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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가 잔뜩 쌓여 있는 모습
일거리가 잔뜩 쌓여 있는 모습 ⓒ 김기세
어머니는 저희 4형제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역시 김장을 손수 담그십니다. 그러면서 며느리들에게 김장담그는 법을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사령관처럼 진두지휘도 하십니다.

"큰 에미야? 파 다 다듬었냐?" "둘째 에미야? 마늘은 다 깠냐?" "승호 에미야?(셋째형수), 민호에미야?(제 아내)"를 연거푸 부르면서 일의 진행을 재촉하십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연신 다른 일을 손에서 결코 놓치 않으십니다.

제가 이번에 시골에 갔더니 그야말로 김장꺼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동치미와 총각김치, 배추 속에 넣을 무우를 다듬는 일부터 마늘, 파, 심지어는 김치 속에 넣을, 바닷가에서 팔순의 아버지께서 주워오신 굴까지. 휴, 이 일이 언제 끝나려나.

팔순의 연세에도 굴을 까시는 아버지
팔순의 연세에도 굴을 까시는 아버지 ⓒ 김기세
이미 배추 120여 포기는 절여서 뒤란(뒷뜰)에 있었고, 팔순의 아버지께서는 김치 속으로 사용할 굴을 까는 데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물론 형들과 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일을 했으며, 빈둥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희가 빈둥거리는 꼴(!)을 그냥 안보십니다.

잠시 후 옆집 아주머니께서 품앗이를 겸하여 오셨습니다. 옆집도 서울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내려와서 지난주에 제 어머니와 품앗이로 담근 김치 등을 챙겨 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에휴 미안혀서 워쩐댜? 우리 애들이 와서 새벽참에 간다고 혀서 낼 보낼 준비를 허다 보니께 늦었네." 그러자 어머니께서 "어이구 그노무 할매 일찍도 오는구먼" 그러면서도 반가운 표정은 감추지를 못하십니다 사실 며느리 잔뜩 있어봤자 옆집아주머니 한 분만 못 합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한 맛깔스런 양념
김치를 담그기 위한 맛깔스런 양념 ⓒ 김기세
거의 12시가 다 될 때까지 마늘과 파를 다듬고 난서야 우리 가족들은 제 아내가 집에서 담궈온 매실주를 앞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이런 저런 옛날 어려웠던 어머니의 무용담을 듣노라니 어떤때는 가족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며느리들이 모르는 가슴 아픈 우리 집안의 역사(!)를 꿋꿋하게 지켜오신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한숨섞인 인생사를 듣노라니 4형제 모두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하였습니다.

자정을 넘어서야, 내일 치를 본격적인 김장담그기 전쟁에 돌입하기 위하여 잠을 청합니다.

새벽, 어머니께서는 며느리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벌써 부엌에서, 뒤란(뒷뜰)에서 분주히 움직입니다. 며느리들이 눈을 비비고 죄송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오면 "좀더 자지 그러냐. 어제 준비하느라고 피곤할텐데"라고 오히려 늦게 일어나서 미안해 하는 며느리들을 더욱 미안하게 만드십니다.

사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지금까지 4명의 며느리에게 한 번도 큰소리를 안하셨습니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4형제가 손주들 8명을 낳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손수 한 달씩 며느리 산후조리를 직접 해주셨습니다. 제 아내가 아들과 딸 이렇게 두 아이를 낳았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형이 아들이 없이 딸만 둘을 낳고 셋째를 또 딸을 낳게 되었는데 형수님이 어머니, 아버지한테 죄송스럽다며 가까운 곳의 처가댁에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나한테 한마디 상의없이 사둔댁에 가는 것이냐? 그래 내가 지금껏 네게 그렇게밖에 못 갈쳤냐? 아들이든 딸이든 내겐 다 똑 같은 구여운 손주다. 어디서 그런 못된 버릇을 배웠냐?"하시면서 역정을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셋째형수님이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하면서 다시 어머니의 산후조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만 이렇듯 어머니께서는 며느리들한테 정말로 잘해주시고, 그에 따라서 며느리들 또한 어머니께 정말 딸처럼 어려움 없이 잘 합니다.

양념이 끝나서 완성된 배추김치
양념이 끝나서 완성된 배추김치 ⓒ 김기세
일요일 저녁이 될 무렵에서야 김장이 거의 끝나갑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휴, 이제 진짜 1년 농사 다 지었다. 그나저나 내년에도 이 김장 담을 수 있을라나 모르겄다. 니들(며느리들) 열심히 배워야혀~" 라고 말씀을 하시자 한참 배춧속을 넣고 있던 며느리들과 우리 형제들이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사실 올해 어머니께서 건강이 부쩍 많이 안좋아지셨습니다. 오른쪽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이 약 3개월 동안 정도 지속되다가 요즘 그나마 좀 나아지셔서 간신히 거동을 하시는 정도이고, 병원에 모시고 가서 허리 부분의 엑스레이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몇 개의 뼈가 디스크증상과 아울러 S자형상으로 굽어져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로 심각하신데 무척 아프시겠는데요. 나이 드셔서 치료할 방법도 없구. 암튼 조심하셔야 합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절뚝거리는 어머니를 뒤쫓아가면서 남모르게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습니다.

올라오기 전 형과 부모님.
올라오기 전 형과 부모님. ⓒ 김기세
이윽고 김장이 끝난 늦은 저녁, 형들과 저는 다시 시골에 노인네 두 분을 남겨둔 채 떠나기 위하여 짐을 꾸렸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니들 다 올라가면 집이 또 휑하겠구나"라고 말씀하셔서 가뜩이나 무거운 발길이 안떨어졌습니다만 결국 올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서 아버지께서 직접 까신 굴로 머니께서 담그신 맛있는 김장김치를 내년에도 그리고 그 후년도, 그 후년도 계속해서 먹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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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과 국가가 향후 진정한 자주, 민주,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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