 개인 소유라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한다.

서출지는 경주 남산 아래 철와골 앞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연못이다. 원래는 양기못(壤避池)이라 불리는 연못으로 인위적으로 꾸며진 못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겨난 못이라고 한다. 이 못이 서출지로 불려지게 된 연유는 신라 소지왕 때부터인데 여기에는 사금갑(射琴匣)의 전설이 깃들여 있다(아래 글은 인터넷에서 퍼온 것으로 출처가 정확하지 않아 따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사금갑조에 의하면, 신라 21대 임금인 소지왕이 즉위 10년 즈음에 신하들과 함께 천천정(天泉井)에 행차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어대며 사람처럼 말을 했다. 이상히 여긴 임금은 장사 한 사람을 시켜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장사가 동쪽 기슭에 있는 양피촌에 이르렀을 때였다. 돼지 두 마리가 씩씩거리며 싸움을 하는 데 자못 볼 만하였다. 장사는 돼지 싸움에 정신이 팔려 한참 구경을 하다가 그만 까마귀의 간 곳을 잃어 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때 한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글을 올리니 겉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를 뜯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편지를 받아본 소지왕은 "두 사람이 죽을 바에는 뜯어보지 않고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낫겠구나"하고 그대로 없애려 했다. 그때 점치는 관리가 옆에 있다가 아뢰었다. "두 사람이란 보통 서민을 가리키는 것이요, 한 사람이란 임금님을 말함이니 뜯어 보심이 좋을 줄 압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럴 듯하다 싶어 편지를 뜯어보기로 하였다. 편지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거문고를 담아둔 거물고 집을 쏘아라'라는 한 마디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대궐로 돌아온 왕은 즉시 거문고 집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런데 화살이 꽂힌 거문고 집 안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열어 보니 내전의 불공을 맡고 있는 중이 그 속에서 왕비와 몰래 간통을 하고 있었다. 둘을 그 자리에서 당장 처형해 버렸다.

수줍게 고개를 내민 연꽃 한송이
수줍게 고개를 내민 연꽃 한송이 ⓒ 권미강
이때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정월 첫째 돼지날(亥日)과 첫째 쥐날(子日), 그리고 첫째 말날(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며 함부로 출입을 하지 않는 풍속이 생겼다. 또 정월 보름날을 까마귀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을 지어 제사지내는 일도 여기서 나왔다. 이런 풍속들을 방언으로 '달도'라 하는데. 이는 곧 구슬프고 근심이 되어 모든 일을 조심하고 금한다는 뜻이다. 또 편지가 나온 못은 서출지(書出池)라고 이름지었다."


이제 막 세상에 꽃을 피우려는 봉오리 연꽃과 꽃잎을 떨구고 새 인생을 시작하는 연밥. 그 자체로 윤회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이제 막 세상에 꽃을 피우려는 봉오리 연꽃과 꽃잎을 떨구고 새 인생을 시작하는 연밥. 그 자체로 윤회를 보여 주는 것 같다 ⓒ 권미강
전설 속에는 서출지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임금에게 편지를 전해준 노인은 어쩌면 신선이나 남산의 산신령일 수도 있으니 결코 예사롭지 않은 연못임을 알 수 있다.

서로 겹쳐지니 마치 촛불을 켠 듯하다. 마음이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처럼...
서로 겹쳐지니 마치 촛불을 켠 듯하다. 마음이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처럼... ⓒ 권미강
서출지의 연꽃은 입추 전후가 가장 아름다우며 특히 아침의 연꽃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했다. 서출지의 연꽃에 반해 하루에 세 번씩 꼭 서출지를 찾는다는 한 마을 주민이 가르쳐준 대로 조만간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서출지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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