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1] 육군 소령의 '겁없는 선전포고'
"장군님께 전해주십시오. 흙탕물에 발 담그지 마시라고…."
한 육군 소령의 '겁없는 선전포고'였다. 주인공은 국방부 검찰부 이명현 수석검찰관(현 계급은 중령). 지난 98년 10월 당시 병역비리 수사를 맡고있던 그에게 군 고위급 인사인 A장군의 한 측근이 A장군을 대신해 찾아와 청탁을 하자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당시 이 측근은 병역비리로 구속된 한 인사의 장인이 A장군과 학교 동기라면서 이 검찰관에게 풀어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청탁을 거부한 이 검찰관은 그해 12월 서울 후암동 병무청에 설치된 군·검병역비리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의 군 관련 수사팀장으로 5개월여 동안 활동했다.
당시 합수부는 병역비리와 관련해 금품을 제공하고 병역면제를 청탁한 자, 알선자 및 군의관 등 모두 207명을 적발하고, 이중 137명을 구속했다. 이같은 성과는 창군 이래 처음있는 일로 가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 소령은 국방장관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 하명사건이기도 했던 병역비리 수사 때 기무사 등으로부터 가해졌던 '내부압력'을 폭로했다.
지난해 이명현 중령은 순환보직 형태로 국방부 검찰단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인사이동을 단행하면서 그가 '군 사법의 칼'을 쥐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군 검찰 주변에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명현 중령의 군 검찰단 진입을 막는 것이 군 일각에서 쳐놓은 최후의 마지노선이었다."
군 검찰 독립의 필요성을 반증해주는 사건이다.
[풍경 2] 육군대장의 범죄열람표에 적시된 기자 촌지 44만6천원
최근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는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전역 육군 대장)의 '장부'에는 두 명의 기자가 등장한다. 군사전문기자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와 <한겨레> 김성걸 기자로, 이들은 모두 국방부 출입기자다. 이들의 이름은 지난 5월 21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두번째 공판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B씨(신 대장 3군단장 재임 시절 비서실장)는 신 전 부사령관을 기소한 범죄일람표를 보여주며 군판사의 심문에 답변했다. 범죄일람표는 신 전 부사령관이 제3군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재임시절 비서실에서 작성한 장부를 기초로 만든 '공금 횡령' 사례가 요약되어 적시되어 있다. 이날 공판 상황을 복기하면 다음과 같다.
"증인이 보기에 이중 공적으로 사용된 것은 어떤 항목이라고 보나. 내용이 잘못 적힌 것이 무엇인가." (군판사)
"137번은 여러명의 기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된 것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쓰인 것이다." (B씨)
"확인해주겠다. (원 장부를 보여주며) 여기보면 기자가 단 한 명 뿐이다." (최강욱 수석검찰관)
"아, 유용원 기자. 그러면 이건 공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B씨)
"194번, 국방부 출입기자 격려 항목은 (원 장부를 보여주며) 이것이다." (최강욱 수석검찰관)
"그것도 개인적인 것이 맞다."(B씨)
이날 공판에서 <조선>의 유 기자는 실명으로, <한겨레>의 김 기자는 비실명으로 등장한다. 신 전 부사령관의 원래 장부에는 3군단장 재임시절 유 기자에게 현찰 20만원과 4만6천원짜리 선물을 준 것으로 기입되어 있고, 김 기자에게는 3군단장 재임시절 20만원을 준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사령관도 군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최근 확보한 신 전 부사령관의 '범죄일람표'에도 촌지를 준 사람의 이름은 빠져있지만, '국방부 출입기자 격려'라는 제목으로 두 기자들에게 돈을 준 내역이 적시돼 있었다.
결국 큰 돈은 아니지만 이 두 기자에게 지급된 총 44만6천원의 '촌지'는 군사법원도 인정했고, 신 전 부사령관에게 선고한 1억여만원의 추징금 속에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 기자 "시계 받았지만 돈은 안받아", <한겨레> 기자 "봉투 받았지만 거부"
하지만 두명의 기자는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조선> 유 기자는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시계(4만6천원 상당)는 받았지만 20만원을 받은 적이 없다, 왜 이런 일(장부에 돈을 준 것으로 기록된 것)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김 기자 역시 같은 날 전화통화에서 "당시 군 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생긴 일이다, 술이 많이 취했다, 돈 봉투를 받았지만 식탁에 던져놓고 나왔다"면서 돈 봉투를 건네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되돌려줬다고 주장했다.
두 기자가 쓴 '신 대장 구속 기사'의 논조
결국 신 전 부사령관과 그의 전 비서실장, 그리고 두명의 기자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두 기자는 신 대장의 구속과 관련해 어떻게 보도했을까.
