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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감싸고 있는 타라나키 산
구름이 감싸고 있는 타라나키 산 ⓒ 정철용
차가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부드럽고 평화로운 모습과 예각의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먼 그 완만한 능선으로 인해, 나는 해발 2518m라는 타라나키산의 높이가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타라나키산이 그 주위에 비교가 될 만한 다른 산들이 없이 너른 벌판에 혼자서 솟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1775년에 있었던 타라나키산의 마지막 화산 폭발을 목격했을 마오리들은, 이 산이 이렇게 외따로 높이 솟아 있고 맑은 날에도 구름 속에 잠겨 있는 이유에 대해서 아주 낭만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어 흥미롭다.

타라나키산은 통가리로산을 이기지 못한다

마오리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에는 뉴질랜드 북섬의 높은 산들이 북섬 한가운데에 있는 타우포 호숫가 근처에 함께 모여 있었다. 이 산들은 작고 아름다운 산인 '피항아'를 사랑했는데, 산중의 산이라 불리는 '통가리로'와 '타라나키'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이 두 산은 피항아를 차지하기 위한 대혈투를 벌이게 되고, 며칠 동안 계속된 싸움에서 통가리로가 최후의 승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패배로 인한 분노와 사랑을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던 타라나키는 땅 속에서 온몸을 솟구쳐 해 지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 때 충직한 친구인 '라우호토 타파이루'라는 바윗돌이 타라나키의 앞길을 인도했다. 라우호토의 인도를 받아 타라나키가 지나간 곳에는 깊은 골짜기가 패여 강물이 흐르게 되었는데, 그 강물이 바로 아직도 흐르고 있는 '팡가누이강'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타라나키는 새벽 무렵에 서쪽 바닷가에 이르렀고, 지친 그는 그 곳에서 잠시 멈추고 잠을 청했다. 이 때 원래 이 지역에 서 있던 산들인 '포우아카이'와 '파투하'는 타라나키가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잠이 든 타라나키의 발에 족쇄를 채워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오직 라우호토만이 이 족쇄를 풀 수 있는데, 그는 아직까지 타라나키의 족쇄를 풀어 주지 않고 있다. 신비한 힘을 지닌 이 바윗돌은 지금도 타라나키산과 태즈만해 사이에 있는 작은 마오리촌 '푸니호 파'에서 타라나키산을 지켜 보며 서 있다.

이렇게 해서 타라나키산은 높은 산들이 무리지어 서 있는 타우포 호숫가 근처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서쪽 바닷가의 벌판에 외따로 혼자 서 있게 됐다. 그리고 아직도 잃어 버린 사랑 피항아를 그리워하며 눈물과 한숨을 삼키고 있어서, 타라나키산에는 맑은 날에도 구름과 안개가 걷히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 전설은 화산 폭발이나 지진 등과 같은 지각 변동과 구름과 안개 등과 같은 기상 현상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재미있다. 더욱 재미난 것은 이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통가리로에게 패배하는 타라나키의 이야기가 실제 역사를 통해서도 몇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타라나키는 통가리로에게 사랑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국립공원 지정에 있어서도 선수를 빼앗겼다. 1894년 뉴질랜드 최초로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지정됐고, 타라나키산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00년에 가서야 두번째 국립공원(이 공원은 타라나키산의 영어 이름을 따서 에그몬트 국립공원으로 불린다)으로 지정되었으니 말이다.

연간 방문객 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에는 매년 100만명 이상이 다녀가지만 타라나키산은 그 절반도 안 되는 30만명이 고작이다. 또한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일찍부터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 반면 타라나키산은 뉴질랜드 내에서만 조금 알아 주는 정도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최고봉 루아페후산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최고봉 루아페후산 ⓒ 정철용
높이로 보자면 통가리로산(1967m)이 타라나키산(2518m)보다 훨씬 낮은데도 이처럼 모든 면에서 앞서는 것은, 통가리로산은 주위에 든든한 원군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북섬의 최고봉인 루아페후(2797m)와 나우루호에(2291m)가 바로 그 원군들이다.

나는 타라나키가 항상 통가리로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것은 예부터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이 씌워 놓은 비운의 운명이 타나라키의 발목을 항상 붙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족쇄는 아직 풀리지 않았고 타라나키의 잠도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전설을 통해 전해지는 주문(呪文)이란 때로는 이토록 강력하게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타라나키산은 후지산을 닮았다

하지만 타라나키산도 올해 들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기회를 얻으면서 차츰 그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올해 초 개봉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할리우드의 대작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바로 타라나키산을 배경으로 해서 촬영됐다.

화살표로 표시된 마을에 사무라이 빌리지가 있다
화살표로 표시된 마을에 사무라이 빌리지가 있다 ⓒ 사무라이빌리지투어
세계적인 톱스타 톰 크루즈가 이 영화의 촬영을 위하여 두달 이상을 타라나키 지역에 머물렀고, 그의 뒤를 좇아서 연예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그들에 의해서 타라나키산을 비롯한 이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영화를 통해 타라나키는 세계 무대에 등장했지만, 이 역시 통가리로보다는 한 발 늦은 것이다. 통가리로는 그보다 앞서 피터 잭슨의 3부작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영화계에 먼저 발을 내딛었다.

