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앙코르 톰 남문 좌우에 도열해있는 선신과 악신
ⓒ 김정은
나는 지금 프랑스인 뷰오신부가 처음 목격했던 돌 거인들이 양쪽에 늘어서 있는 죽음의 도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 앙코르 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수도 앙코르 톰과 자야바르만 7세.

남문에 다가갈수록 사방을 바라보고 있는 큰 바위 얼굴들이 까마득하게 아래에 있는 여행객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처럼 문지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줄 수 있는 조각이 또 있었을까? 이 말 없는 조각들의 존재감처럼 앙코르제국에서 앙코르 톰이 차지하는 비중은 당시 영화로웠던 세월이 돌조각들에 남긴 때처럼 묵중하게 느껴진다.

▲ 앙코르 톰의 남문, 남문에 다가갈수록 사방을 바라보고 있는 큰 바위 얼굴들이 까마득하게 아래에 있는 여행객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하다.
ⓒ 김정은
앙코르와트 사원을 건축한 수르야바르만 2세가 앙코르 제국의 전성기를 연 인물이었다면 거대한 도읍지 앙코르 톰을 세운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구가한 인물이다. 수르야바르만 2세의 사촌이었던 그는 1177년 챰족의 침입에 대항해 승리를 거두고 챰국을 정벌한 영웅으로 칭송받아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이곳 앙코르 톰에 수도를 마련하고 앙코르 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앙코르 제국의 전성기 때의 수도였던 앙코르 톰에는 동·서·남·북문과 동쪽에 승리의문 등 총 다섯 개의 성문이 있고 문을 통과하면 정중앙에 앙코르와트사원과는 느낌이 다른 새로운 사원, 바이욘 사원을 만날 수 있다. 지금 내가 멈춘 곳은 주로 관광객들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는 남문이다.

여행객을 모두 남문 밖으로 내려놓은 버스는 여행객은 내버려둔 채 저 혼자 거의 백미러가 닿을락 말락한 폭의 남문을 마치 곡예를 하듯 지나간다. 그 모습이 아슬아슬 하기 그지없지만 그나마 이렇게 곡예를 할 수 있는 버스로는 한국산 아시아 중고버스가 유일하다고 하니 앙코르 톰의 남문이야말로 한국산 중고버스를 진면목을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 아닌가?

아슬아슬한 버스의 곡예쇼를 본 사람들의 눈이 그 다음에 머무는 곳은 바로 일곱 개의 머리를 한 커다란 나가상을 필두로 왼쪽과 오른쪽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53개의 선신과 악신상인데 이 거인상은 바로 힌두신화 중에서 힌두의 신들이 어떻게 영생의 삶을 얻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유해교반(젖의 바다 휘젓기)을 묘사한 조각들이다.

힌두신들은 다른 종교의 신들과는 달리 저주로 인해 처음부터 영생불멸의 삶을 얻지 못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불쌍한 존재였다. 그러던 힌두신들이 그들에게 영생불멸의 삶을 가져다 줄 암리타(감로수)를 얻겠다는 무서운 일념 하나로 서로 못마땅해 하던 악의 신과 손을 잡고 나가(바슈키)로 만다라 산을 묶어 1000년 동안 내내 생명의 원천인 젖의 바다를 합심해서 휘젓게 된다. 적과의 동침이라고나 할까?

선신과 악마와의 불완전한 동거는 결국 천신만고 끝에 불로장생의 물 암리타(감로수)를 탄생시켰지만, 악마가 암리타를 몰래 훔치면서 불안정했던 선신과 악마의 동거는 깨지고 암리타를 둘러싼 선신과 악신과의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영생의 욕망과 감로수 그리고 신과 악마의 끝없는 싸움, 그러고 보면 힌두교의 신들은 매우 인간적인 것 같다. 뿌리는 하나이나 몸체가 다른 선과 악에 대한 절묘한 묘사가 양쪽에 서있는 돌 거인의 하나하나의 모습에 투영되고 있었다.

