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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논갈이
농부의 논갈이 ⓒ 웅진닷컴
농부와 하나 되어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온 힘을 쏟아내며 논갈이를 하는 소는 우직한 우리 농부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농부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농부 ⓒ 웅진닷컴
또한 소는 우리의 조그만한 황토마룻길을 오고가는 주요한 교통 수단도 되었던 것이다.

“이랴이랴, 덜컹덜컹, 워워. 먼지 풀풀 날리는 황토마룻길에 소달구지가 느릿느릿 집으로 가는지, 밭으로 가는지, 세월아 네월아 봄볕 속을 건너고 있다 ”

이처럼 우리네 조상들은 소와 함께 유유자적한 삶의 전형을 만들어 내려 했던 것이다.

도랑가 빨래터
도랑가 빨래터 ⓒ 웅진닷컴
소가 우리의 농촌 사회의 상징적인 가축이었다면, 빨래터는 우리네 아낙들의 기쁨과 아픔을 나누던 이야기 공간이었다. 그 동네의 온갖 소문과 집안 이야기들이 여기에서 오고 간 것이다.

“개똥애비가 요즘 남자 구실을 못 한다더라, 말순네 할머니가 노망이 들어 똥 묻은 손으로 만두를 빚더라, 만수 청년이 엊그제 아랫말 순덕이와 뽕나무밭으로 들어가더라 등등, 온갖 소문이 모여들고 흩어지는 오늘날의 뉴스센터 노릇도 빨래터가 담당했다”

호롱기를 통한 벼 탈곡
호롱기를 통한 벼 탈곡 ⓒ 웅진닷컴
가을이 되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 우리네 농부들을 기다렸다. “호롱기”라는 근대적인 탈곡기가 우리네 70, 80년대 농촌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된 농기구였다. 돌기는 제법 재미있을 같기도 하지만, 우리 농부들의 진땀을 쏙 빼 놓는 농기구이기도 했다.

“와랑와랑 소리가 날 때마다 넓은 멍석 위로 차르르 쏟아져 내리는 황금빛 알개이들. 와랑와랑, 차르르. 보기에는 재미있을 것 같지만, 하루 종일 발판을 밟고 나면 내 발인지 남의 발인지 모를 정도로 발병을 알아야 했던 것이 호롱기였다”

우리네 가마솥
우리네 가마솥 ⓒ 웅진닷컴
우리네 부엌 문화(경상도에서는 "정기, 정지”라고도 함)는 다름 아닌 가마솥으로 상징된다 할 수 있다. 시꺼먼 가마솥에 온 식구를 밥을 풍성하게 지어 배불리 먹일 수 있었던 일명 대가족용 밥솥이었던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아픔과 한이 서린 기구였던 것이다. 군불을 지피고 훅훅 불어가며 부모님, 남편,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고달픔을 여기에서 소화시켜 냈던 것이다.

“과거에는 솥이 얼마나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지에 따라 아낙네의 바지런함이 평가되기도 했으므로, 아낙네들은 자주자주 기름수건으로 소댕을 닦아야 했다.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솥은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다.”

우리의 근대화는 불과 20, 30년에 걸쳐 급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그간에 얻은 것도 많지만,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원형에 숨어 있는 삶의 보고(寶庫)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우리를 우리이게 해주는 것은 선진 학문도, 선진 외국 문물도 아닌, 다름 아닌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몸과 마음이 담긴 삶의 흔적들인 것이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원형을 잊어간다면 그것은 곧 우리를 잃어버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이용한 지음, 심병우 외 사진, 웅진지식하우스(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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