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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1일 광화문 역 소동 속, 초록색 계역 줄무늬 옷 양 쪽 어깨에 휘둘리는 학생들이 보인다.
2004년 11월 11일 광화문 역 소동 속, 초록색 계역 줄무늬 옷 양 쪽 어깨에 휘둘리는 학생들이 보인다. ⓒ 김은숙
학생들은 왜 때리냐며 소리 질렀고, 경찰 불러 달라고 했지만 몇 할아버지는 발길질도 서슴지 않았다. 난 그 모습을 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내 사진기 앞에서 가로막으며, 이게 뭐냐며 사진기 구경 좀 하자고 사진을 못 찍게 했다.

학생들은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모금함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난간에 놓인 그 모금함을 두고 그냥 갈 수 없어서 지키고 있었다. 모금함에는 천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돈을 그 모금함에 놓은 사람의 정성과 그 모금함을 들고 서 있었을 학생을 생각하면 단순한 천원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전해 주고자 들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날 보다가 급기야 지금 이 나라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아냐고, 그 모금함 뭐하러 지키냐고, 학생도 똑같은 거 아니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도 점점 더 많아지고 목소리도 따라서 커지고 할아버지들은 당당해져 갔다. 광화문 역 모든 역무원이 동원된 뒤에야 학생들은 역을 빠져 나갔고, 그 뒤에도 '국가보안법 사수'라는 종이를 든 몇 명은 할아버지들로부터 학생들의 버릇없는 '만행'을 듣고 서 있었다. 난 그 모금함을 역무원 아저씨께 맡기고 나왔다.

싸움의 와중에서 내게 가장 많이 들린 말은 "너는 에미 애비도 없냐?" "너 몇 살이냐?"였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토론의 장에서 수세에 몰린 사람이 가장 쉽게,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나이 어린 상대방을 제압하는 말이 바로 위 아래도 몰라본다는 말이며, 에미 애비도 없느냐는 말이다.

아마도 나이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는 우리나라가 가장 강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글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글 중에서 '게시판에 싸움 나는 이유'라는 걸 보자. 그 글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B: "님들 얘기 잘 들었습니다. 근데 말투가 좀 기분 나쁘군요."(말투 물고 늘어짐)
C: "기분 나쁘다뇨? 시비 건 건 그쪽 아닌가요?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책임 전가. 상대 무시)
D: "시비? 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냐? 사사건건 가르치려구 들자나!"(반말 나왔음)
C: "어쭈? 어따 대고 반말이야? 너 몇 살이야?"(나이 얘기 나옴)
A: "C님, 참으셈, 잘 돼봤자 고딩이에요."(동조. 중고딩 비하발언^^)
D: "고딩? 당신은 몇 살인데? 내 참, 군에 갔다 와서 직장 다니다 별꼴을 다 보네.

위 글을 보면 처음 시작은 그저 '자장면이 맛있네, 우동이 맛있네'였다. 그러다가 꼬투리 잡고 늘어지고, 욕설 나오고 나이 나오면서 처음 시작은 무엇인지 잊은 채, 나중에는 감정 싸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막판에는 양쪽이 똑같다는 양비론과 허무주의가 대두된다. 우리 정치판이나 민감한 사안에 대한 토론에서도 그런 모습은 여지 없이 볼 수 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것은 북한 끄나풀'이라는 원색적인 발언이나 '에미 애비도 없느냐'는 발언은 그저 그렇게 넘어 가고, 학생이 어르신에게 조금이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대항하는 것은 되먹지 못한 짓이 되어 버리는 이 상황이 언제쯤 달라질 수 있을까?

2004년 11월 11일 거리에 빼빼로 데이라며 과자가 넘쳐 나는 저녁. 몇 명 젊은이는 그렇게 나이든 사람들에게 둘러여서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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