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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휴가 가세요? 이민 가세요?

해외 여행이건 국내 여행이건 혹은 집이건 밖이건 인간의 모든 생존 조건은 '의식주'로 귀결된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아프리카 밀림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자기집 안방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준비가 막막한 유럽여행 초보자일수록 우왕좌왕 하지 말고 의식주 원칙에 입각해 생각하면 비교적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확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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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예니네 가족 텐트 메고 유럽 가기

자동차 캠핑 여행도 마찬가지여서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 것이며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가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다. 단체 관광을 하면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단지 입성만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아주 짧은 여행에서는 대표적인 명소를 집중적으로 안내하는 단체관광이 유용하기도 하다. 여러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호텔 팩이나 개인 배낭여행도 먹고 자는 문제는 기성 제품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텐트를 치고 음식을 만드는 캠핑과는 구별되기 때문에 준비물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어, 여름인데 진짜 눈 오네?

▲ 우리, 떨고 있니?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 유원진
작년 7월 28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8월 26일에 돌아온 우리로서는 당연히 여름만을 염두에 두어 입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다가 고생을 했다. 심지어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올라갈 거면서도 '말이 그렇지, 설마 한여름에 눈이 있을라고'하며 무식의 극치를 보이다가 얇은 긴 팔 티셔츠 하나 입고 눈밭에서 덜덜 떨며 한여름의 알프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다.

사실 준비가 부족하다고 해도 전체 여행은 흘러가고 혹자는 "여행이란 뭔가 부족한 상태일 때 그 부족을 메꿔 가는 과정이 묘미"라며 낙천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물론 상당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준비가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없을 때에는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전체 여행의 즐거움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도 한다. 지난 일은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듯 그조차 에피소드로 남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일은 지난 뒤에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일이 몇 가지 있었다.

한여름에 설악산이나 북한산 등 산 속에서 야영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아침 저녁 텐트를 드나들 때는 꽤 쌀쌀하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짐이 많아 부피가 큰 스웨터나 파카를 가져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얇은 긴팔 티셔츠 하나씩 가져갔다. 우리는 결국 스위스에서는 텐트를 포기하고 방갈로에서 묵어야 했다.

방갈로와 텐트는 가격 차이가 엄청났고 여행의 막바지인 그때쯤 우리 가족은 이미 그 어떤 숙소보다 텐트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추위 때문에 비싼 방갈로를 이용하는 것이 억울했지만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상황에서 입성까지 부실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동차 캠핑 여행의 특성상 짐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옷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여름 속의 초겨울 정도인 경우가 종종 있으니 최소한의 부피에 아주 따뜻한 옷을 한벌 정도는 있어야 고생도 덜하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거 어떻게 먹는 거야?

▲ 텐트, 전기밥솥, 작업등, 아이스박스, 코펠, 휴대용 식탁, 버너…. 이걸 다 들고 갔을까.
ⓒ 유원진
자동차 캠핑 여행에서는 '먹을거리' 부분이 즐겁다. 배낭 여행자들이 가벼운 주머니를 걱정하며 이곳 저곳 레스토랑을 기웃거리거나 편의점에서 적당히 한끼 때운다는 개념으로 먹는 일을 격하시킨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유럽 어디에나 있는 대형 할인점에서 온 가족이 쇼핑 카트를 같이 밀고 다녔다.

현지 주민들의 식생활을 들여다 보며 재미있어 하고 신기해 하기도 하며 그 맛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안전제일주의 선택 원칙에 입각해 맛의 모험 여행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유럽 각국에서의 장 보기와 식사 준비는 정말 아름답고 재미있는 추억이 됐다.

경비 절감 차원에서도 사 먹는 것과 해 먹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유럽의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어서 하루 세끼를 사먹으면서 다니려면 여행 경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대형할인점의 경우 음식 재료만큼은 우리와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싸다. 또 한국의 할인점처럼 입 한번 열지 않고서도 쇼핑할 수 있게 체계가 똑같이 되어 있어서 편했다. 한국에서도 다같이 장 보러 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특별한 즐거움이었던 터라 대형할인점에서 한참 수레를 밀고 다니다 보면 순간적으로 한국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아침 저녁으로 가끔 번거로운 생각이 들기도 했고 설거지 당번을 하면서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파리의 캠핑장에서 김치 볶음밥을 해 먹는 맛은 아주 각별했다. 어렵게 구한 소주와 아내의 캔 맥주, 아이들의 콜라로 건배까지 하면 텐트는 특급호텔이 되고 밤하늘의 별들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됐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었다.

처음 준비할 때만 해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음식을 만드는 도구만 챙겨 가고 재료는 현지에서 구할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어차피 자동차로 이동하니 잠깐만 고생하면 잘 먹으리라는 기대로 김치부터 깻잎, 마늘, 장아찌 등 네 식구가 한달 먹을 반찬을 다 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가져갔다.

김치만 조금 모자라 현지에서 담가 먹었는데 맛이 오히려 더 좋았다. 먼저 할인점에 가서 중간 정도 크기의 아이스박스를 샀다. 그리고 출발하기 하루 전에 1kg씩 포장되어 있는 브랜드 김치를 유통기한이 최대한 많이 남은 걸로 4개를 사서 냉동실에 꽁꽁 얼려두었다. 그리고 출발하는 날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테이프로 밀봉하고 그 위에 다시 적당한 크기의 박스를 구하여 씌우고 다시 테이프를 붙였다. 행여나 비행기 화물 칸에서 수상한 국물이 흘러나와 다른 화물을 적시고 급기야는 회항(?)하는 불상사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 프랑스 배추도 쓸 만하군! 니스에서 김치 담그기.
ⓒ 유원진
신기하게도 사흘이 지나도록 김치의 냉동 상태는 유지되고 있었다. 여행 중 매일은 아니지만 틈틈이 얼음을 사다 채워 넣었더니 그리 심하게 쉬지도 않으면서 훌륭한 필수식품의 역할을 해냈다. 당시 냉동된 김치 외에 할인점에서 파는 냉매를 같이 넣었는데 그 역할이 컸지 싶다.

