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서울 인사동 일원의 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구본주의 전시를 보고 왔다.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깊다.
작년 9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작가 구본주. 1967년생인 이 젊은 작가는 1993년 MBC 한국구상조각대전에서 대상을, 1995년에는 모란미술대상전 모란미술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탁월한 리얼리스트이자 형상조소예술의 기대주였다.
인체가 아닌 인간을 다루는 조각가
1980년대 말 진보진영의 학생미술운동에 참여했던 그의 초기 작품들은 동작과 표정 등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머리카락이나 근육 등의 부분에서는 과감한 생략이나 과장을 더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는 힘과 고뇌를 효과적으로 나타내어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에게 인체가 아닌 인간을 다루는 조각가라는 평가를 낳게 된다.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그의 작품은 기존의 리얼리즘에 상상력과 풍자를 더하면서 일반인들의 삶을 주제로 삼게 된다. 술에 취해 벽에 기대어 소변을 보는 사내, 쓸쓸하고 공허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샐러리맨, 깨소금 같은 시간을 즐기는 부부 등은 그가 단순한 작업자가 아니라 따뜻한 시선을 가진 휴머니스트임을 알려준다.
작품들을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용접기의 불꽃 흔적, 수백 개의 작은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조각한 이불, 얼굴과 신발부분까지 방짜기법으로 두드려서 만든 사실 등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땀과 마음이 담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세 곳의 미술관을 거치면서 나는 90년대 초중반 샐러리맨을 주제로 한 연작들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나무로, 강철로 만들어진, 때로는 청동의 양복을 휘날리며 달려가는 이 가늘고 애처로운 조각들의 손은 시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숙일 때는 꽉 움켜쥐어져 있고 앞을 바라볼 때는 간절히 무언가를 부르는 듯, 잡으려는 듯 활짝 펴져 있었다. 그 손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장난스런 마음으로 손금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못인지 나무심인지 모를 것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다음 층에서 바라본 또 다른 손은 무수한 손금이 흉터처럼 손을 뒤덮고 있었고 나는 그 손들 때문에 몹시 슬퍼졌다.
구본주, 별이 되다
물론 이런 것은 순전히 내 자의적인 해석이며 말 그대로 감상적인 감상일 뿐이다. 하지만 구본주의 작품에 그런 것들을 자연스레 이끌어내는 감동이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덕원 갤러리 5층에 가면 생전에 그가 준비했던 마지막 작품 '별이 되다'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사후에 동료와 후배들이 완성하여 설치한 이 뜻 깊은 작품은 앞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은 샐러리맨들이다.
길게 왜곡된 형상들이 유성처럼 달려 나가고 있는 1천명의 샐러리맨. 그것은 마치 작고 슬픈 영혼들의 은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밤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보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뜨겁고 맑은 영혼을 지닌 작가 구본주. 그 자신도 지금 별이 되어 빛나고 있을 것이다.
| | | 구본주 1주기전 전시 정보 | | | | 전시일정 : 2004/12/08~2004/12/28
전시장소 : 사비나 미술관, 인사 아트센터, 덕원 갤러리( 세 곳 모두 인사동에 위치)
세 미 나 : 2004. 12.18(토) 오후 3시 사비나 미술관
주 최 : 구본주기념사업회
관 람 료 : 사비나 갤러리 1000원, 나머지 무료.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