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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뒤집어쓰는 낙농인 지난 8월 16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전국 낙농인 총궐기대회'에서 한 낙농인이 우유값 인상 등을 요구하며 우유를 뒤집어쓰고 있다.
ⓒ 연합뉴스 최영수
우유값의 인상, 정확히 표현하자면 원유(原乳) 가격의 인상이 낙농가의 생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과 농림부는 지난 13일 낙농가의 경영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원유가격 인상이 결정되도록 정부가 적극 중재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13일 밤 우유를 제조·판매하는 유업체와 낙농진흥회, 진흥회 소속 낙농가들은 원유가를 13% 올리기로 합의했다.

원유가 인상안이 타결됨으로써 원유를 생산하는 낙농가들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동안 원유생산업자(낙농가)들은 사료값 인상 등으로 경영압박을 받아왔지만, 우유제조업체와 원유생산업체간의 견해차로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해왔다. 이날 13% 인상안에 양쪽이 합의함으로써 극단적인 상황은 모면하게 된 것이다.

유업체들은 이날 원유가 인상안을 제품값에 반영해 추석 전후에 출고되는 물량부터 우유값을 10∼15% 올리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기준원유량으로 생산량 통제...
낙농가 "더 짜낼 수 있는데 왜…"


하지만 원유가격 인상만으로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낙농가의 생존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원유생산자단체인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적한다. 우유 소비량의 감소와 분유 수입량의 증가라는 시장상황의 변화가 낙농가들을 파산지경으로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시장여건을 근거로 정부가 낙농진흥회를 통해 '기준원유량'이라는 이름으로 원유생산량을 사실상 통제함으로써, 낙농가들은 생산능력 만큼의 원유를 짜내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생산력 이하의 생산'으로 설비확충에 들였던 투자비용(시설투자와 젖소 사육두수 증대)이 고스란히 낙농가들에게 부채의 형태로 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낙농가 입장에서는 생산능력 만큼 원유를 짜내 내다팔아야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데, 생산량 자체를 2002년부터 제한함으로써 낙농가들이 이도저도 못하는 사면초가의 지경에 빠지게 된 셈이다.

낙농가들은 파산직전에 내몰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기준원유량을 통제 이전 수준으로 원상회복시켜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농림부와 낙농진흥회는 지난 2002년 우유생산량 과잉을 이유로 잉여원유차등가격제를 실시하면서, 농가들이 정상유대를 받을 수 있는 물량, 즉 기준원유량을 설정했다.

기준원유량이란

낙농가의 원유생산량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농림부가 2002년 11월에 도입, 설정한 제도. 일종의 쿼터제도. 기준원유량에 대해서는 정상가격을 적용하지만, 기준원유량을 일정 비율 초과해 생산한 원유에 대해서는 정상가격보다 싼 가격을 적용하는 제도.
당시 정부와 낙농진흥회는 평균생산량에서 20.58%를 삭감한 양을 기준원유량으로 설정해 정상가격으로 매입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정상가격의 70% 수준 또는 분유의 형태로 낙농가들로부터 납유를 받아왔다.

한국낙농육우협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 시책에 따라 부채를 안고 시설투자를 하게 됐는데, 실제로 본인이 투자해서 짤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낮게 하라는 것 아니냐"며 "당시 감축했던 20.58% 만큼 기준원유량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기준원유량 인상되면 정부 재정부담 증가

하지만 농림부는 이러한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기준원유량을 높일 경우 낙농진흥회로 집유되는 원유량이 남아돌게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가공·판매능력이 없는 낙농진흥회를 통한 집유체계를 유지하면서 기준원유량만 늘릴 경우 낙농진흥회의 원유 잉여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수급불안이 가중되고, 잉여량을 처리하는데 정부의 재정부담 증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적극적인 소비촉진 홍보활동으로 우유소비량이 늘어나면서 서울우유 등 일반유업체의 판매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 유업체들이 자체 낙농가의 원유을 공급받는 경우가 많아 낙농진흥회가 보유한 잉여원유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있다고 한다.

