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아름다운 순천만, 그 길을 나는 가고 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쉼없이 달려와 어슴프레 어두운 저녁에 그 길을 가고 있다. 탐스러운 푸른 논들 사이로 난 좁은 도로를 따라 순천만으로 다가가는 길은 잠시 고향의 넉넉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좁은 도로 한쪽에 있는 허름한 버스 정류장이 그렇고, 구부정한 허리로 쉼없이 걸어가는 동네 어른의 모습이 그렇다.
표지판을 따라 순천 청암대학에서 꺾어 들어 간 길은 관광안내소와 갈대밭 선착장을 지나 순천만과 만난다. 선착장에는 갈대밭 사이를 오가는 작은 통통배 서넛과 구경 온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갈대숲 사이로 나 있는 하구의 물길이 있다. 사진에서 보던 모습은 어디일까?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것인가? 제방 길을 따라 나 있는 비포장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나오는 것일까? 막상 순천만 갈대숲에 들어 가고 나서도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다시 차에 올라 제방 길을 따라 난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제방 중간 중간에는 갈대밭과 철새들을 볼 수 있는 관람 장소가 있다. 15만평의 갈대숲은 울창하게 우거져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앞에 서 있는 나를 둘러쌌다.
계속해서 차를 몰아 서쪽으로 향했다. 악어 주둥이처럼 길게 늘어진 산 자락의 끝 부분인 화포로 향하기 위해서다. 화포의 언덕에는 휴게소가 있어 순천만을 굽어볼 수 있다. 한없이 넓게 뻗어 있는 바다와 그 옆으로 짙은 갈색의 갯벌을 두루 살펴볼 수 있어 사람들이 가끔 찾는 장소다. 해는 어느덧 뉘엿 서쪽으로 기울었다.
다음날 여수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다시 순천만에 갔다. 이번에는 순천만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농로를 따라 용산이라는 작은 산으로 다가갔다. 이 작은 산에 오르면 순천만 가운데로 흐르는 물길과 붉은 빛을 띠는 칠면초, 동그란 원형을 그리며 바다에 안겨 있는 갈대숲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땔감을 위해 나무를 베지 않고 통행도 뜸한 산은 작은 야산이라도 쉽사리 내게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산을 내려 와야만 했다. 사진 속에서 보던 그 멋진 순천만은 어디일까 하는 의문만 증폭시킨 채 말이다.
순천만 선착장 주변과 화포 등을 둘러본 나는 와온해변 쪽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와온해변은 순천에서 여수로 향하는 2번 국도를 따라가다 해룡면에서 우회전해 863번 국도를 따라 가면 된다. 와온해변 가는 길의 해수탕(전망대) 부근을 찾아가 보았다. 넓게 갯벌이 펼쳐지는 사이로 칠면초가 붉게 익어간다. 그 사이로 보이는 작은 물길은 커다란 용이 바다를 향해 기어가듯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오던 길을 조금 돌아가 보기로 했다. 863번 국도를 다시 거슬러 가다가 ‘능주’마을 이정표가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길로 들어섰다. 순천만이 보일 때까지 계속 안으로 들어가자 순천만의 제방길이 나타나고 제방길의 오른쪽 막다른 길에 산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이 얼핏 보인다.
아래 오리농장 아주머니에게 사진속의 아름다운 순천만 풍경을 저 산에 오르면 볼 수 있느냐고, 저 산을 오를 수가 있느냐고 여쭈었다.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맞다고, 저 산에 오르면 순천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사람들도 많이 찾아와 저 산에 오른다고 말씀하셨다. 드디어 찾았다. 아름다운 순천만의 모습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장소를 말이다.
나는 단숨에 야산을 뛰어 올랐다. 산을 조금씩 오를 때마다 순천만의 장엄한 광경은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나를 맞이한다. 드넓은 갯벌의 가운데를 커다란 획을 그으며 가로지르는 물길이 있고 저 멀리 길게 누운 산자락의 끝에 있는 화포가 보인다. 물길의 왼쪽으로는 붉게 익어가는 칠면초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동그랗게 원형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갈대숲이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순천만이다. 순천에 갈 때 꼭 가보라는, 왜 가야 하냐고 물으면 그냥 꼭 가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 순천만의 모습인 것이다.
순천만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물이 많이 차는 그믐날 아침, 칠면초와 갈대가 익어가는 가을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