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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 텔리그래프>를 통해 보도된 스쿨리스 문자 메시지.
해마다 11월은 고3 학생들이 대학수능시험을 치르는 기간이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12학년 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수능시험 격인 HSC시험을 11월에 치른다.

현실적으로 대학진학이 학생들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두 나라 수험생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비슷한 기간에 시험을 끝낸 두 나라의 고교졸업생들이 시험 중압감을 벗어버리는 과정이 많이 다를 뿐이다.

한국의 2004년 수능시험은 휴대전화 부정행위 때문에 큰 후유증을 앓고 있다. 반면에 호주의 12학년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산으로 바다로 떠나가서 HSC스트레스를 떨치면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대비하고 있다.

입학시험 스트레스는 마찬가지

▲ 야, 해방이다(Tourism New South Wales 제공)
오랜 이민생활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람 사는 곳엔 대강 비슷한 일들이 생긴다'는 것. 이는 한국과 호주를 비교해서 하는 말이다. 더욱이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생각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양상이 더 많이 닮아 있다. 정보통신과 항공교통의 발달로 온 누리가 지구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긴장감 속에 입학수능시험을 끝낸 한국의 고3들과 시험을 끝내고 1주일간의 졸업생 휴가(Schoolies week)를 즐기고 있는 호주 12학년들의 경우는 어떨까? 대학진학을 위해 한국의 고3들이 치러야하는 고행(苦行)은 세계적으로 그 비슷한 예가 없을 정도로 강도가 높다. 어느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따라서 인생판도가 달라지는 형국이니 그걸 뉘라서 말릴 수 있겠는가.

한국의 학벌중심주의는 고3의 고생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천문학적인 과외비용 때문에 한 가정의 기둥뿌리가 휘청거릴 정도다. 오죽하면 그런 현실이 싫어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겠는가. 싫고 좋음을 떠나서 그걸 감당할 능력조차 없는 가정은 또 어떤가.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호주의 12학년들도 HSC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시험공부에 몰두한다. 그들 대부분에게 'HSC스트레스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큰 압박감에 시달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시험의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약물에 빠지는 학생들도 나타난다. 11월 20일자 <데일리 텔리그래프>의 보도에 의하면 12학년 학생들에게 '시험약물중독사태(Exams drug crisis)'가 발생한다고 한다.

HSC 해방구 '스쿨리스 위크'

12학년 학생들의 졸업생 휴가를 뜻하는 '스쿨리스 위크(Schoolies Week)'가 11월 20일에 개막되어 10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아름다운 섬과 해변 등 호주전역에서 열리는 스쿨리스는 오직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2학년 학생들만을 위한 행사다.

'선샤인 퀸즐랜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따뜻한 퀸즐랜드 주에 위치한 골드코스트 해변에 모이는 스쿨리스가 가장 규모가 크고 학생들의 인기도 높다. 금년엔 무려 3만 명의 스쿨리스들이 골드코스트에 등록했다. 고유번호와 비상전화번호를 부여받은 것. 스쿨리스는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수영과 서핑 교습, 비치발리볼, 요트 등 각종 해상스포츠와 노래자랑, 댄스경연 등의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낮 시간을 보내고, 밤엔 유명밴드의 공연을 즐기면서 해변 캠프파이어에 참가한다.

▲ 스쿨리스 자원봉사자(Tourism New South Wales 제공)
스쿨리스는 매일아침 해변에서 팬케이크와 달걀, 돼지고기구이 등을 무료로 공급 받는다. 해변의 아침식사는 통상 오전 11시에 제공되는데, 그 이유는 스쿨리스들이 밤새워 놀다가 늦잠을 자기 때문이다.

스쿨리스는 오직 즐기기만 하는 행사가 아니다. 주로 오전에 열리는 강연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서 학교 밖의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예비성인으로서의 교양학습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을 위해서 의무적으로 '엄마에게 전화하는 시간(Phone your mum)'을 갖는다.

"엄마,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이 3만 명이나 모이는 행사라서 사고가 많을 듯하나 사회봉사단체인 행사 주최 측 '레베카 커뮤니티'의 노력 때문인지 사고발생률은 낮은 편이다.

스쿨리스의 행사는 호주의 한 고등학교 학생주임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그때까지 호주의 고등학교엔 '마킹 데이(Marking Day)'라는 나쁜 관습이 있었다. 영국의 'Muck up day'에서유래한 것으로, 졸업식 전날 밤에 학교의 곳곳에 낙서(marking)를 하고 학교기물을 부수는 파괴적인 전통.

그 선생님은 시험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12학년들이 마음껏 놀면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하자는 취지로 스쿨리스를 제안했다. 그래서 Schoolies라는 단어는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호주영어(Aussie slang)다.

'모발 폰'과 문자메시지

스쿨리스 주최 측은 올해부터 행사일정과 안전규칙 등의 모든 알림을 문자메시지(Text)로 보낸다. 참가자들의 도움요청이나 건의사항도 역시 문자메시지로 접수받는다.

그런데 2004년 스쿨리스 행사를 돕는 어른자원봉사자들과 경찰들이 문자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해서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같은 영어권 안에서 발생한 언어장벽과 세대차이(generation gap)다.

▲ 골드코스트 시내에 모인 스쿨리스들(epakorea제공)
한 예로 "All You need to do"를 "All u need 2 do"로 써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 주최 측은 곧바로 문자메시지 해독 강습회를 열어 세대 간의 언어장벽을 해결했다. 한국과 호주청소년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한국에서는 핸드폰이라고 부르고 호주에선 '모발 폰(Mobile Phone)'이라고 부르는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면서 문자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문자메시지가 그들에게 호응을 받는 것은 단어의 철자를 줄여서 통화시간과 통화료를 절약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 골드코스트 해변의 스쿨리스들(epakorea 제공)
휴대전화와 문자메시지. 대학진학 시험이 끝난 호주와 한국을 달구고 있는 화두임에는 틀림없으나 이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두 나라의 거리만큼이나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어둠의 끝자락을 밟고 해맑은 얼굴로 밝아올 희망찬 내일을 똑같이 맞이할 한국의 고3들과 호주의 12학년들, 그동안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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