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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의 여신 가믄장 아기가 제주도 아닌, 대학로에서 또 한 번 살아났다. 지난 해 10월부터 <가믄장 아기>를 공연해온 극단 '북새통'이 이번에는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열리는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가믄장 아기>(작가 고순덕·연출 남인우)는 제주의 여신인 가믄장 아기의 일대기를 다룬 굿 <삼공본풀이>를 토대로 하고 있다. 가믄장 아기는 "이 뱃또롱 아래 자궁 덕, 하늘님 자궁 덕"에 살고 있다고 말해 아비의 노여움을 산다. 그는 집에서 쫓겨나 수많은 고난을 겪지만 자궁의 생명력으로 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가믄장 아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 북새통
이 작품은 2004년 서울 어린이 연극상에서 우수작품상과 극본상, 연기상을 수상하고 서울 아동청소년 공연예술축제 초청작으로 선정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관객들의 호응도 흡족한 수준이었다. 관객들은 고통스러워하는 가믄장 아기를 응원하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가믄장 아기는 2004년 또 한 번 자궁에 생명력을 채워 넣고 있는 셈이다.

14일 첫 회 공연을 마친 후 가믄장 아기에게 끊임없이 숨을 불어넣는 주인공들, 연출자 남인우, 배우 주혜원, 우기홍, 허시라, 김소리 등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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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예술인의 네트워크 필요"

▲ "내 마음가짐도 가믄장 아기처럼" 가믄장 아기 역의 주혜원씨
ⓒ 북새통
- 어떻게 가믄장 아기를 소재로 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남인우(연출): "이 연극은 고순덕 작가의 대학원 졸업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남 연출과 고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아동청소년극을 전공했다). 여자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여자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동화 속 여자는 백설공주 아니면 신데렐라다. 새로운 여성상을 찾던 중 제주도가 고향인 고 작가가 가믄장 아기를 제안했다."

-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남인우: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한 작품의 연출자들끼리 원래 친한 동료였다. 우연찮게도 각자 계획한 작품들이 여성이라는 주제와 가까웠다. 모으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공연 발표할 공간 마련 수준이었지만 논의가 진행되면서 여성 예술인들을 모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 예술인들의 자리는 좁아진다. 여성 예술인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 악사 1 역으로 연기상을 수상한 김소리씨.
ⓒ 북새통
- 그러한 현실에 비해 여성 예술인들이 겪는 불합리와 제약에 대해서는 그리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남인우: "물론 예술 하는 남자도 힘들다. 그래도 남자들은 확실히 네트워크가 긴밀하더라. 남자들은 끌어주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무대 위에서 남자들은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과 텍스트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캐릭터는 매우 제한적이다. 전형적인 역할만 하다가 결국에는 그 틀에 맞추어지고 만다. 연기를 오래한 한 선배도 허무하다고 하더라. 여전히 여자는 예뻐야 된다, 그게 현실이다.

연출자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30대 연출로 입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연출도 잘 못 맡는다. 결국은 학원을 전전하다 시집가버리는 게 많은 여성 연출자들의 현실이다."

주혜원(가믄장 아기):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은 딱히 없었다. 다만 내가 어리고 부족하니까 어려운 거고. 하지만 여성 캐릭터가 협소하다는 것엔 동의한다. 남성이 그리는 여성은 협소할 수밖에 없다. 여성의 세밀한 부분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가믄장 아기, 사실은 모든 남성의 이상형"

- 제주도 말투와 음악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을 듯한데.
남인우: "고 작가가 처음 제주말로 대본을 써놓으니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작가에게도 배우고 할머니들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었다. 배우들이 많이 고생했다."

▲ "가믄장 아기는 사실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일 것" 마퉁이 역의 우기홍씨
ⓒ 북새통
- 가믄장 아기는 굉장히 당당하고 주체적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보기 드문 여성상인데 극 중 남편으로서 마퉁이가 가믄장 아기를 보는 느낌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기홍(막내 마퉁이): "기댈 수 있는 여자라서 좋다. 남자들이 창피해서 말하지 않지만 사실 어떤 남자들이나 그리는 이상형 중 하나일 것이다. '남자니까' 하는 생각처럼 남자를 힘들게 하는 것도 없는 듯하다.

극에서 보면 가믄장 아기가 마퉁이를 끌어주고 마퉁이에게 동기를 부여해준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해줄 수 있는 동등한 관계는 얼마나 행복한가? 또 살면서 기대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실제로 나의 아내와도 가사분담을 하며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마퉁이로서 가믄장 아기에게 의지할 때마다 어떤 짜릿함을 느낀다."

"<가믄장 아기>는 힘에 관한 이야기"

▲ 허시라씨는 <가믄장 아기>의 음악감독이면서 악사 2 역을 열연한다.
ⓒ 북새통
- 각자 역할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허시라(악사 1):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음악 전공으로 <가믄장 아기>의 음악을 맡았다. 기본적으로 제주의 민요를 많이 살리려고 했다. 특히 민요에 담겨있는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좋았다. 극에서 그 정서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김소리(악사 2): "악사는 관객과 무대를 연결시키는 다리 같은 존재다. 나의 대사나 행동이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고 관객들이 체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주혜원: "외적인 행동을 바꾸는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가짐도 가믄장 아기처럼 당당하고 주체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똑바로 서는 모습을 표현해내려고 했다."

우기홍: "<가믄장 아기>는 가믄장의 이야기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이건 마퉁이의 역경이자 극복이다. 마퉁이의 선을 나름대로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가 나의 숙제였다. 또한 이 무대에서 내가 왜 가믄장 아기와 함께 있는지, 가믄장 아기의 역경이 내겐 무슨 의미인지를 고민하려고 애썼다."

남인우: "이 작품은 양식에 대한 실험이다. 무대 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삶이 변하듯 인물과 소리, 소재와 자세가 변하는 것이다. <가믄장 아기>도 삶이다. 그것이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다. 또한 70년대 마당극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더할 것은 더했다. 물론 더 다듬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 <가믄장 아기>의 지난 공연 포스터
ⓒ 북새통
- 남 연출이 잠깐 언급했는데 <가믄장 아기>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남인우: "비단 여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가믄장 아기>는 힘에 관한 이야기다. 즉 밥을 혼자 먹느냐, 나눠먹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거지 대감은 부자가 되어 밥이라는 권력을 획득하고도 이를 나누지 않았다. 거지였을 때 평등하던 부부관계도 권위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가믄장 아기는 달랐다. 그는 거친 땅을 일구어 어렵게 수확했지만 이를 다른 이들과 나눴다. 또한 자신을 버리고 욕했던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마지막에 관객들과 떡을 나누는 것도 이러한 의미다. 이것이 <가믄장 아기>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다."

-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남인우: "관객들이 쓴 후기 중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한 어머니는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여섯살짜리 딸아이를 보면서 '그래, 너도 자궁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른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초경을 할 때까지 공연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썼다. 관객들을 위해서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싶다."

<가믄장 아기>의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주혜원: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나 어릴 적에> <보이첵> 외 다수

·우기홍: 연극 <그들은 연극배우들이야> <남과 여> 영화 <중독> <장화홍련>

·허시라: 서울대 국악과 해금 전공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해금전공 전문사 과정

·김소리: 서울대 국악과 가야금 전공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아동청소년 연극 전공 전문사 과정.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단원.

·남인우: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극 전공 전문사 과정 수료. <어디만큼 왔니> 외 다수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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