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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일
사례1 : 2001년 2월부터 00기금의 한 지점에서 부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이모씨는 회사의 직급별로 다른 나이 기준에 의한 강제 명예퇴직을 거부하자 2002년 1월 준 정년퇴직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그는 연고도 없는 원격지인 충청지역본부로 대기발령을 받고 급여가 약 54% 삭감되는 등의 불이익을 당했다.

이에 나이를 이유로 한 명예퇴직 거부에 따른 대기발령은 부당하다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에 제기하였다. 국가인권위는 회사측과 진정인의 합의조정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결렬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합의조정이 성사되어 진정인이 원상회복되는 등 구제가 이뤄졌다.

사례 2 : 2003년 11월 00대학교 학생 32명이 00대학교 학칙에 ‘학생은 학·내외를 막론하고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학생의 정치활동을 가로막고 있으며, 학생회 간부의 자격기준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6학기 이내 등록을 필한 자’ 등으로 규정되어 있는 내용이 전과 등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라며 진정을 제기했다. 국가인권위는 이 사건이 특정한 사람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등 헌법의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 합의조정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진정인과 학교측이 학칙 개정에 합의하게 되었다.


조정위나 조사관들이 합의 조정 시도

국가인권위 출범 정신 가운데 한 가지는 인권 침해나 차별 행위를 당한 피해자들을 값싸고 신속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구제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조정에 관한 규정으로 명시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진정인의 신청 또는 국가인권위의 직권에 의해 ‘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 이때 조정은 인권문제 전문가 등 3인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가 맡는다. 그러나 조정위원회 단계 이전에 조사관이 진정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간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처럼 소송 등 기존의 전통적 방법 외에 조정이나 중재 등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대안적분쟁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제도는 몇몇 국가기관에서 행하고 있는 권리구제 방법의 하나다. 이혼사건의 경우 법원에서 조정전치주의를 통해 판결 전 조정 과정을 거치는 것이 그 한 예다.

국가인권위의 조정 제도는 법원을 통해 법률적 판단을 받을 경우 드는 소송 비용 등이 절약되고, 사건을 처리하는 시간 역시 재판보다 빠르며, 국가인권위의 권고 결정을 위한 절차가 생략되기에 신속한 사건 해결에 한몫한다. 또한 당사자간 합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쌍방간의 감정적 대립을 최소화해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따라서 권고 등을 통한 해결 외에 조사관의 조정 노력이나 조정위원회의 역할을 통해 신속하고 평화적으로 진정사건을 해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가인권위가 조정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통해 진정사건을 해결한 첫 사례는 지난 2001년 8월에 발생한 교수 임용 과정에서 생긴 장애인 차별 사건이었다. 당시 진정인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A대학이 교수 채용 과정에서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 대상자로 선정된 이모씨가 만성신부전증 환자여서, 직무수행에 지장이 있다며 탈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장애를 이유로 임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피해자를 대신하여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국가인권위는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선 대학측과 피해자 간에 합의할 의사가 있는지를 타진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며 합의안을 마련했다. 합의서에서 대학측은 피해자를 교수로 채용하고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차별 및 검·경·구금시설 인권 침해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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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위원회에서 처리한 두 번째 사건 역시 장애인 차별건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와 관련하여 장애인이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관련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즉, 시험장에 장애인용 화장실과 책상을 마련할 것, 수험생 입회 아래 이기요원(장애인의 경우 OMR 카드 작성에 시간이 더 걸리므로 장애인이 적은 답을 OMR 카드에 옮겨 적는 일을 돕는 사람)이 답안을 작성하게 할 것, 연습장 지급 및 고사장에 의사를 배치할 것 등이었다.

이 사건 역시 국가인권위가 세 차례의 조정위원회를 통해 편의 조처를 마련하도록 해당 교육청 등을 설득한 결과 합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장애인용 책상을 마련하고, 고사장 건물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된 장소에서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며, 이기요원이 장애인 입회 아래 답안을 이기하도록 하는 등의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건의 경우 조정위원회를 거쳐 조정 과정에 들어가지만, 때로는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들이 합의 조정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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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3월엔 한 대기업 공장에서 여성사원을 모집하면서 기혼여성을 배제하려다가 다시 채용한 경우도 있다. 당시 기혼여성인 송모씨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한 공장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았으나 탈락하였다. ‘기혼여성은 미혼여성들과 융화되기 어려워 뽑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면접시 심사위원으로부터 이같은 말을 들은 송씨는 부당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했다.

