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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를 시작하며

2004년 작년,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학교 친구들에게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자 동무 하나가 "쟤네 집 갑분가 봐"했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전해 듣고 실소했다. 그것이 해외 여행에 대한 우리네 인식의 정확한 현주소이다. 또 오랜 세월 소위 가진 자들과 정부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해외 여행에 대한 편견과 이질감 심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증거다.

물론 해마다 늘어나는 여행수지 적자와 외화의 손실을 염려하는 정부로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해외 여행객의 증가를 강제로라도 막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LA 카운티의 집값을 폭등 시키고 수천만 달러의 외화를 밀반출하며 국회의원들 심지어는 지자체 의원들까지 국민들의 혈세로 해외에 나가 물 쓰듯 달러를 쓰고 다니는 실정이다. 이 마당에 3년 동안 적금 들어 가슴 두근거리며 세상 구경을 나가는 가족들을 외화 유출의 주범인양 9시 뉴스까지 동원하는 작태를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번 세상에 태어나서 부자로 잘 살 수도 있고 가난하게 살 수도 있지만 죽기 전에 한번쯤은 우리가 왔다간 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한번 둘러보고 갈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이제 고1, 중1인 아이들에게는 어렵게 들릴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우리 사는 곳을 한번 둘러보자는 말에 아이들은 이 여행의 의미를 이해한 듯했다. 그리고 우리 집도 없고 전혀 부자도 아닌 아빠가 가자는 여행이 관광과는 어쩐지 조금 다른 냄새를 풍기리라는 것까지 감지했던 것 같다. 후에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아이들은 아빠가 한 말들을 기억해 냈으며 자발적이고 씩씩하게, 때로는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헤쳐 나갔다.

해외 여행에는 물론 돈이 든다. 더욱이 유럽 여행은 비싼 항공료 때문에 4인 가족일 경우 일반인들이 선뜻 결심하기에는 큰 경비가 든다. 8천만원짜리 전세 집에 사는 사람이 간다면 사람들이 '주제에…'하고 비웃을 정도로 돈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당신이 한 가족의 팀장이라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아름답고 재미있고, 게다가 뜻있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여행을 좋아한다면 지금 당장 준비에 착수하는 것이 좋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여행에 있어서 절정을 이루며 여행 준비 자체가 여행의 시작이라는 말 또한 한치의 틀림도 없는 사실이다.

준비에 착수하면서 온가족의 엔돌핀은 상승하기 시작한다. 부부싸움의 횟수도 줄어 들고 공부에 찌든 아이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해외 여행 간다?'는 안 가겠다는 말이며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는 말도 상당히 신뢰할 만한 핑계거리는 되겠지만 이 역시 가족 공동체를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잴 수 있는 척도이다.

시간은 가족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훌쩍 커버려 혼자 배낭을 꾸릴 나이가 될 것이다. 늙어 버린 부부는 둘만의 여행이라며 지중해 크루즈를 타 보지만 그리 오붓하지도 않고 옛날 아이들과 함께 타 본 춘천행 기차만 못할 것이다. 가족이란 같이 있고 같이 움직일 때 즐거움이 배가 되며 다만 그때를 놓치면 다시 하기 어렵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능력에 상관 없이 무조건 떠나라며 해외 여행을 부추기는 꼴이 됐다. 이 글을 읽어 보는 사람들의 수준이 이미 대략적으로나마 규정되어진 이상 위화감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을 생각이다. 본인이 오십 가까운 나이에 내 집 한칸 없는 '서민 축에도 아직 못 끼는 주제'이고 보면 떠나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이 글을 읽다 보면 '그거 어려울 것도 없네'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 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필자도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처럼 똑같은 혹은 더 열악한 상황에서 생전 처음 유럽 땅을 밟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 전문가도 아닐 뿐더러 '길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방향 감각이 둔하다는 것이다.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캠핑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그러기에 더더욱 역설적으로 그 여행의 즐거움은 단체 관광이나 비슷한 배낭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여행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점검하는 수고로움만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준비의 단계부터 온 가족이 합심하여 짐을 나누어지겠다고 자청한다면 시작 자체가 큰 의미가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지금 바로 적금부터 하나 들고 시작하기로 하자.

덧붙이는 글 | 여행의 막바지 무렵인 스위스의 캠핑장에서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같이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 재미있어하며 책으로 한번 내보라고 부추김성 발언을 했다. 하지만 다니면서 기록해 놓은 것도 없고 해서 잊고 있다가 만나는 이마다 얘기가 재미있다 하여 여럿이 공유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긴 처음 유럽 여행을 계획했을 때 너무 자료가 부족하고 또 대부분이 여행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의 글들이었다. 실제 유럽에서 부딪치고 보니 초보용 안내서도 있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되나 자료가 부족하여 전문 안내서라기보다는 그냥 여행 신변 잡기라 하여야 할 것 같다. 

우리 가족은 2004년 7월 27일부터 8월 26일까지 유럽 9개국을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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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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