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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다 미국 사람 때문이야"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선생님이 "얘들아, 조용히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 와라"라고 하시자 모든 반 친구들이 우르르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 버렸다.

제일 친한 친구 재덕은 보통 아주 명랑하고 씩씩한 친구였지만 그 날 아침 나에게 "야! 우리 오늘은 놀지 말고 그냥 나하고 운동장에 좀 나가자"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를 했다.

재덕은 나하고 똑같은 초등학년생이었는데 나보다 두살 더 많았다. 너무 재밌고 똑똑하고 재주도 많아 비록 고집불통이었지만 제일 좋아했던 친구였다.

운동장에서 여러 얘기를 하면서 나는 재덕이 하고 싶었던 특별한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재덕이 조용해지자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재덕은 나를 보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면서 "그건… 다 미국 사람 때문이야…. 미국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면 전쟁이 생기지 않았고 우리 부모님도…"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재덕은 "다 미국 사람 때문이야"라고 울면서 "미국 사람을 미워해!"라고 마침내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하게 재덕 옆에 있었다. 그리고 우는 재덕의 모습을 쳐다보면서 '어…. 그건… 다… 미국 사람 때문이야'라고 혼자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1978~9년 여덟, 아홉살 때쯤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의 일이다.

지금까지도 재덕은 내 친구이고 우리는 함께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냈다. 우리 둘은 고향, 모국어, 국적, 사고 방식이 모두 같은 '프랑스 사람'이다.

종종 재덕의 생각이나 행동을 볼 때 나는 재덕이 나보다 더 프랑스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재덕은 프랑스 가족에 입양된 100% 한국 고아다.

재덕이 나한테 해 줬던 "미국 사람 때문에"라는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재덕은 1969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고아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당시에 그는 아이였고 여러 이야기를 잘못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재덕이 그런 마음 아픈 개인적인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라고는 그 때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 이야기를 어제 이야기처럼 기억할 수 있다.

아무튼 몇 년 후 나는 전혀 뜻밖에 한국 여자하고 결혼하게 되었고 아내가 프랑스 말을 잘 하는 만큼 한국말을 공부하기 위해서 2002년 서울에 왔다. 그동안 한국말을 공부하면서 여러 경험으로 한국의 특별한 입양 상황을 알게 되었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 해외 입양 4위의 대한민국

▲ 세계 각국의 해외 입양 실태
ⓒ 홀트인터내셔널
오래 전부터 (1958년때부터) 한국 고아들은 외국 나라의 가족에게 입양되기 시작했다. 제일 많이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 나라는 미국(60% 이상), 프랑스(10% 정도), 북유럽 나라(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 8%쯤), 여러 다른 유럽 나라 순이다. 1958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약 15만명의 고아들이 외국으로 입양됐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고아들을 입양하지만 요즘에도 국내 입양은 40%, 국외 입양은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전 세계의 국외 입양 나라 중에서 한국은 2003년와 2002도에는 4위를, 2002년 전에는 3위를 차지했다.

1996년 한국은 OECD 회원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은 국외 입양을 하는 나라 중에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매우 특별한 상황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12~13위 하는 경제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제일 큰 이유는, 한국은 혈연을 너무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입양한 아기가 100% 자기 자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입양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만 입양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도 다른 형태의 입양 문제가 심각하다. 옛날부터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 고아를 입양하는 절차가 아주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기 때문에(5~8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국제 단체를 통해 외국에서 고아를 입양해 왔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80년 초반 프랑스에 입양된 외국인 고아 중에서는 한국 아이들이 가장 많았다. 프랑스의 입양아 중에서 외국에서 온 입양아들이 80%를 차지한다. 입양아들의 현실은 그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아마 외국으로 입양되어야 한다면 그 상황이 더 힘들 것 같다.

한국에 있는 고아들을 외국에 보내는 대신 한국 가족이 그들을 입양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물론 고아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입양하는 가족이 어디에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가족에게 입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입양아들을 보면 외국에 입양된 한국아이들도 100% 그 나라 국민이 된다. 하지만 그들이 국내 입양되면 입양으로 인한 충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는 자기 나라 입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입양 절차 등을 더 간소하게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입양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의 프랑스인 친구 재덕이 한국에 옵니다

재덕은 내가 한국에서 살기 때문에 한국에 오는 것을 덜 무섭게 생각하게 됐다. 또 한국에 오는 것에 대해 자신감도 생겨나 드디어 2005년 처음으로 한국에 올 계획을 세웠다.

30년 전 한국을 떠난 후 재덕은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프랑스에서 재덕은 힘들고 긴 여정을 보냈지만 좋은 부모님과 친구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자기 인생에서도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고아들이 내 친구 재덕과 같은 한국으로의 여행을 하지 않길 바란다. 자기의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좋은 친구도 사귀면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한국인 가족에게 입양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참고 사이트 :  
보건복지부 : www.mohw.go.kr
통계정부: www.mohw.go.kr/databank/15아동복지.doc
Holt International Children Services (입양기관): www.holtintl.org/ins.shtml 
프랑스 외무부(Ministère des Affaires Etrangères) : www.diplomatie.gouv.fr/mai/ind_plus.html 
Racines Coréennes (한국에서 온 프랑스 입양아의 협회): www.racinescoreenn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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