국가인권위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기업에 기혼여성 사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사자들의 합의조정도 시도하였다. 그 결과 피해자는 다시 면접을 통해 ‘기혼여사원 1호’로 입사하게 됐다. 이처럼 고용차별사건에서 합의조정이 성사될 경우 피진정인의 입장에서는 차별행위를 했다는 인권위의 공식적인 결정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고, 진정인의 입장에서는 좀 더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권리회복을 할 수 있게 된다.

상대에 대한 관용 부족이 합의 조정의 걸림돌

또 다른 조정 사례로는 기간제 교사 모집시 나이 차별에 관한 사건이 있다. 진정인 김씨는 2003년에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3학년도 기간제 교사 모집에서 ‘만 35세 이하’로 나이 제한을 두는 바람에 재임용에 탈락했다. 이에 김씨는 ‘채용 연령 제한을 두어 응시 기회를 상실한 결과 평등권을 침해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하였다.

국가인권위는 조사 중 피진정인을 설득해 향후 기간제 교사 모집에 나이 제한을 철폐하도록 했다. 또한 양 당사자가 1년 재계약에 합의함으로써 김씨는 기간제 교사로 다시 채용되었다. 이 사건처럼 합의조정이 성공할 경우 진정인의 권리구제도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피진정인의 또 다른 차별행위를 예방할 수 있어 재발 방지 효과도 크다.

이러한 합의조정은 차별행위에 관한 진정사건 이외에도 검찰·경찰을 상대로 한 인권 침해 사건의 경우에도 이뤄지고 있다. 2004년 2월, 운전자간의 경미한 시비 끝에 진정인 김씨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김씨는 담당경찰관으로부터 ‘쌍방 모두 잘못이 있어 벌금을 내야 하며, 사건 접수를 하면 당신이 전과자가 될 수 있다.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질 수 있다. 나중에 자식을 낳아 그 자식이 안기부 같은 데 들어가려 해도 문제가 된다’는 식의 말을 듣고 심한 불쾌감과 모욕감을 느꼈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조사 과정에서 담당 경찰관이 위와 같은 발언을 했음을 확인하고 당사자간 합의조정을 시도했다. 당시 조사관은 “심각한 신체적 피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정인이 느낀 감정적 손상을 회복시켜 줄 필요가 있어 권고보다는 당사자간에 합의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조정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담당경찰관이 진정인에게 진심 어린 사과 편지를 썼고, 진정인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해결되었다. 이처럼 합의조정이 갖는 장점의 하나는 양 당사자가 합의조정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에 대한 불신과 갈등 관계가 개선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조정을 통한 문제 해결은 국가인권위가 형사소송의 경우처럼 피진정인들을 대상으로 형사적 처벌을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인권 보호 및 권리구제를 더욱 중요한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안이 경미하고, 고의성이 없으면 재발 방지 및 사과 등을 통한 인간적인 갈등 해소,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보상 조치 등 신속한 권리구제를 하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법 취지에 더욱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합의조정 업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진정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합의조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양 당사자가 끝까지 서로 주장과 입장을 관철하고자 하였고, 특히 지자체에서는 한번 정한 행정방침인데 바꾸어야 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결국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

당시 담당조사관은 “진정인과 지자체 실무자 등 당사자가 출석한 합의 조정회의에서는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져 합의점을 찾을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의사결정권을 가진 기관장이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조정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을 상대로 한 진정사건의 합의 조정을 하려다 실패한 또 다른 진정사건 역시 양 당사자들의 상대에 대한 불신이 걸림돌이 되었다고 말했다. “갈등 당사자가 조금씩 양보해 중간지점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관용하기보다는 시시비비를 다투는 문화, 한번 싸우면 끝장을 보려는 문화가 합의조정을 성사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사과 편지를 쓰는 것으로 합의조정을 마쳤던 경찰관의 인권 침해 사건과 유사한 또 다른 진정사건에서는 피진정인이 진정인에게 사과를 했으나 진정인은 피진정인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아 합의조정이 무산된 경우도 있다.

