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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재 부총리겸 재경부장관이 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2004 당·정·청 경제 워크숍에서 한국형 뉴딜정책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현택

정부가 추진중인 '한국형 뉴딜 정책'에 대해 개혁진보성향 학자들이 '위험하다'는 적색신호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 부의 재분배와 노동권 보장 등 뉴딜 정책의 본질은 간과한 채 정부가 대규모 토목사업에만 '올인'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 노동간 사회적 대타협과 함께 사회전반의 구조개혁이 함께 추진되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기부양을 위한 재원을 재정이 아닌 연기금에서 조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려는 한국형 뉴딜정책의 핵심은 연기금의 대대적인 투자다. 재정경제부는 2005년 상반기부터 확대된 재정을 먼저 집행하고, 이후 하반기부터 정부 재정과 연기금, 공기업, 사모펀드 등 민간자본과 외국자본 등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을 최대한 활용해 종합적인 투자계획을 시행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특히 연기금은 사회간접자본(SOC)쪽에 투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재경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노인센터, 보육시설, 공공보건의료시설,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권 매입 등의 사업에 투자하고, 사학연금은 대학기숙사, 초중고교 수영장 등 학교시설 건설에 투입하기로 했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 연수시설, 지방관공서 등 공공청사에, 국민주택기금은 공공임대주택, 문화시설 건립 등에 투입된다. 이와 함께 청년 인터넷 일자리를 제공하는 '디지털 뉴딜'을 병행 추진할 방침이다.

뉴딜정책 활용될 연기금 재원만 136.7조원

현재 정부가 한국형 뉴딜정책을 위해 동원하려는 연기금은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국민주택기금 등 대략 4가지.

올해 6월말 현재 각 연기금별 여유 재원은 국민연금의 경우 122.1조원, 사학연금 4.7조, 공무원연금 3.8조원, 국민주택기금 6.1조원이다. 연기금의 여유재원만 무려 136.7조원. 한해 우리나라 예산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노인센터나 보육시설, 공공의료시설 건립에 투입하고, 사학연금은 지방대 대학기숙사, 초중고교 수영장 등 학교시설 건설에 투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무원 연금은 공무원 공공시설 및 지방관공서 등 공공청사 건립에, 국민주택기금은 공공임대주택과 문화시설 건설에 활용할 방침이다.
▲ 왜 우려하나 개혁·진보성향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한국형 뉴딜정책에 반대하는 첫번째 이유는 경기부양 재원으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동원하는 방식 때문이다.

전성인(경제학과) 홍익대 교수는 "부양책을 쓰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이상한 짓을 하겠다는 것은 말만 뉴딜로 포장했을 뿐이지 안된다"며 단호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왜 국민연금을 동원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도 "연기금을 집어넣는 것이 맞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한 뒤 "연금도 망하면 국고에서 세금을 내주겠다는 것인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는 "연기금을 투자하라 말라며 마치 자기 돈인 것처럼 생각하는 발상자체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특히 뉴딜정책 성공의 근간이 된 개혁입법은 등한히 채 토목공사 투자 위주로 한국형 뉴딜의 기본틀이 짜여진데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뉴딜정책의 결과 총수요가 확대된 것은 다양한 개혁입법과 사회보장 정책에 따른 결과물인데 이를 우리 정부는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1930년대부터 40년대 사이에 농업·금융·사회보장 등과 관련한 수많은 개혁입법안이 다 만들어졌다"면서 "그런데 한국형 뉴딜정책의 뉘앙스는 '개혁은 다 내팽개치고 부양만하겠다'는 것인데 재벌에 땅장사 해주겠다는 것으로만 들린다"고 했다.

조원희(경제학과) 국민대 교수도 "1930년대 미국식 뉴딜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사회적 부의 재분배 효과를 가져온 것"이라며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뉴딜정책에는 이같은 부분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한국형 뉴딜 정책이 후속 투자를 유발할 수 있는지 여부도 회의적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유철규 교수는 "정부가 주도해 소비를 늘린 뒤 그 소비를 기반으로 투자가 따라올 것을 기대하는 것인데, 어느 부분에 투자하는 것이 뒤에 투자유발 효과가 클 것이냐에 대한 계산이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특히 유 교수는 이른바 소비불능계층에 대한 대책이 빠져있어 정부의 기대만큼 효과가 날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즉 400만에서 줄지 않고 있는 신용불량자 문제와 76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 때문에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내수침체의 근본 원인인데 "이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전성인 교수는 "당장 투자가 돼야 먹고산다고들 하는데 무엇에 대한 투자인지를 생각해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장을 많이 짓는다고 먹고 살 수 있느냐,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져서 중국에 먹히고 나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며 "생산성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투자를 강요한다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정부는 이러한 내수침체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근본 처방부터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명헌 교수는 "뉴딜정책은 유효수요를 창출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신불자 문제 등 가계부채 등으로 서민들이 죽어있는 상황에서 유효수요가 살아나겠느냐"며 되물었다.

▲ 대안은 무엇인가 정부·여당만큼이나 경제학자들도 똑 부러지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한국경제라는 엉킨 실타래가 경제학자들조차 풀기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변모를 위한 '전환의 계곡'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성인 교수는 "정부를 향해 무엇은 하지 말라고 외쳐놓고도 무엇을 하라는 말이냐라고 되물어오면 딱 부러지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단 전 교수는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이나 저임금시대로의 회귀를 통한 경제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전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기술개발을 도모함으로써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해나가는 것이 지금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먹고 살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전 교수는 "제법 먼길이라 지금 나에게 빵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안 먹힐 것"이라며 "단기적 고통은 목표만 보여주면 참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걸 위해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철규 교수는 조건부 재정확대정책을 제시했다. 즉 재벌개혁·기업 구조조정 등 구조개혁의 강력한 추진이라는 정책과 병행해 한국형 뉴딜정책을 추진한다면 부작용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유 교수는 "외자지배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돈만 넣는다면 지금의 구조만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원희 교수는 "단지 양적인 수요만을 유발하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보다 자본과 노동, 정부간 사회적 대타협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 대타협 우선론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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