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북대학 비정규직교수다. 이른바 '시간강사'이다. '시간강사'인 나와 많은 경북대 비정규직교수들이 겁도 없이 천막농성에 돌입한 지 꼬박 삼개월이 다 되어가고, 그 이전에 학교교문 앞에서 한 1인 시위까지 합치면 무려 6개월째 시위를 하고 있다.
학교는 1월 9일 현재 성적입력을 거부하고 있는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경북대 분회원'들에게 성적입력을 하지 않으면 "법적제재조치"를 취하겠다는 등기를 손수 보낸 상태다.
대학에서 강의한 지 몇 년만에 처음으로 학교에서 비정규직교수인 나에게 직접 등기를 보내는 '황송(?)'한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나를 비롯해서 많은 성적입력거부자들은 그 등기 내용처럼 모종의 법적 제재조치를 받을지도 모르고, 강사직에서 '짤릴'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도 난 차라리 천막이 있어 행복하다. 비록 춥고 바람불면 날아갈 듯 위태로운 천막이지만, 천막이 있어 행복하다. 평상시 '시간강사'는 수업 전에도 수업 이후에도 갈 곳이 없어 학교를 서성이고 학생들과 조별발표에 대해 논의라도 할 양이면 복도에서 하든지 빈강의실을 찾아 두리번거려야 하는데, 이번 학기는 농성을 위해 설치한 천막에서 학생들과 조별발표준비를 할 수 있었다.
850여명의 강사들을 위해 '공동연구실' 하나 내놓을 수 없는 학교에서, 교양과목 평균수강기준인원이 100명인 학교에서, 교육기자재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학교에서, 교육과 연구를 하지만 교육자적 지위는 고사하고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비정규직교수들은 더 이상 노예처럼 살 수가 없었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경북대분회'가 2003년도 9월에 결성되고, 2004년도에 경북대학에 단체교섭을 요청하였다. 경북대본부는 4월에 요청한 단체교섭을 "학기중에 바쁘고", "휴가도 가야한다"는 등등의 이유로 7월에야 응했다.
단체교섭의 자리에 나와서도 어찌나 기막힌 일들이 많은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었다. 어떤 교섭위원은 "강사들은 우리 학교 식구가 아니다"는 상식이하의 발언을 하고, 또 "교육부와 논의해라. 학교는 해줄 게 없다"면서 단체교섭 자체를 거부하며 또 몇 달을 끌다가 노동부에서 경북대 본부가 교섭대상이 맞다는 발언에 어찌할 수 없이 교섭의 장에 나왔다. 그 이후 교섭은 평행선이었다.
국립대학인 경북대학의 1년 예산규모는 1800억이 넘고, 그 중 학생들의 기성회비분이 약 840억에 이른다. 학교가 자체로 쓸 수 있는 기성회비분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책정된 예산은 고작 0.25%다.
기성회비에서 정규직 교수와 정규직원들에게 연구보조비, 연구지원보조비, 교재개발비 등으로 약 174억원의 연구보조비가 지원된다. 그리고 명절휴가비 1억9천, 교통보조비 1억5천, 가계지원비 3억2천 등 복리후생비로 약 10억이 지원된다.
그러나 정작 교재개발과 연구를 해야 하는 비정규직 교수에게는 교재개발비가 한 푼도 지원되지 않으며 연구보조비라는 명목으로 고작 2억정도가 지출될 뿐이다. 이 돈으로 매달 비정규직 교수에게 연구보조비를 지급하면 1인당 4000원꼴로 연구보조비가 돌아간다.
사회에서 통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심각해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의 50%가 안 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대학사회 내의 차별은 매우 심각하며 고질적이다.
그래도 학교는 월 평균 62만원인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방학 때 단 돈 한 푼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방학 때도 시험지채점, 성적입력, 교재개발 등의 노동이 있지만, 각 대학들은 시간급으로 15주나 16주의 임금만 지불하고 만다.
방학 때는 안 되고 강의하는 시간에만 강의료를 줘야한다는 것은 '시간강사'라는 명칭과 관련 있다. '시간강사'라는 명칭은 고등교육법 17조에 규정된 것이다. 고등교육법 15조에서 명시하는 바 대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지만, 강사는 법적 교원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그리고 '시간강사'라고 부르면서 '시간급' 임금만 주면 정당한 것인양 만들었다.
