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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안내센터 맞은편 학고재 골목 입구에 여러 카페 안내 팻말이 보이고 여기서 60m안으로 들어가면 새로 단장한 귀천이 나온다
ⓒ 김형순
귀천, 목순옥 여사께서 20년간 운영해 온 카페.

천상병은 윤동주와 함께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빼어난 서정 시인이다. 새해 첫 날이라 특별히 귀천을 방문하기로 했다.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목 여사는 1985년부터 귀천 카페를 운영해오셨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니 정말 놀랍다. 철저히 고객제일주의 원칙을 지키고 계시다.

구(舊) 귀천은 지금 공사 중

여기는 처음 개점한 귀천이 아니다. 개점 당시 귀천은 수도약국 방향으로 200m 가량 가면 나오는 작은 골목 사이에 달마도가 보이는 곳에 있다. 귀천이라고 쓴 예서체 푯말이 특이해 눈에 들어온다. 내부는 비좁아 조금은 답답해 보였지만 손님들은 그런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그 나름의 특징이 있는 이 카페의 분위기를 즐겼다.

천상병 시인은 이 작은 카페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앉을 의자가 열다섯 석 밖에 없는/세계에서도/제일 작은 카페 […]
문화의 찻집이기도 하고/예술의 카페인 '귀천(歸天)'에 복 있으라.
(천상병의 ‘내 아내가 경영하는 카페’)


새 귀천은 분위기도 밝고 공간도 꽤 넓어져

주인이 건물을 팔려고 내놨기 때문에 새 주인이 혹시 가게를 비우라고 할까봐 미리 대비하여 이곳에 새 귀천을 연 것이다.

▲ 간판은 개점 때 쓴 서예체로 되어 있고 그 밑에 '아름다운 이 세상'이라는 시 구절이 쓰여 있다
ⓒ 김형순
새 귀천은 관광안내센터 맞은편 학고재 골목 안으로 60m쯤 들어서면 보인다. 길가에 있기 때문에 찾기도 쉽다. 내부 공간도 전보다 5평이 넓은 12평이라 여유롭게 보인다. 간판은 개점에 쓴 것과 같고 간판 밑에 '아름다운 이 세상'이라는 시 구절이 써 있다.

▲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큰 유리창을 보이고, 그 상단 나무판에 천상병의 대표시 '귀천'이 걸려있다
ⓒ 김형순
사방 벽을 따라 빙 돌아가며 의자를 놓고, 탁자들 사이에는 현대 추상화 풍의 그림을 놓았다. 한 쪽은 도자기만 그리고 옆에는 오디오 장치와 천상병의 시집들 그리고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 쪽 벽 위에는 큰 유리창을 두고, 상단 나무판에 천상병의 대표시 '귀천'이 걸려있다.

▲ 문순옥 여사, 살짝 웃으면 영락없이 문학소녀 같다
ⓒ 김형순
문순옥 여사, 살짝 웃으면 영락없이 문학소녀 같다

문 여사는 전에도 몇 번 뵌 적이 있지만 늘 소녀같이 다소곳하고 조용하시다. 남편을 닮으셔서 그러신지 별 꾸밈이 없다. 고은 시 전집 발간 축하 모임에서 뵙고 더욱 가까워졌다. 근황으로 천상병 삶을 극화한 연극 '소풍', 2월 2∼5일까지 의정부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공연한다는 소식도 알려준다.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수필로 베스트 작가가 되기도

문 여사는 남편이 93년 4월 28일 아침 갑자기 세상을 뜨자, 남편과 일상사를 담은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수필집을 냈다. 이 책은 10일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중판을 찍기도 했다.

이 수필을 보면 문 여사는 남편 못지않게 필력이 있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여성적 문체로 감칠맛이 난다. 남편 그늘에 너무 파묻혀 문학의 꿈을 펼치지 못한 것 아니냐고 하니까 최근 '남편에게 띄우는 편지'라는 가제로 책을 쓴단다. 가게일과 손님 만나는 일로 별 진전이 없지만.

