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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저우역 근처의 거리의 아침 풍경
ⓒ 김정은
모두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침, 항저우역은 우리네 서울역 풍경처럼 번잡스러웠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다양한 이동수단에 자신을 맡겼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버스와 무궤도 전차의 행렬들….

▲ 항저우역 근처의 자전거와 오토바이 탄 사람들의 모습.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다양한 이동수단에 자신을 맡긴다.
ⓒ 김정은
중국 땅 항저우역 한 모퉁이에서 바라본 그네들의 일상 또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차 역사와 이어진 지하 통로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기차를 타기 위해 바삐 오르내리는 무표정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역사 안에서는 이들을 태우기 위해 기차들이 숨을 고르며 숨가쁜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도 나처럼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있을까?

삶은 종착역을 알 수 없이 떠도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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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사 쇠북소리 심청가 속에 흐르고

삶은 종착역을 알 수 없이 떠도는 여행이다. 내가 바라는 내 삶의 빛깔이 존재하듯이 이 항저우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삶의 빛깔 또한 제각각이겠지. 문득 영화 <스모크> 속에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의 사진을 매일 찍는 별난 담배가게 주인 '오기'의 사진 하나 하나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똑같아 보이지만 한장 한장 다 틀리지. 밝은 날 오전, 어두운 날 오전, 여름 햇볕, 가을 햇볕, 주말, 주중, 겨울 오버 입은 사람, 셔츠에 짧은 바지 입은 사람, 똑같은 사람,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이 같아질 때도 있고, 똑같은 사람이 사라지기도 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햇볕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고 있지. 자네도 알 듯이 내일 다음은 내일, 또 내일이야. 시간은 한 걸음씩 진행되지."

항저우역의 노숙자와 연탄

▲ 항저우역의 밤 풍경. 무궤도 전차가 이채롭다
ⓒ 김정은
또 시간은 흘러 항저우역에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 왔다. 밤의 항저우역은 전혀 다른 빛깔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역 주위의 계단이나 벽에 기대어 피곤했던 하루를 정리하고 다른 꿈을 꾸는 수많은 노숙자, 그리고 여기저기에 서 있는 공안들. 그들은 이미 항저우역 밤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 되었다.

개중에는 밤기차를 타고 역에서 내렸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잠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피곤한 삶을 의지할 한뼘 쉴 곳이 없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까닭모를 감상에 빠진 채 옹기종기 모여 앉거나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항저우역 근처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 항저우역의 밤 풍경. 아침과는 전혀 다른 빛깔의 삶을 사는 사람들로 여전히 북적인다.
ⓒ 김정은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하늘의 별로서 슬픔을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간절히 슬퍼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슬픔처럼 가난한 것 없을지라도
가장 먼저 미래의 귀를 세우고
별을 보며 밤새도록 떠돌며 가소서.
떠돌면서 슬픔을 노래하며 가소서.
별 속에서 별을 보는 나그네 되어
꿈 속에서 꿈을 보는 나그네 되어
오늘밤 어느 집 담벼락에 홀로 기대보소서

-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호승


▲ 과일가게에는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상자에 담긴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김정은
항저우역을 조금 벗어난 주변 거리는 또 달랐다.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상자에 담긴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소형 음식점 가판대에는 낯선 기름진 음식들이 큰 그릇에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네들은 음식들을 항상 따뜻하게 하기 위해 연탄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 연탄보다 크기는 작지만 구멍은 12개인 중국식 연탄. 우리 연탄이 보면 아우님 할 정도로 작지만 그래도 한껏 달아오른 모습은 같았다. 왠지 반가운 마음에 화덕 속에 들어가 있는 연탄을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문든 한국 연탄 구멍이 몇 개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12개였던가 19개였던가….

▲ 우리네 연탄보다 크기가 작고 구멍이 12개인 중국식 연탄. 주로 음식을 은근히 데우기 위한 연료로 사용한다.
ⓒ 김정은
연탄 구멍이 몇 개인지 헷갈리는 것은 그만큼 연탄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젠 가스나 기름 보일러를 주로 쓰는 탓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연탄 구경도 못하고 겨울을 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찬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 겨울나기용 연탄을 100장, 200장 들여 놓는 것이 큰 행사였다. 그리고 한겨울이면 연탄가스 사고가 심심찮게 보도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찾아 보기 힘든. 먼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연탄은 중국 항저우역에서 내 나라 한국을 떠올리게 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나라의 여러 모습들이 순식간에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그렇게 중국 항저우역의 12구멍 연탄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까맣게 과거를 잊어 버린 내 무심함을 깨우쳐 주었다. 어느덧 연탄불이 사그라들 듯이 항저우의 밤도 깊어 갔다.

항저우 용정차

▲ 용정차 만드는 모습
항저우를 가게 되면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 바로 용정차밭과 차박물관이다. 항저우는 중국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용정차의 고향이다.

신선 갈홍이 용정에서 차를 달여 마시다가 샘물 속에 용이 사는 것을 보고 용정이라고 샘 이름을 붙였고 이 샘 주위에서 생산되는 차를 용정차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용정차는 차잎 모양이 납작하고 새의 혀처럼 생겼으며 향기가 높고 맛이 담백하다. 일찍이 황제가 즐겨마신 차로 알려져 있다.

용정차는 일반 녹차보다 향기가 맑고 투명하며 청향(淸香)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맛이 담백하고 단맛이 많이 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 일찍이 우리 나라에도 알려졌으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나라에서 재배되는 녹차의 경우 곡우 이전에 딴 우전차를 가장 최상급으로 치지만 이 용정차는 청명(淸明, 4월 5일경) 이전에 딴 것을 명전차(明前茶)라 하여 최상급으로 친다. 용정차는 우리 나라 녹차의 '덖음'처럼 열가지 손동작으로만 만들어지는데 전기 가마솥에서 완전하게 볶아서 만든다. 차잎이 어리고 살집이 두터울수록 향기가 좋으며 납작하게 눌러서 건조를 하기 때문에 모양이 예쁘고 깨끗하다. /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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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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