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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 들에서 만난 김규환 작가
ⓒ 이민학
10, 20대 네티즌에게 ‘귀여니’가 있다면 40, 50대에게는 ‘김규환’이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글이 <여행스케치>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팬들이 나이가 지긋해(?) 수다스럽지 않아서 그렇지 열혈지지자들이 알게 모르게 두텁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때로는 기억 저편 까마득한 옛 모습에 뭉클한 가슴을 부여안고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40,50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웃겼다 하는 그는 놀랍게도 아직 30대이다.

"화순 백아산 골짜기에서 자랐지요. 워낙 시대에 뒤진 깡촌이라 보통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40대 후반에서 50대 분들과 연대가 엇비슷하게 맞을 겁니다.”

고향 이야기를 하다 의기투합해서 60대와도 ‘친구’가 된 일이 있단다.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생생한 추억이 귀중한 재산인 셈. 거기에 사투리가 풍성하게 섞인 구수한 입담도 한몫 거든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실명으로 현존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제발 그 이야기만은 쓰지 마라’는 압력도 만만치 않다. 이를테면 난생 처음 중국집에 가서 간자장을 시키고는 면발 따로 먹고 소스는 후루룩 마셨다든가,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 백열등 아래 펼쳐들고는 잘 안 찍혔다고 머리 갸웃거리던 일 등등. 그 시절 ‘촌놈’들의 이야기이기에 지금 자녀들이라도 보면 낯 뜨거운 일도 한둘이 아니다. 때문에 당사자들은 필사적인 로비를 펼치지만 그는 태연하게 한마디로 자른다.

“뭐, 어때서? 그때 다 그랬잖아?”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농사 일손 거들기에서부터 동네 어귀에서 벌였던 여러 가지 놀이들,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인정, 그 시절 먹거리 등등. 심지어 곤충과 시골 담벼락의 하늘 수박에 대한 추억까지 생각나는 것 하나 하나가 다 소재가 된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의외로 인기가 있어요. 시원한 오이냉국이나 어죽 끓이기 등을 올리면 조회 수가 금방 올라요. 어린 시절의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하는 거죠.”

그의 글은 밝고 유쾌해서 좋다. 농촌을 다룬 글들이 암울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무겁고 비감한 데 비교된다. 좋은 글 좋은 이야기이지만 늘 ‘자연으로 돌아가야 산다’는 식의 ‘각성제’는 솔직히 따분하다. 그래서 싱싱하면서도 가뿐한 그의 글이 더욱 읽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읽다보면 절로 얼굴에 미소가 감돌고 자연스레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만 2년째이다. 선기 기획 일을 하다 그만 두고 집에 들어앉았는데 한시도 쉬지 못하는 성격이 인터넷의 바다로 그를 이끌었단다. 현재 그는 인터넷 카페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자이자 인터넷 작가인 셈.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냥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로 통한다.

소위 운동권에 속했던 그는 대학을 다닐 때부터 생활도서관을 운영했는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만두었단다. 이후 연고도 없는 유명산 자락으로 들어가 민박집을 운영하기를 몇 년, 문득 ‘이러다 장가 못가겠다’ 싶어 도회로 나오기를 결심하고 이삿짐을 꾸리던 날 운명의 여인이 나타났다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학 후배와 친구가 찾아 왔는데 ‘이 여자다’ 싶었나봐요. 저녁내 같이 술을 마시다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지요."

결혼하면서 시작된 서울 생활은, 그러나 별 재미가 없었다. 이런 저런 일이 양에 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마음은 항상 고향에 내려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꿈이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는 일이다.

결코 작은 꿈이 아니다. 일이 커지면 사람들이 모이고 그렇게 되면 인적 끊어진 옛 고향이 다시 북적일 것이라는, 도시화라는 대세에 도전하는 어마어마한 꿈이다. 물론 예전 그대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일. 나름대로 구상해둔 사업이 무공해 유기농 산채와 식량을 생산해서 인터넷을 통해 파는 일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몇 년 만 더 도회지에 머무르자고 해서 있는 중이죠. 훌쩍 홀로 올라왔지만 귀농도 이것저것 정리할 게 많아 만만치 않네요. 아마 내년쯤에는 내려 갈 것 같습니다.”

역시 ‘깡촌’에서 자란 아내도 흔쾌히 동의를 해서 귀향 날짜만 손꼽고 있는 중이다. 그가 내려가면 놀러가기로 약속을 했다.

잃어 버린 고향 풍경 1 - 김규환의 추억여행

김규환 지음, 하이미디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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