▲ 막걸리 한잔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시인 천상병
ⓒ 목순옥
그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시인

천상병 시인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시인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시인이다. 그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시를 쓰는 행위예술가였다. 그는 시 이전의 시를 쓰고 있었다. 태초의 말을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언어의 단순미와 자연미를 가장 잘 살려낸 우리 시대의 최고 시인이다. 윤동주와 함께

사람 마음을 움직이며 삶의 상처를 치료하는 시

목 여사는 천상병 시인의 웃음이 "주위 사람을 웃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속을 확 풀어준다"고 말한다. 그의 시에는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의 마음을 다독이며 보듬어 안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음악 치료사나 미술 치료사처럼 시를 통해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고 우리 마음을 치유한 것이다.

여기에 목 여사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 천상병은 가난하게 산 시인이지만 행복찬가를 가장 많이 부른 시인입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죠?
“그는 가난이 시인의 직업이라고 했듯이 가난을 즐겼죠. 그 분은 그냥 술 한 잔에, 담배 한 갑에, 해장국 한 그릇 할 돈만 있으면 그 자체로 만사 오케이죠. 그 이상의 욕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세상만사가 아주 즐겁죠. 그에게는 내일의 걱정보다 오늘의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매일이 소풍가는 날이죠.”

▲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천상병은 생면부지의 예쁜 여자에게 손목을 잡고 “너는 지금부터 내 애인이다. 네 손 참 예쁘다”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 김형순
- 생면부지의 예쁜 여자에게 손목을 잡고 “너는 지금부터 나의 애인이"라며 "손 참 예쁘다”라고 말하는 천상병을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분은 뒤끝이 없어요. 마음에 앙금이 없고요. 다만 남들은 체면 때문에 못하는 것을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뿐이죠. 그러다 보니 금방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하죠. 그냥 천진함 그 자체예요.”

- 천상병의 시 쓰는 습관은 어떤지요? 여러 차례 고치는 스타일인가요? 아니면 한 번에 쓰는 스타일인가요?
“천 선생님은 한꺼번에 원고지 달라고 하고 한 번에 써 버려요. 그리고 고치는 법은 별로 없어요. 통달한 자의 경지라고 할까요. 물론 좋은 시를 쓰려고 하지만 지나치게 꾸며서 잘 보이려는 시를 쓰지 않으시죠. 그래서 쓰고 나면 끝이죠.”

- 그럼 윤동주 시인처럼 시상이 완전히 무루 익을 때를 기다렸다가 쓰시는군요?
“맞아요. 윤동주식인가 봐요. 자기 나름대로 완성도가 최고조 달할 때 쓰죠.”

- 문익환 목사는 학창시절 그렇게 오래 묵혀두었다가 쉽게 시를 토해내는 윤동주를 아주 부러워했다고 하는데 천상병 시인도 그랬군요.
“그렇죠. 다른 얘긴데 문익환 목사가 첫 시집냈을 때, 저희에게 그 책을 보내주셨어요. 그 일로 문익환 목사님을 뵙는데 그분 말씀이 우리나라 우편물 서비스가 대단하다며 자기가 보통 우편으로 보냈는데도 정확하게 전달되어 기쁘다고 농담 비슷하게 말했어요. 그리고 천 시인도 문 목사 평양에 갔다가 공안당국과 언론에 공격당했을 때, 그분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지요.”

▲ 벽에 걸린 마산 중학 5년 당시 사진. 이 때 천상병은 담임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강물>이 <문예>지에 첫 번째 추천을 받는다
ⓒ 김형순
- 천상병 시인은 짧지만 완성도가 높은 서정시를 쓴다는 면에서는 윤동주와 많이 닮았고, 가난하지만 좋은 반려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점에서는 박수근 화백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천 시인도 윤동주 추모시를 썼죠. 박수근 화백 가족들과 가까이 지냈어요. 박수근 아들과 딸도 안면이 있고요. 참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들이죠. 그의 손자가 인도에서 미술 공부하고 지금 호주에서 화가로 열심히 활동한다고 들었어요.”