<조선>의 유 기자는 지난 5월 10일자 「연합司 부사령관 신일순大將 구속…"별넷이 잡혀갔다" 全軍이 충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신 부사령관의 혐의는 군 내에선 오랜 관행처럼 여겨져 온 것이어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개혁 차원에서 엄격한 법 적용이 불가피했다는 시각과 함께 표적 사정론 및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고 '관행'이라는 점을 다소 부각시켰다.
유 기자는 또 "그가 공개적으로 세번이나 소환조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고위 장성의 권위와 체면을 너무 깎아내린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군 검찰은 수만원 단위까지 매우 상세히 기록돼 있는 공금 사용 명세서를 입수, 횡령 혐의를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겨레>의 김 기자는 같은 날 「현역대장 구속 파장/내사종결 사건 이번엔 '칼날'」제목의 해설 기사에서 "군 검찰도 고위 장성들의 '드러난 비리'에 대해 원칙적인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의 변화'가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 기자는 수사 배경과 관련 "군 안팎에서는 탄핵사태 마무리 이후 이어질 군 수뇌부 및 장성급 인사 등을 앞두고 특정지역 인맥을 겨냥한 '힘겨루기'라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결재권자인 조영길 장관도 처음엔 군 검찰의 영장청구 강행 방침에 신중함으로 대응하다가 여권 '핵심부'의 기류를 읽고 영장 청구를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혐의 내용보다는 '정치적 역학'에 따른 수사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풍경 3] 헌병 장교들, 군복 입고 국회의원들에게 큰 절?
"군복을 입은 헌병 장교와 헌우회(헌병 예비역 장성 모임) 관계자들이 신한국당의 법사위원들을 찾아가 큰절을 올렸다. 또 한 국회의원의 지구당 사무실에 찾아가서는 책상을 뒤엎기도 했다."
지난 98년 11월경, 군 내부에서 나돌았던 소문이다. 당시 국회 법사위원회에서는 군사법원법중 개정법률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논의의 핵심은 군 검찰관이 헌병과 기무 등 군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군 검찰 수사 지휘권 명문화' 방안과 '기무사의 수사 관할 확대(집시법 등)' 등이었다.
헌병들이 발끈한 것은 수사지휘권 문제였다. 군의 한 관계자는 "당시 헌병들이 수사지휘권을 빼앗길까봐 난리가 났었다"면서 "장교들이 법사위원들을 많이 찾아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국회 법사위원이었던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헌병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만나기는 했지만, 절을 했다거나 정복을 입고 헌병들이 의원들을 쫓아다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면서 "당시 나는 군 검찰권과 군사법원의 독립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99년 군사법 관련 개정에서 '헌병 한판 승'
어쨌든 군사법원법중 개정법률안은 논란 끝에 법사위원회 정식 안건으로도 채택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겼고, 그로부터 4개월 뒤인 99년 3월 26일 국방부합동조사단은 차관이 주재하는 정책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안건을 올렸다.
"①보통군사법원의 사단급 환원 ②각군 본부에 고등군사법원 설치 ③확인조치권 확대 ④보통군사법원의 재판관 구성 조정(군판사 2인, 심판관 1인→군판사 1인, 심판관 2인) ⑤지휘관 권한 강화(검찰사무에 관한 직무이전권 부여, 군판사·검찰관·변호인의 재판에 관한 직무상 행위의 경우 불이익처분 금지 조항의 삭제)"
정리하면 군 사법의 '지휘관 종속'을 심화하자는 것이다. 이중 ②④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헌병쪽의 입장이 수용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지휘권 강화'로 상징되는 헌병이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고 난 뒤 5년이 지났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또다시 군 사법제도 개혁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이 9월 중순께 국회에 제출할 군 사법제도 개혁안의 주요 골자는 '군 사법권을 지휘권으로부터 분리하라'. 5년 전과는 역전된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군검찰의 조직 등에 관한 법률안', '군사법원의 조직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을 통해 군 검찰권을 강화, 지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중부의 난' 발언에 대한 국방부의 이상한 침묵
이 법안과 관련 최근 군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의 '정중부의 난' '인민무력부 안의 정치보위부 정치군관' 발언 의혹이 제기되면서 군 일각에서는 지난 98년에 '헌병 로비'의 악몽을 떠올렸다고 한다.
특히 남 총장이 부하 장성들에게 "성우회(예비역 장성들의 모임)를 동원, 로비를 해서라도 (군 사법 개혁을) 막아라, (법무감 대리에게)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고 사개위와 000국회의원을 쫓아다니면서 막아라, 군 검찰을 각군 총장 밑에 두도록 로비를 하라"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군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쪽에서 촉각을 곧추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보도됐을 당시 금방이라도 특정 언론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진행할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던 국방부는 지금 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 침묵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98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군 지휘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