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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암(향일암)이 있는 임포마을
영구암(향일암)이 있는 임포마을 ⓒ 윤돌
늦은 밤에 도착한 여수에서 가장 먼저 내 마음을 흔든 것은 450미터의 긴 다리인 돌산대교다. 그 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큰 섬인 돌산도를 육지와 연결해 준다. 그 거대한 다리가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듯 내 마음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내 가슴이 벅차다 못해 머리까지 멍해진다. 그렇게 환희에 차 정신을 놓은 동안 어느새 나는 돌산도에 와 있다. 그 긴 다리가 순간이다.

돌산대교를 지날 때 차창을 열고 맞이하는 시원한 남해의 바람 그리고 바다는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에게 더없는 선물이 된다. 나는 욕심쟁이가 되어 그 선물을 오가며 받아낸다. 여수에서 돌산으로, 돌산에서 여수로….

돌산대교와 그 주위 풍경을 잘 볼 수 있는 곳은 여수에서 돌산대교를 건너와 만나는 돌산공원이다. 수시로 색을 바꾸고 표정을 바꾸는 돌산대교와 마주한 나는 다리 위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이 궤적을 그리듯, 내 마음 깊은 곳에 다리에 대한 깊은 감흥을 새긴다. 다리 건너편으로 여수 시내의 불빛들이 바다에 빛을 그리고 다리 왼쪽으로는 동그란 작은 섬인 장군도가 있어 그 운치는 무르익는다.

수시로 바꾸는 돌산대교의 색이 서너 번 반복되었을까? 나는 다리 아래로 내려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마저 마음에 담기로 했다. 옆에서 보는 돌산대교는 다리 여럿을 바다에 담그고 위로 팔을 뻗은 듯하다.

야경이 아름다운 돌산대교
야경이 아름다운 돌산대교 ⓒ 윤돌
여관같이 생긴 민박집에서 맞은 아침은 섬이라고 특별할 것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설레고,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여행객의 심정일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기대감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런 기대감만으로도 좋은 것이 여행 아닐까?

밤길에 얼핏 보았던 남해의 바다들이 이제는 뚜렷이 펼쳐진다. 돌산읍 죽포를 지나면서 영구암(향일암)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한 굽이 지나면 바다가 보이는 어촌이 나타나고, 한 굽이 지나면 가파른 산길이 나타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주차장에서 영구암(향일암)이 있는 임포마을까지 가는 길은 지루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임포마을과 남해의 바다를 보며 천천히 그 멋을 음미할 수 있다. 길 좌우로는 동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달도 잠든 그믐밤, 동백꽃이 하혈을 시작한다." 붉은 동백꽃봉오리가 떨어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주어 마음에 담아둔 글이다. 그런 동백을 임포마을에 다다라 오른쪽 산허리에 오르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강인함처럼 바위와 돌이 많은 곳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동백은 숲을 이루고 있다.

강인함으로 자리하는 동백나무 숲
강인함으로 자리하는 동백나무 숲 ⓒ 윤돌
임포마을에서 영구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야 하는데 그 길 옆으로 갓김치를 내어 파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나는 울긋불긋 먹음직스러운 갓김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식당 아주머니의 손을 빌려 한입 내어 문다. 짭짤한 맛이 돌더니 갓김치 특유의 향과 시원스러움이 입안에 스민다. 돌산의 바다 내음과 땅을 음미하는 듯하다면 조금 과할까?

돌산갓김치는 돌산에서 자란 푸른빛의 갓으로 담그는데 다른 지방의 갓김치에 비해 고유의 향과 씹히는 맛이 좋다고 한다. 돌산갓의 씨를 가져다 육지에서 재배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데 이는 돌산의 기름진 땅과 바닷바람 때문이라고 한다.

맛과 향이 그윽한 돌산 갓김치
맛과 향이 그윽한 돌산 갓김치 ⓒ 윤돌
매표소에서 영구암(靈龜庵)까지는 가파른 오름길의 연속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산새들, 풀꽃들, 누군가 쌓아올린 작은 돌탑들을 벗하여 오르면 어느새 영구암에 다다르게 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바위틈과 석문으로 되어 있는 영구암은 마치 동굴을 지나는 듯도 하다.

영구암은 신라 선덕여왕 13년(644)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으로 불렀으며, 고려시대에는 '금오암'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영구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영구암이라는 이름은 암자가 들어선 자리가 거북이 등에 해당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기이하게도 영구암 주위 바위들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줄무늬가 있어서 이름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향일암이라는 이름은 일제 때 '일본을 바라보자'라는 뜻에서 불리게 되었다거나 잔잔한 바다 위로 펼쳐지는 해돋이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무튼 암자의 정식 이름은 영구암이며, 금오산에 기암절벽 사이사이에 기대어 대웅전, 관음전, 칠성각, 독서당, 취성루 등이 존재한다.

마지막 돌계단을 올라 마주한 대웅전은 금오산에 기대고 남해의 바다를 안고 있다. 대웅전 앞으로 펼쳐지는 넉넉한 바다의 모습은 흐린 날이라 신비로움까지 준다. 그 위를 지나가는 배 서너 척을 보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중얼거리던 입은 이내 할 일을 잊은 듯 모두 멈추어 서고 오직 앞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볼 뿐이다. 그저 내게 쉴 새 없이 부딪혀오는 영구암의 감동을 받아낼 뿐이다.

영구암의 여러 전각 어디에 있더라도 이런 감동은 끊이질 않는데, 관음전 옆 해맑은 미소로 자리한 관음보살상과 그 감흥을 함께 나누고서야 마음은 진정되는 듯하다.

영구암에서 보는 해돋이와 낙조는 무척이나 유명한데, 조금 더 산을 올라 금오산 정상에 오르면 그보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영구암의 관음전 그리고 바다
영구암의 관음전 그리고 바다 ⓒ 윤돌
영구암에서의 감동에 겨워 길을 내려오면 임포마을 앞으로 거북이 머리마냥 삐죽 튀어나온 작은 동산이 있다. 그 동산의 한쪽 귀퉁이, 흙보다 돌이 많아 보이는 밭을 지나 아래 바다와 접한 너른 바위로 내려갔다. 절벽 귀퉁이에서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처럼 나 또한 다시 세상 속으로 낚싯줄을 드리워야 하는 것일까?

깔따구를 곧잘 걷어 올리시며 웃음을 보여주시던 어르신
깔따구를 곧잘 걷어 올리시며 웃음을 보여주시던 어르신 ⓒ 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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