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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새해는 아직 밝지 않았습니다. 기차에서 눈을 뜨니 아직 기차는 출발하지 않은 채, 용산 역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1월 1일 새벽 4시 30분,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밝지 않은 어두운 새벽을 기차는 묵묵히 앞을 보고 내달렸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꿈을 실은 기차는 1시간 30분 정도 내달리자 임진각 역에 도착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학교에서 학생회 임원들만을 뽑아서 반공 교육의 일환으로 데려 갔던 임진각과 판문점, 그리고 땅굴들. 청년이 되어서 다시 임진각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북한만 떠올리면 붉은 색의 글씨들이 길거리를 장식하고 무섭게 생긴 군인들이 행군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헐벗은 사람들의 모습과 기름지게 생긴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만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에 대한 하나의 편견이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을 통해서, 북한의 응원단을 통해서, 평양 시내를 방문하면서 북한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임진각에서 군인들이 탔습니다. 군인들은 명찰과 신분증을 확인했고 이내 확인이 되었는지 기차는 임진강을 지나 도라산 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도라산 역에 도착하자 마음이 쿵쾅쿵쾅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땅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역에서 새해를 곧 맞이한다는 느낌에서 더욱 그러했나 봅니다.
아이들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옷차림을 정비하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밖을 나옵니다. 도라산 역을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깊은 감동보다는 영하 12도의 추위가 아이들을 더 떨리게 합니다. 도라산 역은 이미 해돋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무대를 언제 설치했는지 이 추위에 이 행사를 준비하신 분들의 수고에 정말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행사는 아침 7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도라산 역 앞은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통일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로 뜨거웠습니다. 추운 날씨에 춤과 풍물 공연은 무척 열정적이었고 사람들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자리에서 방방 뛰었습니다. 분위기는 갈수록 타올랐고 곧 통일을 염원하는 행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풍물 자락에 맞추어 진행된 고사는 한해를 돌이켜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저버린 국회, 목숨을 담보로 단식을 했던 1000여명의 사람들, 농민들의 분노와 비통함, 국민의 다수가 원하지 않는 이라크 파병,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비정규직 문제,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2005년은 제발 좀 떨쳐 버리자고 두 손을 크게 비비며 빌었습니다.
오전 7시 50분, 해가 떠올랐습니다. 2005년을 시작하는 해가 떠올랐습니다. 멀리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의 감탄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손이지만 사람들은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 댔습니다.
이어서 소원지에 글을 써서 새끼줄에 매듭지어 걸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새끼줄은 이내 무대 앞으로 가져오게 되었고, 몇몇 소원지에 적힌 글을 사회자가 읽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망은 정말 소박했습니다.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 나라의 안녕을 걱정하는 글, 자신의 행복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었고 그것은 물질적인 행복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행복을 바란 것이었습니다.
곧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소원지를 분단된 조국의 땅에 불을 놓아 태워 보냈습니다. 소원지는 이내 재가 되어 바람에 날라 갔습니다. 북한 들녘에 뿌려진 통일의 함성은 그렇게 바람에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떡국을 먹은 우리는 이내 다시 기차에 탑승을 했습니다. 곧 기차는 다시 서울로 향하며 출발했습니다. 군인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군인들의 인사가 무척 새로웠습니다. 새해 아침,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준 사람들, 그들에게도 올 한해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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