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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모습으로 숨져 국민들의 가슴을 시리게 한 인규군의 집.
안타까운 모습으로 숨져 국민들의 가슴을 시리게 한 인규군의 집. ⓒ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구 장애아동 사망사건은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인규군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를 떠나 경제난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가슴 시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죽은 인규(4·가명)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건설현장에서 비정규직 일용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 김아무개(37)씨와 어머니 김아무개(37)씨 사이에서 태어나 자라왔다. 김씨 부부는 인규의 위로 누나 인선이(7)와 아래로는 두 살배기 명옥이(이상 가명)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이미 알려졌듯 인규 가족들의 생활이 넉넉치 못했다. 주위 이웃과 남편 김씨에 따르면 장애인 등록은 돼 있지 않지만 부인 김씨는 정신장애증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김씨가 건설현장에서 벌어오는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해왔고 부인 김씨도 가끔 식당에 나가 일을 해 가계에 보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규가 아프기 시작한 2~3년 전부터는 가정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거기다 인규의 동생인 명옥이가 인규와 같은 증세를 보이면서 가족들의 시름은 깊어졌다.

이웃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인규네 가족은 올해 11월부터 더욱 힘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김씨의 일거리도 줄어든 터라 수입도 그만큼 줄어들었던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씨 부부가 인규나 딸들을 '방치'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6월까지 인규 가족 살던 동네 병원의 김호 소아과전문의는 "주로 인규 어머니가 인규를 업고 병원을 자주 찾아왔다"면서 "그 이후에도 계속 인규를 데리고 와 인규를 봐달라 하거나 어머니만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약을 지어달라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일부에서 아이 부모들이 아이를 방치했다고 하지만 당시 인상은 어머니가 나름의 정성을 다해 인규를 돌보는 것 같았다"며 "악의가 없는 부모들 같았는데 사건이 터지고 나서 무정한 부모로 인식받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머니 김씨는 지난 6월 인규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종합병원 응급실까지 데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규가 병원 진료를 받게 되는 것도 이 무렵이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김 전문의가 병원을 옮긴 후 병원을 찾는 경우도 줄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인규가 '경기'를 하면 아버지가 손수 수지침을 놔주는 정도가 전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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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올해 가을로 접어들면서 인규 가족의 생활여건이 더욱 악화됐다. 아버지 김씨는 "밥 먹을 정도는 됐지만 병원에 입원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하지만 사람들에게 무릎 꿇고 사정해서라도 병원치료를 받게 해야 했었는데…"라며 회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들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사실상 인규의 '임종'을 지켜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규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인규의 죽음과 인규 가족의 삶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컸다. 이러한 충격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차상위계층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며 재발방지를 약속하는데 이르렀다.

정부의 이러한 재발방지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인규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과 어려운 이웃들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의 허술함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인규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정부나 행정관료들의 '면죄부'로 활용돼서도 안 된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수혜자들에 대한 지원확충만으로는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인규 가족의 사례를 보듯이 여러 가지 재정적인 지원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신청방법을 모르거나, 또는 절차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정작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지원요청하길 기다리는 차원의 소극적인 대책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행정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사의 수를 늘이는 것도 선행요건이지만 지금 제도를 활용하는 선에서 우선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찾아야 한다.

22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을 중심으로 진상조사단이 현장을 방문해 일선 동사무소 직원들과 면담을 가졌다. 민주노동당 진상조사단과 공무원들은 소외계층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마련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히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현실 가능한 대안은 일선 병원과 사회복지 행정전산망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것. 난치병이나 기타 질병이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나 가정이 있을 경우 행정전산망으로 관련 데이타를 보내면 주소지의 사회복지사가 이들을 직접 찾아 지원 방안을 강구하는 방식이다.

인규는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됐지만 경제적 여건상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은 장애아 등록 및 지원도 받지 못했던 사례는 이러한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더 정밀하고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한때의 '이슈'정도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전보다는 좋아졌고, 점진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자세와 '자기만족'도 금물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인규나 인규 가족이 겪었던 아픔이 재현되지 않고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더 이상 온 국민이 한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충격과 분노에 빠지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막내 아이만큼은 지키자"...이어지는 온정 손길

인규네 가족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대구 동구청과 해당 동사무소도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인규 가족을 위기가정 생계비 및 의료비 지원 대상자로 선정했고, 긴급생계비 등을 지원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될 수 있는지도 검토중이다.

특히 인규와 같은 증상을 보이며 입원한 막내 명옥이(2)는 차상위 의료특례 수급자(2종)로 지정해 의료비의 85%를 국가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만약 명옥이가 인규가 앓았던 것으로 보이는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것이 판명이 나면 1종 수급자로 지정돼 치료비 전액을 보조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웃주민들과 이름 모를 시민들의 성금도 답지되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까지 동사무소 등으로 모인 성금은 대략 600만원 정도. 이외에도 김치와 쌀 등 급식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명옥이가 만약 근위축증을 앓고 있다면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를 받아야 하기 때문. 근위축증은 척수세포가 괴사하면서 근육이 수축하는 희귀성 난치병이다. 이 병을 앓으면 보통 2~3세에 사망하거나 적어도 10세 이전에는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치료법은 없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 정확한 진단이 나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근위축증 진단을 받게 된다면 오빠 인규와 똑같은 증상으로 악화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공인되고 정밀한 의료체계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인규는 저 세상으로 갔지만 지금도 인규네 가족에겐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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