▲ 성문벽에 새겨져 있는 코가 셋달린 코끼리 아이바라타, 번개의 신 인드라가 아이바라타를 타고 있다.
ⓒ 김정은
선신의 조각은 뚜렷한 이목구비에 온화한 미소가 감돌지만 악마의 조각은 눈 코 입 모두가 부리부리해서 척 봐도 성질 사나워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보더라도 금방 구별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특이할 만한 것은 53개의 선신과 악신상의 모습 중에 같은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고, 모두 어딘가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선신의 모습은 고수머리며 늘어진 귀, 엷은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불상과 닮아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앙코르 톰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을 비쉬누신의 화신으로 여겼던 사촌인 수르야바르만 2세와는 달리 힌두교도가 아닌 불교도였기 때문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당시 퍼지고 있었던 대승불교를 들어와 국교로 삼고 자신을 관음보살의 화신이라 칭했던 자이다.

따라서 앙코르 톰과 톰 내의 바이욘 사원 또한 불교적인 색채가 짙다. 그렇다면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이곳에 대문부터 대표적인 힌두교 설화로 장식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건 아직까지도 크메르인의 의식 속에 관습적으로 존재하고 힌두신앙 때문일 것이다. 다리 위에 나가의 신상을 조각하면 물의 수호신 '나가'가 다리를 보호해준다는 그 속설들이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 뿌리 박혀져 있기 때문 아닐까?

그 나가를 해자의 맨 처음에 내세운 덕분인지 12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앙코르 톰의 완벽한 모습을 마주하고 서있을 수 있다.

앙코르 톰의 건축기법에 관해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바로 이미 있는 그대로의 돌덩어리를 이용해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건축법이라고 할 수 있다. 퍼즐처럼 각각 일부분이 조각된 돌덩이 하나하나씩을 돌덩이에 뚫려 있는 두 개의 구멍과 밧줄을 이용하여 적정한 자릴 찾아 쌓아올렸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멋진 조각으로 탄생되는 요술과 같은 건축기술은 지금 봐도 여전히 신비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앙코르 제국의 화려한 역사는 이 앙코르 톰 시대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지나친 건물축조로 인한 국가 재정의 탕진, 더더구나 자신을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칭하며 천하를 호령하던 자야바르만 7세에게 천형처럼 다가온 문둥병 또한 이 왕궁의 슬픈 결말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23m 높이의 성문벽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성문 벽에 새겨져 있는 코가 셋 달린 코끼리 아이바라타를 타고 벼락을 쏘는 바즈라유다를 든 힌두교에서 번개의 신 인드라 조각의 배웅을 받으며 바이욘의 미소가 아름다운 바이욘 사원으로 출발했다.

물의 수호신 나가

앙코르 와트 유적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힌두교의 신은 뭐니뭐니해도 나가와 압살라다. 나가신은 힌두교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흐만의 손녀 카드루가 낳은 영물로서 얼굴은 신(인간), 일곱 개의 목은 넓직한 타원형의 킹 코브라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뱀의 꼬리를 가진 특이한 모습의 신이다.

주로 수중 궁전에 기거하는 낙천적이고 동정심 많은 영물이라 힌두교에서는 물의 수호신으로 섬겨 연못, 호수 등과 연결된 다리, 난간, 벽 등에다 수호신의 의미로 즐겨 조각하거나 부조를 새겨 넣는다. 이는 다리의 난간에 나가를 새겨놓으면 그 다리는 파괴와 훼손이 방지된다는 믿음 인데 워낙 이 믿음이 깊은 나머지 앙코르 톰과 바이욘 사원은 불교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나가신을 새겨놓았다. 나가는 영생약을 얻기위한 사투를 벌인 젖의 바다 휘감기에서 만다라산을 묶어 젖의 바다를 휘저어 감로수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덧붙이는 글 | 앙코르 와트를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 5번째 이야기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