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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안주.

“흠….”

이 고을에서 먼저 시신을 검험한 초검관의 시장(屍帳: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검시관이 검험하여 파악한 사인과 자초지종을 기록하는 공문서)을 손에 들고 정현우 의원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윤 군관의 서찰을 접수한 감사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발병부(發兵符:수령이나 관찰사, 또는 병영의 장이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증표)와 함께 파발을 급주로 띄웠기에 그 날 해가 지기 전에 안주에서 윤 군관의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무 중에 그런 흉변이 있었던지라 윤 군관을 아끼는 감사의 배려로 내려 보낸 감영의 나졸 셋과 함께 평양의 검시관 정현우 의원이 당도한 것은 다음 날 새벽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이미 야경꾼이 돌고 있는 통금의 시각이었으나 감사가 발급한 통행패를 소지하고 바쁘게 길을 내 몰았던 까닭에 생각보다 일찍 당도할 수 있었다. 그의 사위가 견마 잡은 세마(貰馬)를 타고 왔음에도 먼 길을 무리하게 놓아서인지 관아에 닿은 정 의원은 대강의 정황만 물은 채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는 이른 아침 조반상을 물리기가 급하게 검안을 하겠다며 윤 군관과 서리들을 재촉했던 것이다.

본래 고을에 사람이 죽는 사고가 생기면 사건 당해 고을의 검시관이 수령과 함께 1차 검시인 초검(初檢)을 실시하고 인근 고을에 관문을 띄워 검시관을 의뢰하여 복검(覆檢)을 청하는데 이 때 초검관의 1차 검시 보고서인 시장은 복검관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이는 초검관이 시장을 복검관에게 주어 부화뇌동 하거나 검안(檢案)을 조작하고 경중(輕重)을 바꾸는 폐단을 방지하려는 차원에서였다. 살인의 혐의가 씌워지면 사형에 처해지므로 그만큼 피의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려는 배려다.

그러나 살변의 피해자가 감영의 포교이고 보면 일반 민사의 경우와 같이 처리할 수 없고 어차피 결안(結案)을 올려야 할 상급 관청에서 검시관을 지정하여 내려 온 경우이고 보니 굳이 절차에 연연하지 않고 검안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복검관의 요구에 응해 운주목사가 초검관의 시장을 넘겨 준 것이었다.

“흐흠….”

정 의원은 또 한 차례 시장과 시신을 번갈아 훑으며 밭은 숨을 길게 뿜더니 초검관이 실시했을 초등 검시를 사위인 이경은에게 처음부터 다시 지시하는 것이었다.

“경은아, *법물(法物) 좀 꺼내다 시신을 수습해 보거라.”

“예. 선생님.”

경은은 장인인 정 의원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불렀다. 농사를 짓다가 어깨너머로 글 동냥이나 하게 되어 의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은을 제자로 받아주었다. 평양 성내뿐 아니라 성 밖 100리 안에 정 의원의 의술을 따를 자가 없다는 건 자타가 공인하는 바였고 한 번 제자를 두면 제대로 된 의원으로 만들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는 그였기에 ‘의원 정현우의 제자’라는 직함만으로도 평안도 안에서는 명의 행세가 가능했다. 그래서 그의 문하에 들고자 하는 의원 지망생이 버글거렸으나 정작 제자로 받아들이는 이는 열을 넘지 않았다.

‘의술은 인술이야. 한낱 손끝에서 나오는 재주가 아닐세. 자신의 영달이나 장사 속으로 의술을 배우려는 자가 있다면 표 나지 않게 다른 이를 죽이는 자일세. 그런 모리배를 내 손으로 키울 순 없지’라며 제자들에게 경계의 말을 해 주곤 했다. 자신의 나이 열다섯에 농사짓는 짬짬이 약초를 캐어 의원에 납품하다가 정 의원의 눈에 들었다.

성격이 찬찬하고 부지런한 까닭도 있었지만 미간과 인중에 나타난 상이 앞으로 크게 사람을 살릴 상이란 게 표면적 이유였다. 정 의원의 약방에 들어앉아 배우기를 7년, 정 의원이 왕진하는 곳이나 검시하는 곳이나 항상 경은을 달고 다니더니 3년 전에 자신의 외동딸과 성혼을 시켜주고 데릴사위를 삼았다.

그러나 사위가 된 후에도 여전히 ‘선생님’이란 호칭을 고집했다. 오랜 시간 입에 굳어진 표현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존경하는 스승이란 인식이 장인이란 느낌을 웃돌아 자리 잡은 까닭이었다. 하물며 의원의 자격으로 출타하는 곳에 수행하는 몸인 바에야 그런 공적인 호칭이 다른 사람들 듣기에도 더 부드러웠다.

경은은 먼저 시신 주변에 창출(蒼朮)과 조각(皁角) 등의 약재를 뿌렸다. 시신의 아랫배가 녹색으로 변한 것을 보고 부패가 시작되려는 징후를 알아챈 경은이 중요한 검안일 경우 해부까지 서슴지 않는 스승을 위해 냄새를 막으려고 창출과 조각을 미리 조치한 것이었다.