농림부는 이러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업체와 낙농가가 직접거래하는 방식에 동참할 경우 기준원유량을 올려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열린우리당과의 협의도 마친 상태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말부터 희망하는 지역과 유업체부터 직거래체제로 전환하고, 서울우유 거창공장(500톤/일), 남양우유 나주공장(200톤/일) 등이 준공되는 2006년 말까지 직거래체제 전환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각 주체간 이해관계 조정을 위하여 낙농진흥회이사회에서 기준원유량 상향조정문제와 직거래체제 전환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낙농가들은 이러한 정부·여당의 대책에 대해 "정부 정책 실패를 낙농가에 떠넘기는 결정"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반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직거래체제 전환에 대해서 발표만 했지 세부 추진방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직결체제 전환에 대해서는 농가 보호장치 마련 등 선행대책이 마련, 제시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농림부가 직결체제 전환동시에 시장원리에 맡기려하는 우려가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풀이하면 이렇다. 유업체와 낙농가(낙농진흥회 소속 2856개 농가)가 직접 거래를 하게될 경우 낙농가는 유업체와 종속적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어 교섭력이 매우 약화된다. 낙농진흥회를 만든 것은 이러한 불합리한 종속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지금 와서 이러한 관계를 복원시켜려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

유업체와 직거래는 사실상의 '하청'... 낙농가 보호대책 내놔야

폐업 또는 도산 유업체 내역
조합

조합

폐쇄일

물량

조합

폐쇄일

물량

청주우유

00. 2월

46톤

모닝벨

01. 2월

35톤

건국우유

01. 8월

22톤

광전우유

01. 9월

30톤

경남낙협

01. 12월

65톤

목우촌

02. 2월

126톤

대전우유

02. 11월

48톤

경북낙협

02. 10월

21톤

대구우유

02. 10월

60톤

해태유업

01. 8월

35톤

ⓒ 이성규
특히 낙농가 보호책을 전제로 이러한 방안을 내놓았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전무한 상태에서 직결체제를 강요하는 것은 낙농산업을 시장원리에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라는 게 낙농가들의 주장이다.

낙농육우협회의 한 관계자는 "어느 선진국도 우리처럼 낙농산업을 완전히 시장에 내맡기는 경우는 없다"며 "정부가 장기적 안목과 대안을 가지고 낙농정책에 임해야 하는데 그러한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이 관계자는 "경기도나 충청도는 유업체가 있어 직결 전환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전남 같은 곳은 유제품 가공공장마저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하면서 "이쪽 낙농가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개방의 파고 앞에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낙농가와 우유소비부진에 따른 잉여원유로 골치를 앓고 있는 정부. 낙농가와 정부가 '윈-윈'이 가능한 대안이 찾아질지 주목된다.

우유 대북지원과 중고등학교 의무급식제 도입이 해법
낙농가 수급불균형 해소 위한 대안 제시

낙농가들도 원유생산량에 비해 현재의 우유 소비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일정 정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의 인식과 괴리는 크지 않다. 하지만 낙농가는 정부가 조금더 적극적으로 소비촉진 활동에 나서면 얼마든지 상황은 뒤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선 학교나 군 급식량을 약간 더 늘린다면 수급불균형 문제가 쉽게 해소될 수 있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낙농가 쪽의 설명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중·고등학교까지 우유를 의무급식토록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발육부진이나 골다공증 등 향후 의료비로 지출될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적은 돈을 들여서 사회적 비용 감소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며 중·고등학교 우유 의무급식제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통일비용의 절약을 위해 우유 대북지원에 적극 나섬으로써, 잉여물량을 해소할 수도 있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아 불만이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식량난으로 극심한 발육부진 상태를 보이고 있는 북한 아이들에게 우리 우유를 공급함으로써 통일 이후 필요한 비용을 그만큼 아낄 수 있다"면서 거국적 차원에서 국내 생산 우유를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농림부도 이러한 대책에 공감하고 있다. 농림부는 오는 2005년부터 우유 의무급식제를 중학생까지 시범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2004년 현재 우유 의무급식제의 혜택을 받고 있는 대상은 초등학생 21만명 수준이다.

이와 함께 공익광고, 대중교통을 통한 우유홍보, 우유테마콘서트, 전국순회 요리강습회 등과 같은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해 우유 소비를 촉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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