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엄마 마중> 표지
ⓒ 소년한길
"우리 엄마 안 와요?"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이 두 줄의 대사가 백미인 이태준의 유년동화 <엄마 마중>이 한길사의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인 소년한길에서 새롭게 엮어져 나왔습니다. 서울에 가기 위해 인천 동암역까지 가는 마을버스에 오른 나는 유년동화책 <엄마 마중>을 가방에서 꺼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느껴지는 출판사에서 낸 유년동화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장을 펼쳤습니다.

40쪽의 책을 한 번 다 넘기고 나서 나는 "아!"하는 탄성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좋다!"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일러스트 작가 김동성의 동양화풍 붓 터치가 깨끗하고, 간결하고, 따뜻하게 와 닿았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의 간절한 모습이 잘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옆자리나 혹은 뒷자리의 사람들이 좀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높게 치켜들고 한 장, 한 장을 넘겼습니다.

'엄마 마중'은 1999년 4월에 겨레아동문학연구회가 엮은 것으로 '겨레아동문학선집' 1권 <엄마 마중(방정환 외 지음)>에 실렸던 유년동화입니다. 유년동화책은 글만큼이나 그림도 중요합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던 글이라도 삽화가 달라지면 아주 다른 향기를 줄 때가 있지요. 이 동화책을 보며 내가 감탄사를 연발한 것은 바로 그림이 창조적으로 잘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 엄마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아가의 동작이, 차라리 귀여울 만큼 아름답다
ⓒ 소년한길
'엄마 마중'을 인용하니, 거의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200자 원고지 2.5매 분량의 아주 짧은 글입니다.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낑'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섰습니다.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하고 차장은 '땡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중략)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아가는 왜! 세번째 전차가 떠나고 난 뒤부터는 가만히 서 있었을까요?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이 가득한 아가에게 세번째 전차의 차장이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하고 타일렀기 때문이겠죠.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가는, 오직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를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이겠죠. 편집자는 뒤표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대체 언제 오실까요? 추워서 코가 새빨갛게 되어도 아가는 엄마 생각에 움직일 줄 모릅니다. 아가에게는 오직 하나, 엄마 생각뿐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전차가 왔다 가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릴 따름입니다.'

▲ 아가의 간절함에는 무심한, 전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른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 소년한길
동화 속에는 등장인물이 단 두 명밖에 없습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아주 간결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화가의 몫이겠죠. 그래서 그림에는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전차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책보자기를 허리와 어깨에 두른 채 전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려가는 중학생들, 지게질하는 아낙네, 손수레를 끄는 사내, 자전거 타고 가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화가가 더불어 창조한 유년동화책 <엄마 마중>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한겨울에 왜 추워 보이는 사람이 없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두루마기 등의 옷을 잘 입은 데다 따뜻한 목도리까지 둘렀습니다. 노란 색감의 분위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더 따뜻해 보입니다.

1930년대에 동화와 유년동화를 많이 썼던 이태준 문학의 특징인 아름다운 문장과 따뜻한 시선을 잘 살려내려고 노란색 채색과 훈훈한 분위기를 실어 주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다림의 간절함 그러나 희망이 깔려 있는 느낌. 훈훈한 분위기 그러나 간절한 그리움의 깊이가 잘 드러난 그림입니다.

이 유년동화책은 어른들이 보아도 참 좋은 책입니다. 유년동화이지만 청소년들이 보아도 감동을 받을 수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아도 감동을 받을 수 있고, 집안 식구 중 누가 보아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엄마 마중'을 동시(童詩)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글의 형태로 보아서 동시는 절대 아닙니다.

만약 이 동화를 본 어린 자녀는 내용을 다 볼 때까지 눈만 내리고 있을 뿐 아가의 엄마는 오지 않는다고 떼를 쓸지도 모릅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지붕을 하얗게 만들었는데도 아가가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고 떼를 쓸지 모릅니다. 아마 울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유년동화책은 해피엔드입니다.

떼를 쓸 아가를 기쁘게 해 줄 장면이 마지막 그림에 숨어 있는 듯 나타납니다. 첫 그림에는 멀쩡하다가 이제는 눈이 가득히 뒤덮인 마을(그래서 더 낭만적이고 아름다워진)의 원경을 찬찬히 잘 살펴보니 곧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점경인물로, 아가가 엄마 손을 잡고 비탈진 골목길을 귀엽게 올라가고 있네요.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유년동화가 발표된 건 1938년 (조선아동문학집)입니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아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 엄마'는 바로 '대한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보림(2013)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