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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거벗은 여자
ⓒ 휴먼앤북스
직립보행, 지능의 발달, 손의 사용, 도구의 사용…. 동물과 사람과의 차이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흔히 언급되는 것들이다. 또 무엇이 있을까? 동물의 경우에는 보통 수컷이 암컷보다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을 보인다. 그에 반해, 사람의 경우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외모를 치장하고 꾸미기를 더 즐긴다. 이를 단지 미에 대한 본능, 과시욕이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현상은 남자가 권력의 중심에 있으므로 여자가 그 권력에 다가서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권력의 중심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평범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권력의 눈에 띄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자. 만일 여자의 힘이 강해져서 결국 남자의 힘을 누르고 권력의 중심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여자가 멋 부리는 것을 그만두겠는가. 거의 모든 남자가 여자의 눈을 현혹시키기 위해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겠는가. 꼭 그럴 것 같지도 않다.

동물 수컷의 화려함이 종족 번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화려할수록 좀더 많은 암컷과 교미를 해서 종족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학적의 차원에서 본다면 여자가 치장하는 것도 종족 보존을 위한 일종의 본능이 아닐까? 남자로 하여금 여자를 지키고 보살펴 주고 싶은 보호 본능과 관심을 일으키려 치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먼 옛날부터 출산과 양육을 할 수 있는 여자는 각 부족에서 소중한 존재였다. 자식이 있고 없음이 곧 부족이 유지되느냐 안 되느냐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여자는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발달했으며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해졌다. 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했다.

인류의 개체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출산이 가능한 여자는 부족에서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이 되면 안 되었다. 부족의 유지를 위해 남자는 여자와 아이를 지켜야 하고 사냥 등의 거친 일을 할수 있도록 근육이 주로 발달했다.

데스몬드 모리스에 따르면 남자는 사냥 등의 위험이 따르는 일을 하다 죽을 수도 있는 소모품의 개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출산을 담당하는 여자는 늘 보호 받아야 했고, 사람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육체적으로도 남자와 많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여자 몸에 지방의 비율이 더 많다는 것은 유아적인 특질을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성장 속도가 더딘 인간이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남자는 통통하게 살진 아기 같은 신체에 대해 부성적 보호 본능을 느꼈고, 진화 과정에서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 만큼 육체적으로 충분히 강인하게끔 발달했다. 한데 여자의 몸이 통통하게 살진 아기의 신체적 특질을 가짐에 따라 남자는 여자에게 부당하게 이용당하게 된다. 여자가 신체적으로 아기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면 될 수록 남자의 보호 본능은 더 많이 자극받았고, 결국 남자는 여자 앞에 족쇄를 차게 된 것이다.

여자의 몸이 유아적인 특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목소리. 사춘기를 거치면서 남자는 저음으로 바뀌지만 여자는 고음의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한다. 즉,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남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턱과 얼굴, 가슴 등에 수염과 털이 자라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여자의 진화는 출산과 성적인 측면에 있어 최적화된 것이며 남자보다 한 걸음 더 진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자의 모습만을 머리카락부터 시작하여 발까지 보여주는 것이 바로 <벌거벗은 여자>이다.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자의 몸을 2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여자의 몸에 관한 동물학적·인류학적 탐험의 최종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저자는 책의 각 장에서 몸의 부분에 관한 생물학적 의미, 진화 과정에 대한 추측뿐 아니라 해당 부분에 관한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알려 주고 있다.

예전부터 여자가 남자의 보호를 받아 왔지만 그것은 상호의존적인 관계였다. 생존을 위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평등한 관계였지 지배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곧,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균형은 인류 집단의 구성원이 많아지고 거대한 마을 혹은 도시가 발달하면서, 그리고 부족민들이 시민으로 바뀌면서 깨지고 말았다. 인간 사회에서 종교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였다. 고대에는 위대한 신적 존재가 모두 여자였다. …… 여자가 진화 과정을 통해 획득했던 사회적 지위는 추락했고, 권리는 묵살되었다.

이러한 가부장적 문화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곳에서 여자의 육체를 왜곡시켜 왔다. 중국에서는 '전족'이라는 풍습이 유행해서, 수많은 여자들이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평생 동안 천으로 발을 꽁꽁 싸맨 채 살아갔다. 또 어느 나라에서는 여자가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성기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할례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허리를 잘록하게 하기 위해 장기가 기형이 되도록 꽉 조이는 코르셋을 입은 이유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자는 여자의 신체 부위에 대한 생물학적인 설명과 더불어 각 시대가 여자의 몸을 어떻게 왜곡하고 억압해 왔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저자는 비록 여자가 가부장적인 문화로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여자는 가장 멋지고 또 놀랍도록 정교하게 진화된 유기체'라고 말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다른 어떤 종의 수컷과 암컷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그 차이를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으면 한다.

책의 제목만을 보고 혹했던 사람이라면 제목의 선정성에 비해 그 실망감은 자못 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적 충족감은 그 실망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벌거벗은 여자 - 여자 몸에 대한 연구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경식 외 옮김, 휴먼앤북스(Human&Books)(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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