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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72년 겨울 혼인을 앞둔 아버지, 어머니 입니다.
1972년 겨울 혼인을 앞둔 아버지, 어머니 입니다. ⓒ 서종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혼인을 한 그 시절은 신혼여행이 여유롭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을 사치쯤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당신들 또한 어려운 가정 자식들이라 신혼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근처 유원지도 한 번 둘러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혼의 아련한 추억 하나 없이 십 수 년의 세월을 감내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상의 끝에 나는 제주도행 2박 3일 여행권을 마련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더욱 더 아내의 이해가 필요했고, 묵묵히 인내해 준 아내의 넉넉한 마음씨에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행권을 마련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0월 0일 날 떠나야 합니다. 이 경품권 시간 지나면 사용 못합니다. 아버지하고 상의해서 삼일 정도 여행 다녀오십시오."
"애들이, 괜한 일을 벌여 가지고 사람 힘들게 만드는구나. 날도 추운데 무슨 제주도는 무슨 제주도…."
"어머니, 세상에 태어나서 경품 받아 본 적이 처음인데 이게 아마도 아버지, 어머니 제주도 다녀오시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무 말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부부의 강권에 못 이겨 제주도행 밤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말씀은 하시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에는 뭔가 설레는 듯 한 아이들의 순수함이 엿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그런 설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분 좋은 일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야 부모님에게 제대로 아들 역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하시자마자 어머니는 마치 새 신부가 된 듯 저희에게 전화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고 있는 손자가 먼저 걱정되었는지 손자 밥 챙겨 먹였는지부터 묻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아이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지와 좋은 시간 보내시고 오세요. 집 걱정은 하시 마시구요."

이렇게 2박 3일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주도 일대를 관광 택시로 여행하셨습니다. 간간히 중간에 전화로 듣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제주도 여행에서 묻어나는 즐거움과 행복이 전해져 내심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신 아버지, 어머니
제주도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신 아버지, 어머니 ⓒ 서종훈
짧은 2박 3일 기간이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그동안 세월의 무게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듯합니다. 돌아오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주도에서 보낸 일정을 흥겹게 우리 부부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진작 보내드릴 걸….'

아내와 나는 그런 부모님의 흥겨운 제주도 여행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부모님은 여전히 당신들의 일상에서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고 계십니다. 자식들이 이미 장성하고 이제 그들의 자식까지 보았는데도 한 순간도 일을 놓지 않고 계십니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가 항상 건강하시고, 내년에도 그리고 후 내년에도 또 다른 여행을 가실 수 있도록 지금처럼만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올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아버지께서 사업상 문제로 현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유난히도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를 따랐는데 마음이 좋지 못합니다. 빨리 가족 곁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어머니는 그런 손자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배가 니 놈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니 놈 보고 싶어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구나."

어머니의 한스러운 말씀이 유난히 귓전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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