몇 년 차이로 또 선수를 빼앗기기는 했어도 <라스트 사무라이> 덕택에 평소에는 한산하기 짝이 없던 타라나키 지역 요식업체들은 영화 촬영 기간 내내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이 영화의 제작팀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타라나키 지역을 촬영 현장으로 택한 것은 바로 타라나키산 때문이었다. 원추형으로 완만하게 솟아 있는 타라나키산의 모습이 19세기 일본의 한 사무라이 촌락을 무대로 하고 있는 이 영화 속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후지산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

이에 주목한 <라스트 사무라이>의 제작팀은 타라나키산의 북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 우루티에서 마침내 촬영에 아주 적합한 한 농장을 발견하고 약 6개월간에 걸쳐 사무라이 촌을 그 농장에 건설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 세운 25개의 건물들은 촬영이 끝나고 난 후, 집 한채를 빼놓고는 모두 철거됐다.

사무라이 빌리지에 남아 있는 집 한 채
사무라이 빌리지에 남아 있는 집 한 채 ⓒ 사무라이빌리지투어
그러나 농장 주인은 남은 집 한채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영화 촬영의 흔적들을 잘 보존하여, ‘사무라이 빌리지’라는 이름을 붙여 관광지로 꾸몄다. 그리고 여기에 전쟁 장면의 촬영시에 실제로 이용되었던 말들의 스턴트 쇼도 보여 주고 주변의 맥주 공장 견학 및 시음 기회도 함께 제공하는 관광 상품을 개발했다.

이후 일본인 관광객들이나 톰 크루즈의 극성팬들이 단체로 몰려들면서 우루티의 ‘사무라이 빌리지’는 이 지역의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여행 첫날 우루티를 통과한 우리는 시간에 쫓겨 아쉽게도 ‘사무라이 빌리지’에 들르지 못했다. 대신 여행 셋째 날, 우리는 멀리서 구름에 가린 모습으로만 보았던 타라나키 산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타라나키산은 구름 안개 속에서 울고 있다

타라나키산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산 주위에 방사선처럼 퍼져 있는 길들의 끝에 여러 개가 있다. 단지 15분에 불과한 초단거리 산책 코스도 있고, 정상까지 왕복 7~8시간이 소요되는 본격적인 등산로도 있다.

타라나키산을 속속들이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3~5일간에 걸쳐 산의 구석구석을 연결해 주는 등산로들을 누비는 산행 코스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동 시간을 포함해서 단지 2시간 동안을 타라나키산에서 머물기로 계획한 우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일단 자동차로 산의 깊숙한 안쪽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들어가서, 그곳에 자리한 도우슨 폭포를 구경하고 나오기로 한 것이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구불구불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는 산간 도로를 20여분 정도 달리자 막다른 길 끝에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오싹 한기가 느껴지는 습한 구름 안개였다. 산 밑에서는 분명 맑은 하늘을 보고 올라왔는데 산 중턱에도 미치지 못할 이곳에는 구름 안개가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자욱한 구름 안개는 여행자 정보 센터에 들어가 도우슨 폭포의 위치를 대충 확인하고 나오는 사이에 이미 흩어져 버리고 없었다. 변화무쌍한 타라나키산의 날씨 변화에 감탄하며 우리는 대충 감을 잡아 사람들 몇이 몰려 있는 쪽으로 갔다.

그들도 도우슨 폭포를 보러 왔으리라 짐작하고 우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올라갔다. 그런데 왕복 10분 거리에 있다는 폭포는 우리가 20여분을 걸어 올라가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구름 안개가 내리고 빗방울도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해,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산길을 내려와 젖은 몸도 말리고 점심도 먹을 겸 들어간 산장 카페에서 나는 폭포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벽에 붙여 놓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도우슨 폭포는 우리가 올라갔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인 아래쪽 도로 변에 있었다. 안내책자에는 30m 높이의 장쾌한 폭포라고 소개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가서 보니 보잘 것이 없었다.

도우슨 폭포 앞에서 엉거주춤 선 아내와 딸아이
도우슨 폭포 앞에서 엉거주춤 선 아내와 딸아이 ⓒ 정철용
그러나 타라나키산의 전설을 기억하고 있는 내게는 그 물줄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저 폭포의 물줄기는 몰래 구름 안개 속에서 흐느끼다가 끝내 감추지 못하고 터뜨려 버린 타라나키산의 눈물인지도 모른다. 사랑도 명예도 모두 통가리로산에게 내주고 만년 2인자로 서쪽 바닷가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타라나키산이 참았던 설움을 마침내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역사는 패자를 기억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2등은 쉽게 잊어 버린다. 사람들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과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밟은 에드먼드 힐러리경은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지만, 그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하여 그들보다 단지 몇 분 뒤처졌던 버즈 올드린과 텐징 노르게이는 쉽게 잊어 버리고 만다.

통가리로산에게 늘 선수를 빼앗긴 타라나키산도 인류 역사 속에서 그렇게 잊혀져 간 무수한 2등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산을 내려와서 올려다본 타라나키산은 다시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그 구름 안개 속에서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을 커다란 산의 슬픔에, 나는 지리산이나 한라산을 떠올리면 그러하듯이 목이 메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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