또 김치를 살 때 유럽에 가지고 간다고 하면 랩으로 칭칭 감아 100% 안전하게 해 주니 불상사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됐다. 단, 배추나 마늘 같은 재료는 현지에 다 있으니 구하기가 조금 어려운 젓갈이나 무겁지 않은 고춧가루 정도만 준비하면 현지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쌀은 이틀분 정도는 가져가는 것이 좋다. 처음 차를 받아서 바로 대형 할인점을 찾아갈 수도 있지만 지리에 어두운 문제도 있고 필자 같이 아침에 차를 받아서 저녁에야 캠핑장에 도착하는 불운을 당할 수도 있으니 초기 적응할 때까지 식량이 필요하다.

각 캠핑장마다 작은 슈퍼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쌀을 팔지 않는 곳이 많다. 또 파는 것도 먹기 고역일 정도로 이상한 쌀이 있으니 할인점에서 일본 쌀이나 중국산 쌀을 구해서 먹어 보고 입맛에 맞는다 싶으면 그 상표와 모양새를 기억해 놓거나 아예 한꺼번에 사는 것이 좋다. 겉에 문자로 표시되어 있어서 찾기는 어렵지 않고 태국 쌀도 한두번만 견디면 먹을 만하다. 단 물을 좀 많이 부어야 한다.

필자의 아내 같이 먹을거리에 관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매끼마다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살아 숨쉬는 용감한 가족이라면 유럽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먹는 일이 될 것이다. 꼭 레스토랑에 가서 사먹는 것만이 현지식은 아닐 터. 시장에 가면 그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고 그 흉내를 내서 만들어 먹어 보는 일은 온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단칸방의 추억 - 텐트에서 잠자기

▲ "둥근 해가 떴습니다♪ 텐트에서 일어나서~♬"
ⓒ 유원진
자동차 여행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잘 수 있다. 유럽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여러 형태의 숙소가 있고 어떤 형태의 숙소라도 텐트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필자도 텐트를 사서 가면서도 오히려 텐트는 비상용이고 거의 방갈로나 호스텔 혹 며칠은 호텔에서 자지, 어떻게 텐트에서 한달을 지내랴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로마에서 사흘, 프라하에서 하루, 그리고 잘츠부르크에서 하루는 방갈로와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다. 하지만 막상 가서는 로마의 방갈로는 카드 예약을 했기 때문에 해약하면 위약금을 물기 때문에 아까워서 묵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는 해약했고 프라하는 후에 말하겠지만 여권 사고가 생겨 그냥 묵었을 뿐, 유럽에서의 텐트 생활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가지 제약을 받지 않아서 편하고 비용이 엄청 쌀 뿐더러 바로 이웃 텐트와도 살갑게 지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캠핑장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할 예정이다.

텐트의 비중은 아주 크다. 어차피 자동차를 늘 텐트 옆에 세워두니 짐은 자동차에 두고 텐트는 가족이 들어가 누워 자는데 그리 비좁지만 않으면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치와 철거가 아주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할인점에 갔다가 3분 만에 펴고 접는 신형 자동 텐트를 보고 거의 충동 구매를 하다시피 했는데(집에 텐트가 두 개나 있었음) 유럽에 가서는 자동 텐트 덕을 톡톡히 보았다.

깜깜한 밤이나 비가 올 때 혹은 서둘러야 할 때 한번에 펴지고 접히는 텐트는 거의 환상적이었다. 유럽에는 그런 것이 없는지 텐트를 칠 때면 옆에서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하고 어디에서 샀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국산"이라고 말할 때의 쾌감은 해 본 사람만 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녀야 하는 유럽 자동차 여행의 특성상 텐트의 선택은 중요하다. 텐트를 치고 접는 데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면 좋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7, 8인용 자동 텐트를 샀다. 크기는 사람만을 나란히 딱 붙여서 뉘여 놓은 면적만을 계산한 것이므로 참고하는 것이 좋으며 무게는 중학교 일학년인 아들이 손잡이를 멜빵 삼아 등에 메고 다닐 정도의 무게였는데 딱 좋았다.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픈데 캠핑장에 도착하여 지지대 세우고 팩 박고 덮개 씌우느라 온 가족이 들고 메고 있으면 한두 번은 재미도 있고 가족의 협동심 고취에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면 며칠이 못 가 짜증이 날 수도 있고 한밤중에 텐트를 치지 못하여 급한 대로 비싼 방갈로에 묵을 수도 있다. 참고로 말하면 우리 가족이 산 텐트 가격은 유럽의 작은 호텔 1박 비용이었다.

짐을 줄이려고 애를 썼는데도 아이스박스니 휴대용 식탁이니 하여 우리 짐은 인천공항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복장을 보니 휴가를 가는 것 같은데 짐은 이민 가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결국 중량을 초과했지만 창구의 직원은 웃으면서 추가 요금을 받지는 않았다.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휴가 가세요? 이민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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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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