굳이 지금 이 시신이 어제 새벽 절명하였다는 설명을 참고하지 않아도 이미 전신에 퍼져있는 암적색 시반(屍班) 이 그쯤의 시각이 흘렀으리란 걸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시신이 엎어져 있는 복와위(伏臥位)의 자세로 놓여 있었으므로 안면부 일부와 흉복부와 대퇴부 중앙을 제외한 시신의 앞부분에 시반이 모여 있어야 했으나 후면의 등판에도 시반의 흔적이 있는 것은 아마 초검 때에 자세를 변형하며 관찰한 탓인 것 같았다.

육안으로는 등판의 총상 외에 다른 상처의 부위를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시반과 섞여 쉽게 드러나지는 않기에 물로 시신을 닦아내며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검시와 관련이 있는 나졸과 이인(吏人)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어깨 너머로 지켜보던 정 의원이 한 마디를 던졌다.
“왼편 귀와 하악골 사이를 조처해 보거라.”
그러고 보니 그 쪽의 빛깔이 시반과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것도 같다. 경은은 귀밑과 하악골 사이에 물을 뿌려 적시고 파의 흰 뿌리를 짓찧어 넓게 펴 바르고 초에 담가두었던 종이를 덮었다.

이제 한 시각 정도 기다렸다가 걷어낸 후 물로 씻으면 상흔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상흔이 있을 경우에. 만약 상흔이 잦아들어 관찰이 어려우면 백매(白梅)를 찧어 짓이긴 후 그 부위에 덮어두면 되는데 그래도 온전하게 보이지 않을 땐 백매(白梅)의 과육을 파, 산초(山椒), 소금, 지게미 등과 함께 갈아 떡을 만들어 불 위에 구워 뜨겁게 한 후 손상된 부위를 지지면 잘 드러날 것이고 초봄이니 초는 끓이고 지게미는 볶아서 뜨겁게 한 뒤 시체를 덮어주면 더 잘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총상에 절명한 사실이 확실한 만큼 상흔을 찾는 행위는 총을 맞게 된 정황을 짐작하고자 하는 것이지 사인(死因)과 직결된 단서를 찾는 것은 아니기에 그 정도 번다한 단계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독자적인 검시가 가능하리라만치 성장한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경은은 생각했다. 한때 저 정도의 인망과 저만한 의술을 갖춘 스승이 검시와 같은 궂은일에 나서는 것을 의아해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산자의 아픈 바를 고쳐 그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의원의 첫째 보람이라면 죽은 자의 상태를 살펴 그 억울함을 없게 하는 것도 의원의 큰 보람이 아닌가 싶네. 아니 보람이라기보다는 의원된 자의 책무라 하겠지’하며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는데 이제는 경은도 스승의 철학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정 의원이 보고 있는 초검 시장(屍帳)에는 상흔에 대한 언급이 없고 화승총에 의한 출혈과다로 사인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내용이 매우 소략하고 무성의한 것이 어쩔 수 없이 불려와 대략 적어 놓고 사라졌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초서로 수결한 수령의 압(押)이 있기는 하나 아마 꿈에 나올까 무서운 시신을 먼발치서 보고는 검시 현장에 참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돌아가는 모양이 매양 이렇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신 등판의 총상 쪽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관척(官尺)을 꺼내 총상 자국에 대어 구멍의 직경과 깊이를 재고 돋보기로 살피더니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아직도 열심히 시신주변에서 관찰하고 있는 경은과는 반대의 태도로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윤 비장, 아니 윤 군관. 내 의견도 초검의 시장(屍帳) 내용과 동일하니 그대로 적겠습니다. 이제 검시를 마치니 모인 사람들을 파해 주시오.”

작년 7월 대동강의 미리견(미국) 이양선 사건 때 현장에 같이 있었거니와 크고 작은 사건 현장에서 마주하다보니 낯이 익고 그럴수록 서로의 인품에 끌림이 있어 가깝게 지내던 터라 윤석우가 겸연쩍어 하는 비장 호칭보다 군관호칭으로 불러 준 것이다.

“아니, 벌써 검시가......”

윤석우가 의아해 하며 반문하려다 눈빛을 찡긋하는 정 의원의 태도를 보고 짚이는 바가 있어 말을 접었다.

“그리합지요.”

윤 군관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정 의원 앞에 마주하자 정 의원이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예사 사안은 아닌 듯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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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물: 조선시대 검시관이 합법적으로 검시에 활용하는 보조도구 및 수단들을 일컫는 말. 관척(官尺)이라든지 순도 100%의 은비녀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지게미, 초, 파, 천초, 소금, 매실 과육 등과 창출(蒼朮), 조각(皁角) 등의 약재도 사용되었다.

*시반: 시체의 혈액색깔이 피부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시체가 취하고 있는 체위의 방향으로 혈액이 모이면서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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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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