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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선 향기 나는 연필을 팔았다. 불량식품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 연필을 사서 뭔가 중요한 것들을 적을 때에만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연필의 춤에 맞춰 하얀 종이에 위에 또박또박 적혀지던 글씨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메일이 대중화되면서 손목을 놀려 글씨를 쓰는 즐거움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연필로, 펜으로 글씨를 써보면 키보드를 누르면서 글을 쓰는 것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래도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나가면서 문장에 정성을 들이게 되고, 수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주의를 기울여 글을 쓰게 된다.

그러면 어릴 적 향기 나는 연필로 쓴 문장처럼 컴퓨터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거기에 배어나기 마련이다. 편지에는 그렇게 마음을 담아 보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론인인 리영희 선생의 일화가 생각난다. 리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몸이 불편해지자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선생을 위해 전동칫솔을 선물해드렸다. 하지만, 비록 몸의 절반이 마비된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리 선생은 선물 받은 전동칫솔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손목을 돌려 이를 닦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정말 몸이 불편해져서 양치질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하얀 거품을 입안 가득 머금고 칫솔을 돌리면서 이를 닦는 감촉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전동칫솔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절대 이런 종류의 작은 기쁨은 선사할 수 없다는 것을 선생은 알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메일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거기에 진심을 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처럼.

ⓒ 김태우

다가오는 이 가을엔 편지를 한 통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21세기의 현대사회에서 순수한 아날로그식으로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내면 어떨까.

편지지에 또박또박 마음을 옮겨 적고, 우표를 붙이고, 빨간 우체통에 넣어 답장을 기다리던 옛날의 기다림을 한번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은 ‘빨리 빨리’를 외치지만 오히려 거꾸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군대에 있던 시절, 편지는 세상과 나를 잇는 유일한 끈이었다. 훈련을 나갈 때면 소중한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를 군복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도착하지 않은 답장을 기다리면서 두 번째 편지를 보내던 사춘기 시절의 풋사랑도 떠오르고, 유럽배낭여행을 하면서 평소에는 감히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적은 엽서를 보냈던 기억도 있다.

이메일과는 달리 편지를 보낼 때면 마음이 늘 겸허해진다. 진심을 담아 보냈던 그 편지를 이 가을에도 한 통 보내야겠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 있음을 감사하면서 또 다시 바뀌는 계절의 시간 속에서도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비는 마음을 담아 가을을 마중 나가야겠다. 그래서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편지가 주는 기쁨을 그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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