교육부 훈령이 변하여 각급 대학이 자율적으로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했지만 각 대학은 '시간급'을 고집한다. 또 국립대학 대다수는 국고분과 기성회비분을 동일하게 지급하여 담합 의혹까지 받고 있다.
비정규교수들의 열악한 처지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여러 번 제기되었고, 지난 2004년 6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학시간강사제도개선검토 결정문'을 통해 현 제도가 물질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차별을 하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평등권과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제도의 개선을 교육부에 권고하였다.
1월 9일 현재 한국비정규직노동조합 경북대에서 성적입력을 거부하는 파업을 한 지 25일째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성적입력을 협박하지만, 우리들은 단체교섭이 끝날 때까지 성적입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왜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고 성적입력이 늦어질 것이라고 양해를 구한 상태다.
경북대분회가 학교에 주장하는 것은 비정규교수들이 학교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지 않고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공동연구실을 마련하고, 교육주체면서도 강의 이외에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비정규직교수들이 교육에서 최소한의 주장을 할 수 있는 교육환경개선위원회를 설치하며, 학기마다 해고인지 아닌지 불안해하고 방학 때마다 실업자가 되는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1년 계약을 할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비정규직교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파업이었다.
물론 파업 때문에 성적입력을 거부하면 학생들에게 불편이 돌아가겠지만, 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북대분회에서는 꼭 성적을 입력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개별 입력을 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한번도 제 목소리를 낸 적 없는 비정규교수들의 파업은 학생들에게도 큰 관심이자 불만이자 희망이 되어, 경북대학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여러 소리들이 울려퍼지고 있다.
교섭대상으로 인정조차도 않던 학교가 교섭자리에 마주앉기까지 넉달이나 걸렸고, 마주 앉아서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교육주체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소 노동의 대가도 주지 않겠다던 학교가 조금씩 비정규교수를 인정해가고 있다.
비록 남은 시간 더 힘들고 고난스러울지라도 경북대분회는 이 싸움을 계속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평등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교육을 바꾸는 길이라 생각한다.
| |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경북대 분회 교섭일지 | | | | 경북대 분회와 경북대본부는 1월 9일 현재까지 총 12차례 교섭을 실시하였다. 2004년 4월에 경북대 분회가 단체교섭을 학교측에 요청하였고 학교측은 4개월만인 7월에 처음으로 교섭장에 나왔다.
단체교섭 상황
1-3차
학교측, "조합원 명단을 공개해라. 그리고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은 교육부와 상대해야 하지 경북대 본부가 교섭대상은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교섭중지 선언.
4차
노동부, "경북대 본부는 교섭대상이 맞다"는 공문발송.
학교측, "농성중인 천막을 철거하면 노조사무실을 제공하겠다"며 교섭안 마련해오지 않음
노조측 "우리가 제출한 교섭안에 대해 학교측의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와서 논의하자."
5차
학교측, 처음으로 교섭안 제출. 그러나 임금 등 핵심사안에 대해 언급이 없음.
6차
학교측, 교섭 1시간 전에 일방적 연기통보.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가 있었으나 "월연구비"를 지불하라는 중재안에 대해 학교측 거부로 중재결렬.
12월 16일 : 경북대 분회 파업기자회견 및 결의대회
7-10차
노조와 학교측은 교육환경개선위원회의 설치 등 일부 사항 합의.
학교측 "'월연구비' 지불불가. 최대수강인원과 폐강기준 등 교육환경문제는 노력하겠으나 구체적 명시불가. 비정규교수를 시간강사에게만 국한해야 함. 다만 강의료 인상은 적극 검토할 수 있다."
11-12차
학교측 "교육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수준(최대수강인원 60명)으로는 불가. 노조전임자와 복리후생비 절대불가."
1월 8일
학교측, 성적입력 거부한 개별 비정규교수에게 '법적제재조치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등기보냄.
1월 10일
노조에서 학교측에 단체교섭 재개 요구. / 이경숙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