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는 '북한정권 및 좌익세력의 인권유린'과 '민주화를 가장한 친북·이적활동'을 조사대상에서 제외시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안(원혜영 의원 대표발의)' 상정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날 밤 9시30분께 이용희 행자위원장이 애초 안건에 올라와있던 과거사 법안을 상정하려 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에 항의하면서 법안 상정은 결국 무산됐다.
이 위원장이 과거사 법안의 상정을 알리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즉각 "상정은 하지 맙시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은 급하게 의사봉을 숨겼고, 이명규·이인기 한나라당 의원들도 위원장석을 둘러쌌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대부분 의석에 앉아있었지만, 노현송·박기춘 의원이 위원장석으로 나아가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기자들도 몰리면서 위원장석 주변에는 20여명의 의원·취재진이 뒤섞였고, 잠시 행자위 회의장은 소란 상태가 계속됐다.
그러나 이날 회의장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지거나 막말이 오가지는 않았고, 의석에 앉아있는 의원들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해 안명옥·이혜훈·장윤석 의원 등이 회의장에 들어와 있었지만 공방에는 가세하지 않았다.
법안 상정을 가로막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합의를 엎어놓고, 그런 법안을 상정하면 어떻게 하냐"며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법안을 다시 논의하자"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날 전체회의에 올라온 법안에는 한나라당의 주장과 달리 과거사 조사대상에서 '북한 및 좌익세력 테러'와 '친북·이적활동'을 제외한 상태였다.
이날 오전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조사범위를 놓고 토론하던 중 한나라당 의원들이 항의의 뜻으로 퇴장했는데, 그 사이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이를 의결해 전체회의 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이명규 한나라당 의원은 "(법안심사소위에서) 나가자마자 여당이 법안을 바로 통과시켰다"며 "우리가 없는 사이 넘어온 법안에 대해 (전체회의에서) 방망이 두드리는 게 어디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 역시 "합의까지 엎다니 섭섭하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잠시 자리를 비운 것뿐이다, 화장실 갈 수도 있지 않냐"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미 한번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된 법안은 돌릴 수 없다"며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강창일 열린우리당 의원은 "법안심사소위를 비토한 것 아니냐, 아까 다 끝났다"며 이 위원장에게 "회의를 진행해달라"고 요구했고, 노현송 의원 역시 "(법안심사소위에서) 다 포기하고 나간 것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조성래 열린우리당 의원은 "완벽하게 마무리됐는데 한나라당이 상정을 막고 있다"며 "그러니까 한나라당을 '폭력저지당'이라고 하지 않냐"고 비판했다.
20여분간 소란이 계속되자 이용희 위원장은 "간사간 합의가 필요하다"며 밤 9시50분께 10분간 정회를 선포했다. 그러나 30분 가까이 여야 간사는 법안 내용이나 처리 절차에 대해 협의를 이루지 못했고, 이 위원장은 결국 밤 10시20분께 산회를 선포했다.
행자위는 다음날인 29일 오전 9시30분 비공개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다시 한번 여야간 조율을 시도한 뒤 오전 11시 전체회의를 열어 이를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