사회 문화, 제도 개선 뒷받침 필요

ⓒ 이우일
따라서 ‘값싸고 신속하고 평화적인 구제’를 위한 조정이 좀더 활성화되려면 상호 신뢰에 근거한 협상문화, 제도적 뒷받침 등이 뒤따라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합리적인 협상문화보다는 권위적인 결정에 의존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합의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객관적·사회적 기준(인권 침해나 차별행위의 기준)이 올바로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차별행위의 사회적 기준 및 판례 등을 축적하고 있는 미국의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와 호주 및 뉴질랜드 인권위원회는 진정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기 전에 비공식적 중재 과정을 거치도록 하거나, 아예 조사보다는 조정을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업무를 전환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아직 차별 행위에 대한 사회적 기준 설정이 미흡한 데다 관련 판례도 많지 않은 터라 서구 사회에서처럼 합의 조정을 활성화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준비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한편, 조정 과정에 임하는 담당자의 태도 또한 합의조정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정담당자가 당사자들이 겉으로 주장하는 명분보다는 실제로 원하는 것(실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서로 만족할 만한(WIN-WIN) 합의안을 창출하되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또한 조정담당자는 합의조정의 특징인 중립성과 비공개성을 지켜야 한다. 조정 과정에서 담당자가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해야만 양 당사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합의조정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실과 정보 등에 대하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미국의 대안적분쟁해결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행정분쟁해결법에서는 ‘당사자가 공개에 동의’하거나 ‘교육이나 연구 목적’으로 필요한 때 등 어떤 경우에 공개할 수 있는지를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 역시 합의조정 결과를 공개하는 경우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이 필요하다. 또한 합의조정을 하지 말아야 할 경우에 대한 원칙을 설정해 둘 필요가 있다. 사건의 특성상 인권 침해나 차별행위의 기준과 원칙을 정립하기에 적절한 사건은 합의조정을 통한 해결보다는 국가인권위의 공식적 판단과 결정을 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미국의 행정분쟁해결법에서는 ‘선례적 가치를 위해 결정적이고 권위 있는 해결이 요구될 때’는 중재나 조정 등의 방법을 활용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에 대한 원칙이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조정을 통한 분쟁 해결의 효과를 더욱 높이려면 이에 대한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조정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학에 관련 학과가 개설되어 있어 전문조정가를 배출하고 있으며, 정부기관과 연계하여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아직 도입 단계이므로 교육기관 등에 조정전문가 교육훈련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EEOC처럼 조사관과 조정가를 분리하여 전문화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조정 관련 전문성 확보를 위한 교육훈련이 절실한 실정이다.

도표

학계에서 논의되는 일반적인 조정을 통해 합의를 이루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국가인권위가 진행하는 조정절차가 반드시 아래와 같은 흐름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합의조정 진행 절차에 관한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해 보았다.

제1단계 : 조정 시작하기
① 양 당사자들의 합의조정과정 참여의사 확인
② 인권위 처리 과정 및 합의조정 과정에 대한 설명
③ 친근한 분위기 조성하기
④ 조정 진행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약속) 설명
⑤ 질의 및 응답

제2단계 : 갈등(진정사실)의 원인 찾기
①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 진정의 목적 확인
② 양 당사자의 상이한 의견 정리
③ 진정 원인에 대한 재분석
④ 합의조정 우선순위 찾기

제3단계 : 당사자가 실제로 원하는 것 찾기
① 겉으로 주장하는 것(position. 명분)과 실제로 원하는 것(interest. 실리) 구분
② 명분이 아닌 실리 찾기

제4단계 : 합의안 도출을 위한 토론
① 진정 원인에 대한 합의안 탐색
② 합의안 평가
③ 합의안 선택
④ 합의안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 확인

제5단계 : 합의종결
① 합의서 작성
② 합의서에 대한 재점검 및 확인
③ 합의서에 진정인, 피진정인 및 조사담당자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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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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