- 목 여사는 인사동과는 인연이 오래된 것 같은데요?
“저는 젊어서 자수를 하다 보니 표구 작업을 하러 자주 나오게 되었죠. 이곳에 오면 참 마음이 편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예술적 취향과 안목이 있어서 마음이 쉽게 통하는 것 같았어요. 귀천 이전에는 고가구점을 운영한 적도 있죠.”

- 정말 경제적으로 힘드실 때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이란 살다보면 다 살게 마련이다"라고 쓰신 적이 있는데 요즘 경제적 고초를 당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직하게 살고, 부끄러움 없이 살다보면 길이 열리죠. 꾸준히 하다보면 뭔가가 보여요. 무엇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죠. 그러다 보면 그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나오고 나중에 도와주는 사람이 생겨요.”

- 천 시인은 "시인이 얼마나 좋은 긴데!"하며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컸던 것 같은데.
“늘 시를 문학의 왕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했어요. 삶에 대한 허무나 생활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어요. 모든 것이 다 시가 될 수 있으니까 좋고, 모든 것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외롭지 않았겠죠. 그냥 매일 소풍가듯 그렇게 사셨어요.”

▲ 프랑스어판 천상병 시집<귀천(Retour au ciel)> 출판사:오트르 탕(Autres temps) 번역:김현주와 피에르 메시니
ⓒ 김형순
- 천 선생님은 영어판 '귀천'(Back to Heaven 옮긴이 안토니·김영무, 출판사 답게)은 물론이고 아 여기 보니까 프랑스판 시집도 있네요. 천상병 시가 세계어로 번역되고 있는데 한류의 한 부류(?)라 할 수 있겠죠?
“세계인들도 그의 시에 공감하는 모양이죠. 아, 요즘 스페인어로 이미 번역이 된 것으로 들었고, 올해 우리 나라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이 되어서 그런지 독일어로도 번역이 진행된다고 들었어요.”

- 윤동주의 '별'이라는 이미지는 천상병의 '새'라는 이미지와 비교가 되는데요.
“천 시인은 윤동주의 식민 시대처럼 조국의 광복 같은 무거운 주제라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노래한 거겠죠. 무소유주의자로 살다보니 몸과 마음이 가볍게 느껴져 자주 새처럼 날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천상병은 시인은 고문 사건에 대해 쓴 시에서도 '진실과 고통'의 대립 구조를 간단히 언급만 하고 어떤 분노를 노골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고통과 슬픔을 녹여내는 강한 힘과 에너지가 넘친 것 같아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이 컸기 때문에 더욱 그런가 봐요."

▲ 귀천의 메뉴판은 한지에 서체도 정겹고 따뜻한 질감을 준다
ⓒ 김형순
- 모과차가 맛이 좋아 오늘 같은 추운 날에 잘 어울리네요? 차 종류는 몇 가지죠? 손님은 많은지요? 직접 담구시나요?
“모과차, 유자차, 매실차, 감귤차, 대추차, 생강차, 녹차 일곱 가지가 있고요. 손님도 꾸준해요. 지방에서 오시는 분도 많죠. 막걸리 왜 안 파느냐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어요(바로 그때 고창에서 오신 일곱 명의 손님들 중에 한 남자가 막걸리 왜 안주냐고 농담 삼아 말했다). 제가 집에서 담급니다. 모과 등 과일은 일 년치를 사다가 한꺼번에 만들죠. 사람들이 여기 차 맛에 대해서 칭찬을 많이 하세요.”

-요즘 귀천 장사는 잘 되는지요?
“그렇죠. 여기 오시는 손님들이 특별한 분이 거의 없어요. 돈이나 권력이나 인기와 전혀 관련 없는 보통사람들이죠. 그래서 아주 편하고 이곳에 오시면 아주 좋아하세요. 나에게는 모두 소중하고 귀한 손님들이죠.”

- 긴 시간 피곤하신데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손님이 와서 잠깐 외출하려고 합니다. 편히 쉬었다 가세요.”

▲ 한 벽면 전체가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오른쪽에 천상병의 시집들이 꽃혀 있다
ⓒ 김형순
그때 마치 천상병의 그 우렁차고 특이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귀천 새주소:관훈동24번지, 전화:3210-2288, 좌석:3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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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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